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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섬여행: 보길도와 청산도(3)

(2020-04-14) 슬로 시티 청산도의 느린 여행

by 이재형

오늘은 청산도로 간다. 아침에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10시가 넘어 숙소를 나왔다. 숙소에서 완도 여객선 터미널까지는 차로 5분 남짓 걸린다.


차를 두고 갈까 가지고 갈까 망설이다가 결국 가지고 가기로 했다. 11시 발 청산도 여객선이다. 완도에서 청산도 가는 배는 하루 6-7편 정도 있는 것 같다. 배에 차가 빈틈없이 꽉 찬다. 승객도 제법 많은 편이다. 어제 노화도로 갔던 배보다는 훨씬 더 붐빈다. 아마 보길도와 노화도에 비해서는 배편이 적은 탓인 것 같다.


청산도(靑山島)는 완도에서 5시 방향에 있는 섬으로, 완도항에서 배로 50분가량 걸린다. 청산도는 면적은 33평방 킬로에 인구는 2,300명 정도이다. 섬 크기나 인구가 보길도와 비슷한 정도라 할 것이다.


청산도에 도착하자 먼저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생선구이 백반을 먹었는데, 근래 가 본 식당 중에 보기 드물게 맛있는 집이다. 두툼한 갈치 한 토막에 큰 고등어를 한 마리 구워준다. 무침 회, 전복 졸임, 게장 등 다른 밑반찬도 많고 모두 맛있다. 오랜만에 배불리 밥을 먹었다. 가격은 1인당 11,000원으로 매우 착한 가격이다.


청산도는 한마디로 잘 가꾸어진 정원과 같은 섬이다. 그리고 청산도는 “슬로 시티”를 지향하며, 중심 테마는 "느린 섬"으로 느린 삶의 미학을 추구한다는 것이라 한다. 이 테마에 맞추어 11개의 <슬로 길>이 만들어져 있으며, 느린 여행학교, 슬로 푸드 체험, 슬로 축제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남해의 섬들은 대개 길이 가파르다. 섬 높이가 높지 않더라도 바닷가에서 출발하니, 같은 높이의 육지 산들과 비교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찾는 사람이 적어 산 길도 잘 정비되어 있지 않아 매우 험하다. 그래서 특히 나이가 든 사람이 걷기에는 위험한 곳이 적지 않다.


청산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매봉산으로 높이가 385미터이다. 다른 섬들에 비해 결코 낮은 높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산도의 지형은 완만하고, 또 넉넉한 느낌을 준다. 험한 길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르막 내리막 길이 연속되지만 경사가 급하지 않고 완만하다. 문득 사이클링을 즐기는 친구 생각이 난다. 그 친구가 아주 좋아할 만한 섬이다.


항구를 출발하여 시계 반대방향으로 잠깐 가니 완만한 구릉이 나타난다. 길 아래 저 아래쪽으로 푸른 바다와 바다가 인접한 마을이 보이고, 거기에 이르는 경사면 전체가 유채꽃이다. 이틀 전 영암 월출산 아래서 본 유채 밭은 넓은 평야지였지만, 여긴 경사지가 모두 유채밭이다. 노란 유채꽃이 갓 움트기 시작한 옅은 초록 잎과 섞여 아름다운 색의 마술을 보여준다. 온통 화려한 노란색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녹색 빛깔이 숨어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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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의 유채꽃

언덕길을 조금 더 운전해서 올라가니 영화 <서편제> 촬영장에 나온다. 그리고 서편제 촬영장 위쪽에는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 보인다. 예쁜 양옥집이 한 채 그림과 같이 서있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는 영화 <청산도>의 촬영장이 보인다. 이들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장은 모두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여기서 바다로 내려가는 경사면은 모두 노란 유채꽃의 바다이다.


언덕 위 좋은 자리에 <서편제 주막집>이 자리 잡고 있다. 막걸리 한잔 생각이 간절했지만 운전 땜에 참을 수밖에 없다. 주막 뒤편 언덕의 좋은 자리에 검은 화강암으로 조각한 사람의 흉상과 기념 조형물이 보인다. 제법 규모가 크고 깨끗하게 만들어진 기념 조형물 같다. 이 작은 섬에서도 큰 인물이 태어났구나 하는 마음에서 흉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봤다.


이런...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몇 년 전 완도 군수를 역임한 사람의 기념물,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소위 송덕비이다. 군수의 큰 흉상을 중심으로 "군수님의 약력"과 "군수님의 업적", 그리고 "군수님에게 바치는 청산면민의 마음"이 검은 석판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양쪽에는 이 조형물을 만드는데 경제적 지원을 한 사람들의 이름이 빽빽이 새겨져 있다. 참!!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이나, 이런 걸 허락한 사람이나.. ㅉㅉ.


다음은 범바위이다. 바닷가 산 꼭대기에 있는 큰 바위인데, 호랑이가 기지개를 켜고 있는 형상이라 한다.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아닌데, 설명을 보고 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곳은 바닷가 산봉우리이기 때문에 경치가 아주 기막히다. 옆으로 조금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생수를 한 병 사면서 주인아줌마에게 가볼 만한 좋은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항도에 꼭 가보라고 한다.


항도는 청산도에 붙어 있는 작은 섬이다. 과거에는 좁은 물길을 사이에 두고 청산도와 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방파제로 연결되어 있다. 섬 일주 느린 길이 1.8킬로 정도라 한다. 항도를 일주할 요량으로 출발하였으나, 집사람이 길이 험한 것 같아 가기 싫다 길래 중간에 돌아왔다. 바다 경치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숲길로 매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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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풍경

계속해서 자동차로 섬을 천천히 일주하면서 경치가 좋아 보이는 곳이 있으면 들렀다. 청산도는 바닷가 어떤 마을에 가도 경치가 좋다. 이렇게 자동차로 다니니 수박 겉핥기로 섬을 둘러보는 느낌이다. 언젠가 혼자 배낭을 메고 와 며칠 동안 민박을 하면서 섬 생활을 경험해 보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슬슬 돌아갈 시간이 되어 다시 항구로 왔다. 집사람이 항구 옆에 있는 수협 판매점에서 미역, 다시마 등 해초류를 이것저것 산다. 값도 싸고 품질도 아주 좋다고 좋아한다. 딸이 전복을 좋아한다고 딸네 집으로 전복을 2킬로 택배로 부친단다. 이곳은 온 사방이 전복양식장이라 전복 값이 엄청 싸다고 한다. 섬을 둘러보면 가까운 바다는 전부 양식장이다. 그 가운데서 전복 양식장이 압도적으로 많다. 어딜 가나 전복 양식장이다.


항구 옆에 조그만 수산물 센터가 있다. 갑오징어 한 마리에 전복, 참소라, 해삼을 샀다. 배를 타고 완도로 와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7시이다. 해산물을 안주로 소맥을 마신다. 갑오징어 회는 처음 먹어보는데, 아무런 맛이 없는 즉 무미(無味)의 회이다. 내 입에는 보통 오징어가 훨씬 좋다.


이걸로 오늘 일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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