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2) 영암 월출산의 유채꽃 평야와 고찰(古刹)
두 번째 섬 여행이다. 어제 오후부터 감기 기운이 있고 기침도 나서 출발할 수 있으려나 걱정했는데, 어제저녁 알레르기 약을 한 알 먹고 침대를 뜨끈하게 하여 잤더니 오늘 아침엔 말짱하다. 매년 봄이 되면 알레르기로 고생을 하는데, 올해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어제저녁 혹시 해서 코로나 19 증상을 검색해봤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 것 같다.
이번 여행 코스는 보길도와 청산도이다. 당초 오전 8시경에 출발하려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3시간 정도 늦은 11시에 출발했다. 보길도로 가는 배는 완도와 해남 <땅끝마을> 두 곳에서 탈 수 있는데, 갈 때는 땅끝마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 완도로 나오기로 했다. 가는 도중에 국립공원인 영암(靈岩) 월출산(月出山)을 들러 가기로 했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갈아타며 두 시간 좀 넘게 달리니 저 멀리 월출산이 보인다. 국도에서 월출산 가는 작은 길로 빠져나오니, "이런!! 온 천지가 노란 유채꽃이다!!!" 월출산 아래 있는 드넓은 평야가 온통 유채꽃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 이쪽 저 멀리까지 모두 노란 유채꽃이다.
몇 년 전 제주도에 가서 몇 백 평쯤 되어 보이는 조그만 유채꽃 밭이 보이길래 들어가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주인이라는 사람이 1인당 천 원을 내라는 바람에 그만둔 적이 있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여긴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을 줘야 할지 모르겠다. 유채꽃 밭에 들어가 꽃에 흠뻑 취한 후, 다시 월출산으로 향했다.
월출산에 입산하는 길은 몇 곳이 있는데, 이 곳은 <천황사>(天皇寺) 코스이다. 월출산은 소백산맥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산으로서, 높이는 약 800미터로, 넓이나 높이 어느 쪽을 보더라도 큰 산은 아니다. 대신 산이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매우 아름답다.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는 산이다. 달이 뜰 무렵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시간상 그때까지는 기다릴 수 없다.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천황사까지만 갔다 오기로 했다.
지금까지 좋던 날씨가 갑자기 흐린다. 천황사 가는 길은 독특하다. 대부분의 이름 있는 절들은 절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절 근처에 대형 주차장이 있다. 그런데 천황사는 주차장에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바로 산길이 나온다. 폭이 1미터 조금 넘는 좁고 가파른 산길을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절이 나온다.
천황사는 좁지만 아늑한 곳에 터를 잡고 있다. 절 집도 소박하다. 천황사는 처음 지어진 때가 신라시대이며, 이후 몇 번 소실과 중건을 반복하다가, 지금의 절집은 2004년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지은 지 20년도 안된 새 절이다. 집 사람이 짧은 불공을 드리는 동안 근처를 가볍게 산책하였다. 절 뒤편에 병풍처럼 서있는 바위산이 웅장하다. 갑자기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서둘러 산을 내려왔다. 천황사 주차장에서 5분 정도 차로 달리니 <백운동 정원>과 <설록차원>이 나온다. 여기는 녹차밭이다. 도로를 경계로 산 윗 쪽과 아래쪽 모두가 차 밭이다. 차 밭은 깨끗이 잘 정돈되어 있다. 보성 녹차밭보다 오히려 더 넓어 보인다.
다음 행선지는 <무위사>(無爲寺)이다. 무위사 역시 월출산 산자락에 위치해있다. 많이 걸어야 한다면 포기할 생각으로 무위사로 갔다. 다행히 무위사는 주차장이 절 바로 아래에 있다. 무위사는 비교적 평평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대웅전으로 가는 길은 무척 가파르다. 보통 절은 들어가는 문이 한 개 내지는 둘 정도인데, 이곳은 세 개나 되어 특이했다.
다시 차를 출발하니 4시 반이 조금 넘었다. 이젠 땅끝 마을까지 직행이다.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진다. 마치 여름 장맛비 같다. 땅끝 마을 주차장에 도착하니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배표를 끊으러 가니 코로나 19 때문에 휴일에는 관광객이 섬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1박이다.
날씨는 춥지, 비는 오지,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지... 서글픈 기분이 든다. 그 좋아하는 회도 별로 내키지 않는다. <전라도 밥상>이라는 식당에 들어가 막걸리 한 병을 반주로 저녁을 먹었다.
이젠 잘 곳을 찾아야 한다. 지방에 내려오면 대도시에 비해 오히려 숙박비가 비싼 경우가 적지 않다. 주위에 제법 큰 모텔이 있길래 찾아가니, 가격은 대도시 시설 좋은 곳과 비슷하지만, 시설은 1980년대 장급 여관 수준. 어쩔 수 없다. 일찍 들어가 자자.
작년부터 여행을 다닐 땐 작은 전기 매트를 가지고 다닌다. 그러면 난방이 좋지 않더라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 내일 날씨는 맑겠다고 하니,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부터 섬 여행을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