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3)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 보길도 여행
어제 내리던 비는 깨끗이 개었다. 먼지가 씻겨 내려가 그런지 하늘이 투명하도록 푸르다. 보길도로 가는 배를 타기 전에 <땅끝마을 전망대>로 갔다. 주차장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니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가 아주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높은 언덕 위에 삼면이 탁 트인 곳에 자리하고 있어 푸르게 펼쳐진 바다와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푸른 바다는 아침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다.
갈두항에서 노화도로 가는 배를 탔다. 보길도에 간다더니 왠 노화도? 노화도와 보길도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땅끝마을이나 완도에서 보길도로 가는 사람은 모두 노화도로 가서 육로로 보길도로 이동한다. 많은 사람이 배로 보길도를 찾지만, 막상 보길도에는 여객항이 없다.
여기서 보길도 주위의 섬들을 알아보자. 보길도(甫吉島)는 남해 땅끝마을 및 완도와 역삼각형을 이루는 꼭짓점에 있다. 면적은 33평방 킬로에 인구는 3,000명 정도이다. 노화도(蘆花島)는 보길도의 북쪽에 있는데, 면적 24평방 킬로에 인구는 5,000명 정도이다. 면적은 보길도가 더 넓고, 또 사람들에게도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실상 더 활성화되어 있는 곳은 노화도이다. 보길도와 노화도 사이에는 장사도란 적은 섬이 있는데, 보길대교가 노화도와 장사도, 그리고 보길도를 연결하고 있다.
노화도의 오른쪽에는 소안도란 섬이 있다. 소안도는 23평방 킬로로 면적은 노화도와 비슷하지만, 인구는 2,000명이 조금 넘는 정도이다. 노화도와 소안도 사이에는 구도(鳩島)라는 조그만 섬이 있으며, 현재 노화도-구도-소안도를 연결하는 소안대교가 건설 중이다.
갈두항에서 노화도까지는 배로 약 40분 거리. 노화도에서 하선하여 자동차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섬마을들이 바닷가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었다. 노화도의 중심지는 노화읍인데, 이곳은 제법 번화한 느낌이 들었다.
보길대교를 건너 보길도로 들어왔다. 다리를 건넌 후 조금 가면 <윤선도 원림>이 나온다. 고산 윤선도는 남도에 유배를 가 있던 중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이끌고 강화도로 향한다. 그러던 중, 인조의 항복 소식을 듣고 회군하였다. 제주도로 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잠시 기착한 보길도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하여 그대로 눌러앉았다. 고산은 이 보길도에서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 유유자적 자연을 노래하며 세상을 관조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윤선도 원림에 도착하니 코로나 19로 인해 당분간 폐쇄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아쉬움에 낮은 담 위로 목을 길게 빼서 경내를 관람하던 중, 뒤쪽 문이 반쯤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먼길까지 와서 구경도 못하고 돌아가기도 아쉽고 해서 염치불구하고 뒷 문으로 들어갔다. 길을 따라 들어가니 세연정(洗然亭), 곡수당 등 아름다운 정원과 어울리는 멋지고 고풍스런 건물들이 나온다. 참 좋은 곳에 좋은 정원을 만들어 인생을 즐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넓은 터에 아름다운 정원과 정자를 짓고, 또 이것을 유지, 관리하면 상당한 재물이 필요했을 텐데 생전 대부분의 시간을 유배생활로 보낸 고산이 어떻게 이를 조달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윤선도 원림을 나와 조금 더 가면 저쪽 가파른 바위산 중턱에 두 개의 정자 비슷한 건물이 보인다. 바로 동천석실(洞天石室)이다. 고산은 이곳에서 독서와 사색을 즐겼다고 한다. 매우 가파르게 보여 갈까 말까 잠시 망설였는데, 올라가기로 했다. 길이 생각한 이상으로 험하다. 괜히 올라왔다고 후회가 된다. 작년 베트남 사파에서 험한 길을 가다가 사고를 당한 후 가능한 한 험한 길은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 오르고 말았다. 일단 오르기 시작했으니 끝까지 올라갔다.
동천석실은 2개의 작은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쪽 건물은 침실이고, 위쪽 건물은 차를 마시며 독서를 하던 곳이라 한다. 고산도 참 별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산 아래 좋은 연못과 정자에서 편하게 차 마시며 독서하지 뭘 이렇게까지 힘들게 올라와서 차와 독서를 즐기나... 고산에게 음식과 술, 차를 날라다 준 사람들도 보통 힘든 게 아니었을 거다.
윤선도 원림과 동천석실 등 윤선도 유적을 보면 면적만 하더라도 수 만평은 됨 직하다. 어떻게 보면 이곳 보길도는 윤선도 왕국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재물이 있어서 이렇게 넓은 땅에 좋은 집과 정자를 짓고, 정원을 가꾸고 하였을까? 고선 윤선도는 해남지역에서 거부였다고 한다. 토지만 하더라도 수 십 만평을 소유하였고, 종들도 몇백 명이 되었으며, 부인도 20명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보길도에서 정원과 정자를 건설할 때 많은 사람들을 거의 강제노역을 시키다시피 동원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보길도 사람들은 윤선도와 그 가문을 아주 원망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한 사람이 자연을 즐기며 유유자적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름 모를 많은 사람들의 고생이 뒷받침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다.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는 자연을 벗 삼아 고기를 잡으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그렇지만 그 시대 실상은 그 사람들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얼마나 행복했을까? 고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그 시대의 보길도 사람들은 독서를 하고 자신들을 소재로 시를 지으며 유유자적 살아가는 윤선도를 보고, “참 남의 사정도 모르고 속 편하게 살아가는 양반이군”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다음은 <망끝전망대>이다. 이름이 좀 묘한데, 이 곳은 달을 바라보기, 즉 망월의 최적지가 한다. 이 망월의 망 자와 섬 끝의 끝 자를 합해 망끝전망대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여기서도 아름답고 푸른 바다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이제 볼 것은 대충 보았고, 완도로 이동하여야겠다. 노화도의 동천항으로 향하였다. 걸어서 여행을 하면 생생한 경험이 가능하지만 기동성이 너무 떨어진다. 반대로 자동차로 여행을 하면 기동성은 좋지만 너무 겉만 스쳐가는 느낌이다. 대중교통과 도보를 적절히 섞으면 좋겠지만, 섬 여행은 그것이 어렵다. 지난번 욕지도 여행에 비해 이번 여행은 어쩐지 껍데기만 보는 느낌이다.
동천항 옆에는 작은 섬이 하나 있다. 구도(鳩島)란 섬이다. 넓이 약 0.4평방 킬로에 주민이 80명 정도 거주하는 섬이다. 동천항 옆 노화도에서 구도로 아주 멋진 다리가 놓여져 있다. 길이가 약 800미터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인데, 80명의 주민을 위해서 이렇게 큰 다리를 놓아야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다리는 노화도와 소안도를 연결하는 연도교(連島橋)인데, 그 1단계 사업으로서 노화-구도 간 다리가 건설되었다고 한다. 이 다리 전체 구간이 완성되면 노화도-보길도-소안도라는 비슷한 크기의 3개의 섬이 인구 1만 명 정도의 하나의 생활권으로 통합될 것으로 보인다.
노화도 동천항에서 배로 완도항으로 왔다. 완도항에 도착하니 4시 정도가 되었다. 집사람이 그토록 원하는 미황사(美黃寺)로 가기로 했다. 미황사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참 아름다운 절"이다. 달마산 자락에 자리 잡은 미황사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주위의 산세와 멋지게 어울리는 절집이다. 뭐랄까... 기품이 느껴지는 절이다. 미황사는 우리나라에서 육지에서는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절이라 한다. 집사람이 불공을 들이는 동안 절 주위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참 빈틈없이 잘 정돈되고 균형 잡힌 절이다.
오늘 저녁은 어제 맛보지 못한 해산물을 먹어야겠다. 숙소가 완도 항 근처의 <전복 거리>에 위치해 있어 주위가 온통 횟집이다. 숙소에 대충 짐을 풀고 나오니, 숙소 바로 앞 바닷가에 수협이 운영하는 수산물 판매장이 있다. 전복을 좀 살 까해서 가보니 오늘은 영업 끝이라 한다. 근처 사람들에게 소개를 받아 잘한다는 횟집으로 갔다.
그런데 횟집 주인이 썩 반기는 눈치는 아니다. 알고 보니 이 쪽 횟집들은 1인분, 2인분이나 회 대ㆍ중ㆍ소 이런 식이 아니라, 한 상 대ㆍ중ㆍ소의 단위로 판다. 가장 작은 한 상이 10만 원, 중간 상이 15만 원, 큰 상이 20만 원이라 한다. 나와 집 사람 둘이 갔으니, 주인 말이 두 사람이 10만 원짜리 한 상을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고, 또 경제적 부담도 클 거라 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면 옆에 있는 수산물 센터에 가서 먹은 것이 훨씬 좋다고 추천해준다.
수산물 센터에서 제법 큰 참돔 한 마리와 전복 큰 것 2마리를 사서 옆 식당으로 갔다. 나는 돔보다는 광어나 우럭 회를 좋아하는데, 집사람이 참돔을 먹고 싶다고 해서 산 것이다. 식당 안은 텅 비어 있다. 그 넓은 식당에 손님은 우리밖에 없다. 참돔 회에 전복 회, 그리고 참돔 지리에 전남의 소주 <잎새주> 한 병을 비우니, 배도 부르고 하루의 피로도 풀린다. 나는 지리보다 매운탕을 좋아하는데 식당 사장이 싱싱한 생선은 지리가 훨씬 낮다고 강력히 추천하길래 지리를 선택했는데,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
오늘 일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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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생활상식: 생선 전골에는 매운탕과 <지리>가 있는데, “지리”란 무엇일까? 1900년대 초 일본 동경에 생선 전골 요리를 잘하는 음식점이 있었다. 이 음식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생선살을 저며서 야채 등과 함께 끊인 전골 요리였는데, 끓는 물에 생선살을 넣으면 생선살은 작은 소리를 내며 오그라든다. 이 소리가 마치 행주 빠는 소리와 비슷하게 들려, 행주를 빨 때 나는 소리 “치리 치리”를 이 음식의 이름으로 하였다. 즉, 생선 지리의 “지리”는 행주를 빠는 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