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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Dec 24. 2022

인도차이나 3국 여행(D+26a)

(2022-11-11a) 호아루 옛 수도와 천외선경(天外仙境) 뚜엣틴꼭

비가 올 것 같은 흐린 날씨다. 집사람은 좀 쉬겠다고 해서 아침 식사 후 혼자서 오토바이를 타고 나왔다. 이곳에서 7킬로 정도 떨어진 호아루 고대 수도로 향했다. 이곳은 10세기경 베트남 최초의 통일 왕조가 세운 왕궁이다. 4년 전 베트남 여행을 왔을 때 이곳을 가려했으나, 시간이 늦어 입구까지 왔다가 돌아간 적이 있다. 


그때도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을 찾았는데, 가는 길이 이전과는 다른 것 같다. 이전에는 가는 길이 매우 아름답고 절경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도시 변두리의 인가를 통해서 간다. 어떨 때는 골목길보다 조금 넓은 정도의 도로를 통과하기도 한다. 내 기억이 잘못되었나 생각하면서 구글 지도가 가리키는대로 오토바이를 달린다. 그렇게 몇 개 마을을 지나 굽어진 변두리 도시 길을 빠져나오니 얼마 가지 않아 호아루 고대 수도가 나타난다. 입구는 낯이 익다. 알고 보니 내가 지난번에 왔을 때와는 반대 방향에서 이곳에 온 것이다.    

그런데 베트남 왕조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옛이야기를 하나 돌아보자. 삼국지에서는 제갈량이 남만을 평정하러 출진하여 맹획을 칠종칠금 끝에 복속시킨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 남만을 베트남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베트남의 맹주인 맹획이 제갈량에게 우롱당한 끝에 무릎을 꿇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베트남 사람에게 하면 매우 싫어한다. 그들은 단연코 남만과 맹획은 베트남이 아니러고 부정한다. 


나는 베트남 사람들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당시 촉 지방에서 베트남까지는 엄청나게 멀어 도저히 고대의 군대가 출정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그리고 삼국지를 읽어보면 제갈량의 군대가 정글을 통과하면서 갖은 고초를 겪는 장면이 나오는데, 베트남과 중국의 국경지대는 고산 지역이다. 삼국지에 나타난 남만 정벌 과정의 행군 묘사와 현재의 지형은 전혀 다르다. 제갈량의 군대는 아마 기껏해야 현재 중국의 남쪽 지방인 쿤밍 지역 정도까지 출정하는 것이 한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73. 호아루 옛 수도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맡기고 호아루 옛 수도로 들어간다. 호아루 옛 수도로 들어가는 길은 베트남의 다른 전통적 건물이 흔히 그렇듯이, 양쪽에 호수를 두고 그 사이로 길이 나있다. 이 길을 걸어 들어가면 정문이 나온다. 그런데 지난번에 왔을 때에는 이곳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는데, 오늘은 무척 많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은 데다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왔는지 떠들썩하다. 4년 전에 베트남에 왔을 때는 아이들이 꾀죄죄한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키도 크고 인물도 훤칠하게 잘 생겼으며, 입고 있는 옷도 좋아 보인다. 모두 명랑하고 활발하게 놀며 장난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정문을 들어서면 안은 아주 넓은 광장이다. 마라톤 행사가 있는지 요란한 행사 안내 푯말들이 줄지어 서있다. 그리고 운동회라도 있는지 광장에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떼를 지어 운동을 즐기고 있다. 광장 옆으로 난 길을 지나면 왕궁 쪽으로 가는데, 옆에 있는 연못에 수련이 활짝 피어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련을 보는 것이 쉽지 않은데, 여기서는 수련을 쉽게 볼 수 있다. 붉고 하얀 수련 꽃이 활짝 피어있다. 


이 길을 지나면 한쪽에 옛 왕궁이 나온다. 있다. 석조로 된 건물인데, 왕궁이라 하기에는 규모가 작은 듯한 느낌이다. 그렇지만 매우 아름다운 건물이며, 잘 가꾼 내부 정원도 아주 보기가 좋다. 입구를 지나면 바로 연못이 나오고 연못 앞에서부터 왕궁이 시작된다. 왕궁 입구에는 용상(龍床)이라 쓰여진 넓적한 바위가 있다. 이것은 베트남 국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Dragon Bed라고 표기되어 있다. 용상이라면 보통 왕이 앉는 의자를 말하는데, 이곳은 위치 상 왕이 앉을자리는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왕궁 옆에 있는 연못과 작은 정원은 건물과 아주 잘 어울린다. 

왕궁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는 사당이 있다. 딘티엔 사원이라고 하는데, 이 사당의 크기는 왕궁과 비슷한 정도이다. 이 역시 아주 아름다운 건물인데, 건축물보다는 정원이 더 볼만하다. 사당 마당에 있는 진귀한 모습의 수목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정원이다. 오래된 건물들과 잘 어울린다. 


74. 천외비경(天外秘境) 뚜엣틴꼭


호아루 옛 수도를 나와 앞 도로를 건너면 뚜엣틴꼭에 가는 길이 나온다. 뚜엔틴꼭은 닌빈의 명소를 소개하는 데에도 한참 아래 순위로 나오고, 닌빈 여행기를 검색해봐도 별로 나오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나도 큰 기대는 하지 않고,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둘러보자는 가벼운 생각으로 찾아가 보기로 했다. 


도로에서 300미터 정도 걸어 들어가면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를 지나면 길이 200미터 정도의 큰 터널이 나오는데, 이 터널은 인공으로 뚫은 것이다. 이 터널을 빠져나오면 거기엔 놀라운 선경(仙景)이 펼쳐진다.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동굴 속으로 들어가 길을 잃어 헤매던 중 비경(祕境)을 만난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터널은 사람들이 뚫은 인공 터널이다. 그러니까 이 터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인간 세상과는 완전히 격리된 비밀의 낙원이었을 것이다.

터널을 빠져나와 이 비밀의 세계에 들어오면 먼저 큰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그 호수 둘레로는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산책로 뒤로는 수직으로 솟아있는 산들이 이 비밀의 세계를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숨겨주고 있다. 만약 사람들이 터널을 뚫지 않았다면 나는 새가 아니고는 이곳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옆으로 길게 구부러진 모습을 한 호수는 정말 아름답다. 그리고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봉우리 하나하나가 각기 개성을 뽐내며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호수의 둘레는 2킬로가 조금 넘는 정도로 보인다. 약간 부담이 되지만 걸어서 일주하기로 했다. 호수 왼쪽 끝 너머로는 넓은 공간이 있고 여러 시설물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 위의 산 중턱에는 사찰인 듯한 건물이 보인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예비 신부가 결혼사진을 찍고 있다. 화려한 색의 전통 의상을 입은 대여섯 명의 여자들이 즐겁게 사진을 찍고 있다. 처녀들인가 했는데 젊은 중년 여성들이다.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사진을 찍어주고 난 뒤, 나도 허락을 받아 그녀들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산책로 곳곳에 예쁜 열대화로 조경을 해놓았다. 호수 둘레길이 조금 먼 듯 하지만, 아름다운 호수와 그를 감싼 산의 절경, 그리고 화려한 열대화를 감상하노라면 조금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여기에 왔는데, 정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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