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Wave. 다시, 봄
나뭇가지마다 봄의 색깔이 푸릇푸릇했다. 봄순이의 앙상한 가지에도 어느덧 작고 귀여운 잎눈이 돋아났다
낚시터의 고양이는 한가롭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유봄은 경계심 없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언젠가 추월 노인이 이야기했던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생각했다.
그건 슈뢰딩거라는 물리학자가 제시한 일종의 사고실험이었다. 먼저 상자를 하나 준비한다. 그 상자 속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 들어 있다. 이제 이 상자에 50%의 확률로 붕괴하는 방사성 물질과, 그 방사성 물질이 붕괴하면 이를 계측하여 깨지도록 장치되어 있는 유리병을 넣는다. 이 유리병에는 독극물이 들어 있어 만약 깨질 경우 고양이는 여지없이 죽게 된다.
여기까지 들은 유봄은 고양이들이 좀 더 인간에 대한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실험은 고양이들에게 경계심을 심어주기 위한 실험인 걸까?
물론 아니다. 고양이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슈뢰딩거의 관심사는 고양이가 아니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원자의 세계는 ‘관측’되기 전까지 여러 가능성의 상태가 동시에 ‘중첩’되어 나타나야 한다. 그렇다면 상자 속에 들어 있는 방사성 물질의 원자도 상자를 열어 ‘관측’하기 전까지는 붕괴되거나 붕괴되지 않은 상태가 동시에 중첩되어 있어야 한다.
그럼 상자 속의 고양이는 상자를 열기 전까지 죽어있는 걸까? 아니면 살아있는 걸까? 양자역학이 맞다면 고양이는 죽어 있는 동시에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체 고양이가 좀비도 아니고 이게 말이나 되는가? 이것이 슈뢰딩거의 질문이었다.
하지만 추월 노인에 따르면 현대 물리학에서는 이것에 대해 ‘말이 된다’고 답하고 있다. 양자역학이 듣기에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물리학적으로 엄격한 실험을 거쳐 ‘중첩’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기 때문에 이 실험의 고양이도 죽어 있는 동시에 살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 ‘이상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만 남는다.
그 설명 방법 중 하나가 다중우주론이다. 우리는 고양이가 죽어버린 우주와 살아 있는 우주가 중첩되어 있는 상태 중에서 오직 한 가지 우주만을 ‘관측’할 수 있기 때문에 매 순간 한 가지 결과로 확정된 우주를 살아가는 것처럼 인식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무한한 가능성의 우주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날, 유람선에는 허공으로 이어지는 비상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의 끝에는 철문이 있었다.
유봄은 무언가에 홀린 듯 비틀거리며 계단을 올라 철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 너머에는 유봄을 구하기 위해 문을 닫아버린 한동이 있을 것이었다. 한동은 죽었을까? 아니면 살았을까? 그때 유봄이 철문 너머로 들은 총성은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총성이었을까? 아니었을까?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유봄이 문을 열기 전까지는 죽어있는 한동과 살아있는 한동이 동시에 중첩되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유봄이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여는 순간 그중 한 가지 결말을 가진 우주로 확정된 것일까?
멀리서 오리배가 돌아오는 게 보이고 있었다. 노인은 영등포에 해적이 오던 날 유봄에게 오리배를 버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른세 번째의 유봄이 이전의 유봄들과 달리 너무나 강경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결국 노인은 다른 건물에 오리배를 숨겨두는 것으로 타협했다. 그때 유봄이 노인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말했던 ‘한 가지 조건’이 바로 오리배를 버리지 않는 것이었다.
어쩌면 유봄이 다시 돌아올 것을 예비한 그 순간 이미 우주의 변화는 시작되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겪었음에도 역시 살아 있기도 죽어 있기도 한 고양이라는 건 이상했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체셔 고양이만큼이나 말이다.
“봄아!”
무엇보다도 한동이 이렇게 살아서 나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살아 있기도 죽어 있기도 한 한동이 아니라 명백하게도 살아 숨 쉬는 한동이 ‘지금 이곳에 존재’했다. 오리배 안에서 이쪽을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드는 한동을 향해 유봄도 낚싯대를 내려두고 일어나 마주 손을 흔들어 보였다.
살아 있는 한동의 말에 따르면 모기철 대위의 권총에 남아 있던 마지막 총알은 두 사람을 말리러 온 당직사관의 옆구리로 잘못 발사되었고, 총성을 듣고 달려온 군인들에 의해 모기철 대위는 제압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세계는 영원한 회귀의 굴레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세계였다. 파도의 모서리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말은 인류가 모서리를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모든 다면체에는 면과 면이 만나는 모서리가 있고, 그 다면체 속에 살고 있는 존재가 모서리에 도달했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방향을 틀어 다시 돌아가거나 모서리를 뚫고 밖으로 나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도달한 인류는 모서리 바깥으로 탈출한 인류다. 그 모서리 바깥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지구상의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지구는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지만 그건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그럴 뿐이고, 어쩌면 지구의 입장에서는 필요한 모습을 되찾은 것일 수도 있었다.
“커피 탈까?”
옆에서 함께 낚시에 전념하던 설하나가 대답도 듣지 않고 유봄의 스타벅스 텀블러 안에 믹스 커피를 반쯤 붓고는 자신의 컵에도 나머지 반을 부었다. 잠시 후 텀블러 안에서 아메리카노 대신 믹스 커피의 달큰한 향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 옆에서 추월 노인이 불을 피우고 생선을 굽기 시작하자 고양이가 쫑긋 고개를 돌렸다. 유봄은 이 평화로운 식사 준비를 ‘관측’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봄은 주머니에서 인류 최후의 립밤을 꺼내 입술에 바르고는 계단으로 향했다.
“또 강아지처럼 마중 나가려고?”
설하나의 핀잔을 들으며 유봄은 유람선의 계단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한때 롯데타워에 꽂혔던 유람선은 배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지금은 관악산의 어느 벼랑에 꽂혀 있었다. 파도의 모서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 설하나가 마지막으로 솜씨를 발휘한 것이었다. 덕분에 유람선은 이들의 보금자리이자 천혜의 요새가 되었다. 이 한강 유람선을 만든 이들과 탔던 이들 모두 이 배가 산속에서 자신의 항해를 마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아래층에 내려선 유봄은 한동의 모습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라? 아까는 분명히 있었는데? 또다시 슈뢰딩거의 한동인가?
“야! 크억?”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어깨를 잡으며 큰 소리로 놀래킨 한동의 복부에 본능적으로 주먹을 꽂아 넣은 유봄은 이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그러면 어떡해? 깜짝 놀랐잖아.”
“아니, 그렇다고 다짜고짜 주먹질부터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어찌나 아팠던지 그만 주저앉아버린 한동의 눈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혔다. 유봄은 멋쩍게 웃으면서 한동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한동이 ‘짜잔’ 하면서 뒤에 숨기고 있던 꽃다발을 꺼냈다. 야생화들을 풍성하게 모으느라 꽤나 애를 썼을 것 같았다.
“저쪽 산자락에는 벌써 꽃이 피었더라고.”
유봄은 수줍게 꽃을 받아 가슴에 안고서 향기를 맡았다.
“고마워.”
이제 정말 봄이었다.
<작가의 말> 유봄의 여행을 마지막까지 함께해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