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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맛있던 조이스 카페와 카페 히비

지금은 없는 서울의 카페들 - 06

by 이정미

홍대 앞 조이스 카페는 식사 메뉴에 집중하던 브런치 카페였다. 샐러드와 샌드위치가 있고, 특히 파스타가 여러 종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조이스 카페에서 주로 먹은 것은 수프였다. 다른 음식에 가볍게 곁들이는 작은 수프가 아니었다. 큼지막한 그릇에 가득 담긴, 진하고 걸쭉한데다 건더기도 푸짐한 수프였기 때문에 식사 한 끼로도 충분했다. 크루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큼직한, 바삭한 빵조각과 치즈도 얹어져 있었다. 거기다 카페에서 직접 구운 부드러운 포카치아 빵 두 조각이 또 따로 나왔다. 빵에 수프를 묻혀 가며 다 먹고 나면 기분 좋게 배가 불렀다.


브로콜리 수프, 치킨 수프, 새우 수프, 홍합 수프, 야채 수프 모두 맛있었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터키식 수프인 아몬드 초르바다. 다른 수프들은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맛을 예상할 수 있었다. 실제로 먹었을 때에도 진하고 맛있기는 해도 예상 범위를 특별히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몬드 수프는 생소했다. 수프에 아몬드라니? 무슨 맛인지 상상도 잘 되지 않았다. 주문해서 먹어 보니 감자 수프에 아몬드를 갈아 넣고 덤으로 아몬드 슬라이스를 한 움큼 뿌렸는데, 감자 수프의 부드러운 맛에 아몬드의 고소하고 풍부한 맛이 아주 잘 어울렸다. 유일한 단점은 브로콜리, 치킨, 새우 수프의 베이스도 모두 감자여서 맛이 어느 정도 비슷비슷했다는 것이다.


지금에야 알았지만 삼청동에 조이스 프렌즈라는 분점도 있었던 모양이다. 조이스 카페는 영국을 테마로 삼았고 벽에도 런던의 지하철 노선도와 빨간 버스가 그려져 있었는데, 조이스 프렌즈는 프랑스를 테마로 삼아서 벽에 파리의 지하철 노선도가 있었다고 한다. 밝은 파란색 간판, 간판과 대비되는 노란색으로 일부를 칠한 외관은 두 가게가 똑같았다. 유럽의 작고 오래된 식당들을 연상시키는 소박하고 친근한 인테리어와 나무 테이블도 마찬가지였다. 본점인 조이스 카페와 분점인 조이스 프렌즈 모두 2010년대 중반쯤 문을 닫았다.


조이스 1.JPG 터키식 수프인 아몬드 초르바. 걸쭉하고 양 많은 수프에 빵도 넉넉히 나와서 배가 불렀다.


비슷한 시기, 마찬가지로 홍대 앞에 있던 카페 히비라는 곳에서도 종종 밥을 먹었다. 조이스 카페와는 달리 음료에 중점을 둔 말 그대로 카페였다. 디저트와 식사의 종류는 많지 않았고 특히 식사는 점심시간에만 팔았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허니브레드로 배를 채워야 했다. 그러나 음료보다는 점심과 분위기로 더 유명한 곳이었던 것 같다.


거친 콘크리트 벽에 그대로 핸디코트를 칠하고 일부러 낡은 의자와 소품들을 가져다 놓아서 복고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2010년 전후로 이렇게 노출콘크리트 인테리어를 한 카페가 많이 생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면서도 실내가 전체적으로 흰색일 뿐 아니라, 2층에 있고 창문이 커서 채광도 좋았기 때문에 밝고 정갈한 느낌이 났다. ‘히비’라는 일본어 이름처럼(‘하루하루’라는 뜻이다) 마치 잔잔한 일본 영화에 나올 듯 꾸며진 공간이었다.


메뉴도 일본풍이었다. 식사, 그 중에서도 고소한 에비(새우) 카레가 특히 인기였다. 크림을 넣어서 일반적인 카레보다 훨씬 부드러운 맛이 나는 카레에 탱글탱글한 알새우가 들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메뉴가 조금씩 바뀌었던 것 같은데, 내가 다니던 시기에는 에비 카레 외에도 토마토소스를 마치 카레처럼 만들어 밥에 얹은 토마토 고항, 그리고 크림 스튜가 있었다. 식사에는 샐러드와 과일이 함께 나왔고, 거기에 커피와 자몽주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카페 히비 1.JPG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은 에비 카레. 부드러운 맛이 났다.


크림 스튜는 가장 인기가 덜했던 것 같지만 나는 가장 좋아했다. 일본에서는 자취생이 제일 먼저 배우는 요리가 카레와 크림 스튜라고 할 정도로 크림 스튜는 흔한 요리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일본식 카레는 매우 흔한 반면 일본식 크림 스튜를 파는 곳은 그다지 본 적이 없다. 평균적인 한국인의 입맛에는 느끼하고 밍밍하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그래도 카페 히비의 크림 스튜는 맛있기만 했다. 고소하고 진하면서 담백했다.


카페 히비 2.JPG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크림 스튜. 밥 대신 빵이 나왔는데 잘 어울렸다.


카페 히비는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2016년쯤 메뉴를 바꾸어 새로 문을 열었다. 밥과 스튜는 사라졌고 대신 그보다 간단한 샌드위치와 수프를 팔기 시작했다. 빵 사이에 생크림과 생과일을 듬뿍 넣은 후르츠산도가 특히 인기였던 듯하다. 그러나 2017년 가을 가게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새로운 가게는 이름만 바꾸었고 카페라는 업종과 인테리어는 그대로 두었다. 원래도 간판이 워낙 작았기 때문에 이름이 바뀐 것을 한동안 몰랐던 사람들도 많은 모양이다.


다행히 카페 히비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듬해인 2018년 제주도에서 히비 안도 코하쿠(日々&古白)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업종도 카페가 아니라 일본 가정식으로 바꾸었다. 강점이었던 일본식 식사를 전면에 내세웠다니 반갑고, 홍대 시절의 단골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 같아 또 반갑다. 나도 제주도에 갈 기회가 있으면 들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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