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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낙원이 사라지다, 히루냥코

지금은 없는 서울의 카페들 - 08

by 이정미

없어져서 아쉬운 카페들이 많지만, 합정에 있던 히루냥코는 내게 그 중에서도 아픈 손가락이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목재 위주로 꾸민 건물부터가 예쁘면서도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2층의 계단 바로 옆 테이블을 특히 좋아했다. 층계참의 벽에 있는 큰 창문을 통해 초록색 정원이 내다보였기 때문이다. 가게 입구의 반대 방향에 있었으니 뒷마당에 해당하는 공간이었지만, 꽤 널찍한데다 대문까지 있었다. 아마 개조 전에는 그곳이 집의 정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차를 마시며 그 창문을 내다보고 있으면 어릴 적 막연히 동경하던 마당 있는 2층집에 잠시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부뿐만이 아니라 창밖도 보기 좋다는 것은 홍대 주위에서는 흔치 않은 장점이었다. 창문이 큰 가게는 많지만 그 창문 밖은 회색 길이고, 자동차들이 매연을 내뿜으며 달려가거나 행인들이 침을 뱉으며 걸어가는 광경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일본어로 ‘낮 고양이’라는 뜻인 히루냥코에는 진짜 고양이가 있었다. 이름은 샤로, 나이는 한 살. 털 색깔을 보고 샴 고양이인 줄만 알았는데 사장님이 랙돌 품종이라고 말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귀엽게 생겼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을 좋아해서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히루냥코의 명물이었다. 가게에 손님이 나 혼자였던 어느 평일 오후, 샤로에게 인사를 한 후 책을 읽는데 샤로가 내 무릎에 펄쩍 뛰어올라 책을 들여다본 적도 있었다. 마치 ‘날 안 보고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거야?’ 라고 말하듯이.


히루냥코 01.JPG 초록빛 창밖, 예쁘고 편안한 느낌의 인테리어, 사랑스러운 샤로


가게 안팎의 풍경에 일단 기분이 좋아지고, 샤로에 더욱 기분이 좋아지고 나면 그 다음은 차와 디저트에 본격적으로 행복해질 차례였다. 부드러운 딸기 케이크부터 바삭한 모나카까지 모든 디저트는 가게에서 직접 만들었다. 맛과 모양 모두 수제 느낌이 살아 있으면서도 투박함 없이 정갈해서, 얼마나 정성들여 섬세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히루냥코에서 처음 밀크티를 주문했을 때는 당황했다. 찻잎을 담은 스트레이너(거름망)를 찻잔에 걸쳐서, 마치 티백처럼 그곳에서 차가 우러나도록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가게가 한산했기 때문에 나오는 길에 사장님에게 귀띔을 했다. 스트레이너를 이런 방식으로 쓰는 것은 처음 봐서 좀 놀랐다, 이렇게 찻잔에 올려놓는 형태의 스트레이너는 차 속에 있는 찻잎을 걸러내는 용도이고, 찻잎을 담아서 우려내는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다. 사장님의 반응은 “아…….” 였다. 조용하고 마음 여려 보이는 분인데 내 지적에 혹시 상처라도 받은 건 아닐까, 가게를 나서면서 조금 걱정됐다.


그런데 다음에 찾아갔더니 사장님이 나를 알아보고 밝은 얼굴로 먼저 말했다. “티팟 주문했어요!” 며칠 후 가게의 분위에 어울리는 예쁜 티팟에 홍차가 서빙되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건넨 의견이 받아들여져서 기분이 좋았고, 내가 무언가 기여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히루냥코에 대한 애정도 커졌다. 찻잎도 포트넘 앤 메이슨과 마리아쥬 프레르 등의 유명 브랜드를 중심으로 점점 다양하게 갖춰져서, 곧 티룸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가게가 되었다.

히루냥코 03.JPG Before. 나를 당황시켰던 거름망 티백. 그래도 아펠 슈트루델(오스트리아식 애플파이)은 참 맛있었다.
히루냥코 06.JPG 과도기. 아직 밀크 저그가 없어서 라떼 잔을 대신 사용하고 있었지만, 거름망은 원래의 용도를 찾은 시기. 디저트는 직접 구운 스콘과 클로티드 크림.
히루냥코 08.JPG After. 옛날 이층집 같은 가게 건물과 잘 어울리던 빈티지 느낌의 티팟, 그리고 귀여운 밀크 저그.

사장님은 조용하고 얌전했지만 가게에 대해서는 확고한 원칙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동물성 100% 생크림이 갓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였고 히루냥코에서도 동물성 100% 생크림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사장님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 적이 있다. “동물성 100%를 사용한다는 다른 가게들에 가서 먹어봤는데, 아닌 것 같던데요?” 그 다른 가게들이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모른다. 최소한 히루냥코의 생크림은 고소한 우유 맛이 나면서 전혀 느끼하지 않고, 잘 흘러내려서 모양을 잡기 힘들기 때문에 신경 써서 다루어야 하는 동물성 100%가 확실했다.


이렇게 무엇 하나 흠잡을 데가 없던 히루냥코는 어느 카페를 갈지 고민할 때 항상 상위 후보지였다. 금세 유명한 홍대 카페 중 하나가 되었으니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주말에는 항상 붐볐지만 나는 집에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덕분에 한산한 평일에 찾아갈 수 있었다. 맛있고, 예쁘고, 심지어 고양이까지 있는 히루냥코는 작은 낙원과도 같았다.


그러나 2014년 여름, 히루냥코는 2년가량의 영업을 마무리하고 폐업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한창 논란이 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히루냥코도 건물주에게 쫓겨난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사장님에게 진짜 이유를 들었다. 그 내용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 다만 건물주와는 관련이 없는 이유, 그러면서도 불가피한 이유였다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폐업 전 마지막으로 찾아갔을 때는 사장님과 연락처를 주고받고, 내 남자친구(지금은 남편)도 끼워서 저녁식사 약속까지 잡았다. 식사 자리에서는 그동안 있었던 일과 폐업 후의 계획을 포함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샤로가 더 이상 카페 손님들을 만나지 못해서 외로워하더라는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사장님은 곧 서울에서 먼 지역에 카페와는 무관한 업종의 가게를 열었다. 사교성이 없는 나는 서울과 카페라는 공통의 화제가 사라지고 나자 사장님에게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지 몰랐고, 그래서 오래 연락을 이어 나가지는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아쉽다.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히루냥코에 가고 싶은데 갈 수 없어서 슬픈 날들이 이따금씩 있었다. 내가 사랑했던 카페들, 사랑하는 카페들은 그 외에도 여러 곳이 있다. 그러나 히루냥코는 참 많은 것을 갖춘 가게였다. 인테리어, 창 밖 풍경, 차, 디저트, 거기에 사람에게 먼저 다가와 주는 고양이까지. 지금은 없어진 서울의 카페들 중에서 가장 아쉬운 곳을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고민은 많이 하겠지만 아마 히루냥코를 고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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