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하나님께 빚진 아이

첫 번 째 가출

by 재해석


십 대의 가출을 충동이라고만 부르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사춘기 딸을 키워 본 지금도 그렇고, 사춘기 시절 가출 경력자인 나 역시 그렇다.


누군가는 사춘기를 병처럼 다뤄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피식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병은 까닭 없이 앓아눕지 않는다.


아이가 주는 것만 받아먹는 새싹이라면, 사춘기는 가지를 어디로 뻗을지 궁리하는 시절이다. 줄기가 꺾이지 않게 끈 하나 느슨하게 걸쳐 두면 될 일을, 어른들은 철사로 바싹 동여매고 제 뜻대로 세우려 든다. 그러면 아이는 자라지 못하고 버틴다. 버티다 못한 어느 날, 제 발로 문턱을 넘는다.


나는 보육원 아이였고, 사춘기였고, 어른들 기준으로 가출 전과가 네 번이나 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보육원 아이여서 가출한 것도, 사춘기라서 무턱대고 뛰쳐나간 것도 아니었다는 것.


첫 번째 가출은 흩어진 네 자매를 한 곳에 모으기 위해서였다.

보육원에서 지내던 어느 날 사라졌던 아빠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살던 곳 사슴집 할머니가 행방을 일러 주신 모양이다.


학교가 쉬는 날이면 언니랑 아빠 집에 갔다. 아빠는 어느 장로님 댁 양계장 일을 거들며 지냈는데, 나만 장로님 댁 청소를 시켰다. 품삯 없는 노동이었다. 어린애였어도 셈은 빨랐다. 억울했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로님 방을 정리하다가 헌금 봉투를 발견했다.

봉투 안에는 삼만 원이 들어 있었다.


그때는 온 나라가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보며 따라 울던 시절이다. 동생들과 이산가족이 될까 봐 걱정이 됐다. 동생 눈꺼풀 위 상처를 잊지 말아야지. 막내는 흉터가 없는데 어떡하지. 그런 생각들로 가득했다.


내 눈에 그 헌금이 차비로 보였다.

하나님이 내 손바닥에 쥐여 준 품삯 같았다.

이 돈으로 동생들을 찾아 데려오너라.

정말 그렇게 들렸다.


속으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하나님, 이 돈은 어차피 하나님 돈이잖아요. 제가 잠깐만 빌릴게요.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께 빚을 졌다.


어른이 되어 교회 다닐 때도 십일조는 놓쳤지만, 여유가 생기면 꼭 삼만 원씩 헌금을 했다. 빚을 갚는 기분이었다. 열두 살에 시작된 채무는 질겼다.


열두 살짜리 동생 찾기는 말로 하면 간단했다.

시내버스 한 번, 시외버스 한 번, 고속버스 한 번, 그리고 배 한 번. 지도 위에서는 가느다란 선 하나였겠지만, 어린애 혼자 건너기엔 깊고 험했다.


그 길에서 또 다른 어른들의 얼굴을 만났다. 친절을 가장해 더러운 호기심을 채우는 가짜 어른을 봤다. 그런 세상이 무서웠지만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결국 동생들을 찾아냈다.


소식을 듣고 엄마가 외가가 있는 작은 섬으로 들어왔다. 엄마를 보고 싶어 찾아온 줄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원한 건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 앞에서 또렷하게 말했다.


“동생들도 고등학교까지는 졸업해야죠. 그리고 이산가족 되면 어떡해요.”


열두 살짜리 입에서 나오기엔 늙은 말이었다.

그때의 나는 아이 노릇을 오래전에 끝낸 뒤였다.


엄마는 내 말을 듣고 다음 날 짐을 쌌다.

그렇게 흩어졌던 네 자매는 다시 모였고, 우리는 함께 보육원으로 돌아왔다.


누가 알까.

동생들이 고등학교까지 다닐 수 있었던 첫 물꼬에, 내 첫 가출이 있었다는 걸.


나는 아직도 십 대의 가출을 함부로 충동이라 부르지 못한다.

적어도 내 첫 번째 가출은 집을 버리고 달아난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께 빚을 지면서까지,

흩어진 피붙이의 손을 붙잡으러 출장가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