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월이 아빠’입니다. 오늘은 조선시대 사회상, 그중에서도 어두운 면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조선은 당시에 나라 안팎으로 혼란스러웠던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 시작한 나라이다 보니까 포부도 대단했습니다. 유교적 이상을 추구하면서 국민 생활 안정에 큰 관심을 기울였던 ‘조선’, 이대로라면 진정 유토피아가 따로 없겠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조선 사회는 초기부터 부정과 부패가 만연했고, 태어나면서부터 따라다니는 신분의 한계는 극복할 수가 없는 구조였습니다. 중앙 관리부터 수령, 무관, 말단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뇌물을 걷었어요.
아울러서 조선의 신분제도는 매우 경직되어 있었고요. 조선 전기에는 ‘적서 차별’이 특히나 엄격했습니다.그렇다 보니까 아무리 특출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 해도 신분의 한계를 벗어날 방법이 없었죠. 바로 이때 부패한 사회와 불합리한 신분제도를 혁파하고 고통 받는 피지배 계층이 없는 국가를 지향하는 이가 등장했으니, 바로 바로 ‘홍길동’이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홍길동전’입니다. 제가 읽은 책은 민음사에서 2009년에 출간한 책이고요. 다양한 판본 중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판본인 ‘완판 36장본’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겠습니다. ‘홍길동전’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파헤치고, 새로운 영웅과 이상향을 제시하는 ‘혁명적 유토피아 소설’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 실제로 등장하는 도적떼의 두령 홍길동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통해서 당시 사회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습니다.
때는 세종 15년, ‘홍문’이라는 재상이 있었습니다. 그가 ‘청룡이 입안으로 들어오는 대몽’을 꾸고는 몸종인 ‘춘섬’과 은밀한 시간을 갖고 아이를 낳았으니, 그가 바로 ‘길동’입니다. 아이는 점점 자랄수록 재주가 비상하고, 한 말을 들으면 열 말을 알고, 한 번 보면 모르는 것이 없는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말인 ‘호부호형’ 즉,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 한다’ 바로 이 작품 ‘홍길동전’이 원조입니다. ‘홍길동’은 이렇게 ‘몸종’이 낳은 자식인 ‘서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길동’의 특출남에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끊이지를 않고 ‘홍문’마저 ‘길동’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 시작하자 이를 시기한 무리가 등장했습니다. 길동이는 이내 집을 떠나 방랑길에 오르게 됩니다.
큰 체격에 용감함을 가졌으며 유교 경전은 물론 천문, 지리, 주역에도 통달해 바람과 구름을 부리고 둔갑술까지 펼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홍길동’은 ‘활빈당’이란 무리의 우두머리가 돼서 당시 사회에 깊숙이 파고들어있던 ‘적서차별’, ‘탐관오리의 횡포’, ‘승려의 부패’, ‘조정의 무능함’을 통쾌하게 꾸짖어 놓고는 나라 밖에 ‘율도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 스스로 왕위에 오릅니다.
작품 초반에 길동이가 집을 떠날 때 아버지 ‘홍문’이 그에게 ‘호부호형’을 허락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면 얘기가 좀 달라졌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아닙니다. ‘홍길동전’은 ‘호부호형’을 허락하는 장면을 통해서 이 작품이 다루려는 문제가 한 가정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선언한 것이죠.
‘홍길동전’은 무예, 학문, 용병술, 초능력까지 두루 두루 갖추고 있는 사기캐 ‘홍길동’의 기원’부터 ‘활약상’, ‘최후’까지의 일대기를 다루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 히어로 물들이 보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영웅이 되어 세상을 구한다’라는 공식과도 잘 맞아떨어집니다. ‘홍길동전’이 쓰일 당시의 조선 백성들은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지배 계층의 압박과 수탈을 견디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당시 차별과 억눌림 속에서 살아온 백성들은 ‘홍길동’을 통해 자신들의 소망을 대신 이루는 쾌감을 얻었을 것이고, 그를 진정한 조선시대 히어로, ‘영웅 홍길동’으로 인정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 작품은 지배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동시대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백성’을 향하고 있는 것이죠.
오늘은 ‘홍길동전’을 통해 조선 전기 사회의 부패와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비단 이것이 조선 전기에만 해당하는 문제일까요? 아니죠? 수 백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조선 건국을 이끈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이상, 즉, 차별 없는 세상, 백성 모두가 굶지 않는 세상, 평화로운 세상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의 변화는요, 개인의 변화에서 시작합니다. 지금 내 모습을 돌아보고, 나의 한계를 점검한 뒤에 각자가 ‘홍길동’이 되는 것, 이것은 개인의 삶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로 이어지는 기적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가 ‘홍길동전’ 리뷰를 빙자한 팩트폭행이었습니다. 저는 또 다른 영상으로 여러분을 만나러 오겠습니다. 즐겁게 감상하셨다면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까지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