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던 초등학교 땐 반장이라는 자리가 멋져 보여서- 공약 발표를 꽤 야무지고 당돌하게 준비해 친구들 앞에 나섰고, 1차 투표를 뒤집어엎으면서 최종 당선이 되었다. 그때의 희열이란!!
반장이라서 선생님을 도와 반 애들 시험지를 채점했고, 반장이라서 음악 시간에 오르골 피아노로 반주했으며, 반장이라서 반에 햄버거를 사서 돌리기도 했고, 반장이라서 학급 회의도 맡아서 진행해봤다. 사실 반장이어서 보다는 말 잘 듣는 다재다능이었던 학생이어서 일 듯 싶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중학교 때에도 한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주로 선생님들의 예쁨을 받아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특히 중3 때는 투표도 없었다. 공부를 무기로 강제로 반 1등과 2등이 나란히 반장과 부반장으로 앉혀졌다.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일까.)
지금 생각하면 나는 내 성적만 챙기기에도 벅찼으니 훌륭한 리더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내 장점 중 하나는 '사람을 편견 없이 대하기'였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집이 부유하든 아니든 내겐 똑같은 반 동료였다. 모나지 않게 두루두루 잘 지내려고 했다. 딱히 챙기진 않지만, 내 선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해준다.
뭐, 교우 관계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스쳐 지나간 것도 많을 것이다. 체육을 포함한 내 성적이 압도적이었으니 타인을 질투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견제를 많이 받았겠다만, 나의 둔한 성격은 상황을 커버했다. 반 계주 4번 주자로 반 대항전에서 1등을 거머쥐며 솔선수범 행동으로 내 몫을 채웠다. (사실 1등 하겠다는 내 욕심이었겠지.)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번쩍이는 반장이라기보다는, 흐르는 물처럼 스며들며 조용하고... 하지만 은근히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던 어설픈 반장이었다.
내 학창 시절 별명은 미어캣 '티몬'이었다. 티몬처럼 재빠르게 잘 돌아다닌다고 ㅋㅋ. 특히 급식실로 뛰어갈 때 그 진가는 빛을 발했다. 품바 친구와 듀엣을 만들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반장 자리는 내게 부담스러운 짐이 되었다. 지금에야 학생부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하지만, 그때는 내신과 수능 성적이 절대적이었다. 반장이라는 자리에서 주어지는 희생과 봉사를 내 마음의 작은 그릇은 담아내질 못했다. '내가 왜 해야 할까? 내 학업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귀찮은 일 투성이인데?'
감투에서 주어지는 책임감이 싫어졌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선거에 안 나가기 시작했다. 나보다 더 능력 있고 멋진 리더십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예 감투 욕심이 없진 않아서 ㅋㅋ 가끔씩 반 아이들의 이목을 받는 정보 부장을 오래 했다. (주로 하는 일이란 : 반에 있는 TV가 안 나올 때 위풍당당하게 화면 뒤로 간다. 선 하나만 뺐다 끼면 켜진다. 오오오~ 미다스의 손이라며 환호하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뿌듯하게 다시 나오면 성공!)
난 확실하게 '은은한 관종끼'가 있었나 보다. ㅋㅋ
10대 시절에 이미 여러 번 반장을 해보며 욕구가 충족되어서 그럴까. 나는 역할에 맞지 않는다는 자기 객관화를 뚜렷하게 가져서 그럴까. 나는 지금도 리더 자리에 욕심이 없다. 그럼에도 너무 존재감이 없는 건 또 싫고. 역시 집단 속의 '나'의 균형 잡기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