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1~2살 차이가 뭐 그렇게 대단했는가 싶다만 그때는 차이가 참 컸다. 마치 알에서 갓 태어난 병아리처럼 쫄랑쫄랑 선배들을 따라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배워가고 있었다.
첫 MT(학기 초에 단체로 다녀오는 짧은 여행)에서 대형 스키장 리조트를 통째로 빌려 각 학과별로 숙박을 했다. 숙박이라 하긴 애매한 게, 밤에 끝없이 펼쳐지는 술 게임과 방 뺏기 전쟁으로 잠은 술에 골아 떨어지기 일쑤였다. (나는 술 게임을 꽤 잘했고, 주량도 생각보다 센 편이라 요리조리 음주를 잘 피했다.ㅋㅋ)
그렇게 첫 학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지금에야 대학교 안에서 술을 못 마시고 주량껏 마시는 점잖은 문화가 많이 정착되었지만, 그때는 술은 곧 젊음이었다.
어라 이곳은 동물의 왕국인가?
20대 초반의 고삐 풀린 망아지들은 입시의 족쇄를 풀고 자유로운 대학 캠퍼스를 뛰어다니기 바빴다. 서로 눈이 맞아 하루가 멀다 하고 커플이 생겼다 깨지곤 했고, 함께 수업 듣는 친구들과 친해지며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수다를 떨곤 했다.
내가 경영학과였기에 더 캠퍼스 라이프를 즐겼을 수도 있다. 일반화시키기에는 어렵지만 내가 느끼기에 당시의 자연대 공대생들은 쏟아지는 과제의 양에 도서관으로 향하기 바빴고, 상대적으로 취업에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인문대생은 바쁘게 미래를 개척하고 있었다. 우리는 팀 프로젝트가 많아 사람 만날 기회가 더욱 주어졌으며, 학교의 간판 학과로 활동 기회도 많았다. (취업이 어려웠기에 경영과 법 등 실용 학문이 우대되었고, 그러던 중 법대가 문을 닫았다.)
'즐길 수 있을 때 맘껏 즐기자.'
매일 책만 보던 고등학교 시절의 뿔테 안경과 교복 치마 안 체육복 바지를 벗어던지고 이젠 변신을 할 시간이었다. 렌즈를 끼다가 불편해서 아예 라식 수술을 했다. 어설프지만 풋풋한 화장으로 얼굴을 가꾸고 머리 스타일을 바꿔보며 나만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미팅과 소개팅이 들어오면 친구들과 함께 나갔다. '오늘은 어느 대학교 무슨 과래.' 무슨 스타일로 옷을 입을지 고민하고 마치 공작새 마냥 서로를 뽐내며 다녔다.
만우절, 무슨 데이 등등 특별한 날들을 빌미로 모여 학교 안 분수대를 점령했고, 저녁마다 주변의 저렴한 술집들이 붐볐다. 싸이월드(지금의 인스타)로 일촌을 맺으며 서로의 꾸며진 일상을 자랑하기 바빴고, 당시 유행하는 음악을 들으며 감성에 젖었다. 그러면서도 다들 공부한 가닥이 있어서 그런지 시험 기간만 되면 갑자기 뿔테 안경과 후줄근한 후드티로 무장한 대학생들이도서관에 가득 찼다. 그 갭차이가 우스웠지만, 이것이 곧 대학생이겠거니- 입시 끝의 선물이겠거니- 생각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탈 같은 시간은 딱 2년, 갑자기 무채색에서 무지개 빛으로 세상이 변하는 그 느낌은 참 오묘하고 반가운 일이었다.
(코로나로 제약이 많았던 몇 년 전.. 갓 대학생이 된 아이들이 이 청춘의 시간을 누리지 못해 참 아쉽고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ㅜㅠ 뭐 점점 더 낭만이 사라지고 실용적이 되어가는 사회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