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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니엘 May 09. 2024

집안일이 너무 하고 싶어요

웰컴 투 주부의 길


어릴 때부터 엄마는 내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다.

아빠가 바깥양반으로 돈을 벌고, 엄마가 안사람으로 집안일을 한다는 그 시대 고정적인 성 역할.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엄마는 '집안일은 내 꺼다.' 라는 마음으로 임하셨다.


"나중에 결혼하면 집안일 다 알게 될 거야. 굳이 지금부터 안 해도 돼."
"엄마도 닭 손질하는 거, 전복 다듬는 거 처음에 다 몰랐어. 나중에 하면 다 돼."


이 말은 꽤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데

1. 결혼 후의 집안일은 엄마가 하루종일 끝없이 하는 것처럼 고되다.

2. 집안일은 너의 일이다.


이렇게 귀찮고 어려운 거를 나중에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굳이 지금 안 해야겠다. ㅋㅋ

곁에서 분위기로만 집안일을 익힌 나는 미래에 생길 집안일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나도 배워보자.', 집안일을 조금이라도 도와드릴까 하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뭐라도 가르쳐주고 싶은 엄마의 욕심에 잔소리 폭탄이 이어졌다.


"(설거지) 접시는 이렇게 닦아야 더 뽀독뽀독해. 그릇은 이렇게 넣어야 안 깨져."
"(창문 닦기) 창문에 얼룩지잖니, 걸레 돌려서 이런 식으로 닦아야지."
"(빨래) 빨래는 이렇게 개야 옷이 구겨지지 않아." (아니 또 입을 건데 그렇게까지 칼각을 접어야 해?)

가르쳐주는 것은 감사하지만, 엄마의 단점은 끊임없는 무한 반복.

아이고~~ 그 지겨운 잔소리에 하고 싶은 마음도 싹 사라졌다. 그렇게 집안일과 멀어졌다.


@토순이 이모티콘. 딱 요런 느낌. 엄마 두고봐 나는 엄마처럼 힘들게 안 살거야!


그렇게 20대가 다 가도록 사과 하나도 잘 못 깎았다. 칼질을 해봤어야 알지.

칼보다 펜이랑 더 가까웠다. 방 안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 집안의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렇게 귀하게 자란 내가 이젠 독립을 해서 나만의 집이 생겼다.


'집안일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뭔 소린가 싶으실까. 난 정말 '나만의' 집안일이 너무도 해보고 싶었다.

집안일로 엄마가 매일을 힘들어한 만큼 정말 그렇게 어렵고 힘든 것일까? 확인해보고 싶었다.

직접 경험해 봐야 엄마를 이해하고 집안일을 파악할 수 있을 듯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점차 나만의 패턴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리를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티도 안 나고 꼼꼼해야 하는 청소보다 털털하지만 빠른 손놀림으로 집을 깔끔하게 유지하는데 시간을 썼다.  

쉽게 어지르지도 않으니, 정리할 것도 별로 없었다. 엄마는 도대체 어떤 집안일에 하루종일 시간을 쓴 걸까?


혼자사니 청소와 빨래는 일주일에 한 번 하면 되었다. 건조기가 있지만 햇 좋을 땐 베란다에 널었다.

먹는 게 많지 않으니 설거지는 쉬웠다. 음식물 통 비우기가 귀찮았지만, 며칠 안 해도 벌레가 생기진 않더라.


마치 실험을 하듯이 하나씩 나만의 정도를 찾아갔다.


물컵 말고 생수페트병으로 입 안 대고 벌컥 마셔도, 설거지가 귀찮아 며칠 그대로 냅둬도, 부엌에 서서 가볍고 빠르게 아침을 먹어도, 빨래를 일주일 더 밀려도 괜찮더라. 빨래할 때 흰 옷과 검정 옷을 나누지 않아도 옷이 물들지 않았다. 창문을 주기적으로 닦지 않아도 신경 쓰이지 않았고, 베란다 청소는 하고 싶을 때 아주 가끔 했다. 커튼이 없어도 햇빛을 받으며 일어나는 것도 괜찮았다.


나는 집안일의 기준이 낮은, 괜찮은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여전히 내가 못하는 것은 뭐가 있을까. 새 옷을 샀을 때 손질하는 바느질이라든가, 화분 물과 사랑을 주며 정성껏 가꾸기 라든가, 창문 밑에 생기는 주기적인 먼지 청소라던가(이건 못 보다는 안이다).  음.





그렇게 2년이 흘러갔다.

내 기준 집안일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독립을 해보고 알게 된 엄마는 깔끔하고 예민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청소에 대한 기준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버거워하시면서도 본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열심히 하신 것이었다. 반면에 나는 꽤 둔하고 무던한 사람이더라...


법륜 스님은 결혼이란 룸메이트를 구하는 과정이라 그랬다. 결혼은 현실, 시뮬레이션을 그려본다. 함께 사는 누군가가 내게 "먼지 좀 닦고 살자." 라며 잔소리를 할 수도 있겠다. 아님 그가 어지르는 모습을 보며 계속 정리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 신경 안 쓰이던 어떤 집안일 그가 하고 있으면 나 자신이 미안해져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도 상상된다. 조율해 나가는 과정일 테지만 어느 쪽이든 불편하다.


야아~~~ 사랑 없이 조건만 보고 결혼하면, 집안일로 바로 파국이겠구나 ㅋㅋㅋ 사는 게 불편해질 거라는 직감은 점점 커져간다. 다름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귀찮아져 버렸다. 시 집안일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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