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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니엘 May 14. 2024

맛있는 요리를 해주는 로망이 있었다

정서적 허기를 채워보자


내겐 '요리'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식구가 무엇이던가, 같은 집에서 살며 식사를 함께 먹는 사람 아니던가!

내게 생긴 새로운 식구.. 신혼 부부하면 그려지는 아름다운 환상, 그 로망을 채우고 싶었다.


엄마는 아빠의 아침밥을 챙겨주고 현관을 나갈 때 인사해 주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그것이 엄마가 아빠에게 부부의 사랑(의리)을 표현하는 방식이었고, 30년간 보고자란 나 또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모습이었다. 결혼을 한다면 아침을 가볍게라도 챙겨주리라! 출근하기 전에 같이 먹고 가자!


퇴근하고 돌아온 저녁에 내가 오밀조밀 열심히 해본 음식을 상대와 알콩달콩 맛있게 먹어보면 좋겠다. 늦은 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가볍게 맥주 한잔과 맛있는 한 끼 메뉴를 먹는 것도 로망이었다.


근데.. 나는 혼자잖아? 하고 싶은 욕망만 잔뜩 남아버렸다.

아아~ 이 욕망(결핍, 욕심)을 어떻게 채운담...??


그래, 누구보다 사랑해줘야 할 나 자신에게 해주자!

그리고 남편 대신 내 곁에 있어주는 소중한 친동생과 친구들을 잔뜩 잔뜩 초대해서 먹여주자!


이를 악물었다. 두고 봐, 이런 귀한 시간의 소중함을 날려버린 걸 후회할 만큼 좋은 시간을 나와 내 주변에게 베풀 거야. 내 마음대로 어떻게든 욕망을 해소해서 고이 날려버리고자 노력했다.






칼질 하나 못하고 아는 요리도 없는 나이지만, 그건 그동안 해볼 기회가 없어서이리라.


코로나로 사람들이 외식을 하지 않았고, 집밥이 유행했다. 간편함을 추구하는 시대상도 있었다.

요리 재료와 레시피가 들어있는 밀키트들이 쏟아져 나왔고, 하나씩 사서 해보는 재미를 느꼈다.

순두부찌개, 어묵탕, 미역국 같은 기본 메뉴에서부터 에그인헬, 닭근위볶음, 딸기잼, 귤 샌드위치 등등 다양한 야식과 디저트까지 도전해 보았다.


배운 대로 똑같이 만들어본다


신혼 밥상엔 '하트'가 있어야 제 맛 아닌가! ㅋㅋㅋ 예쁘게 데코까지 만들면 완성이다. 나는 요리 똥손인 줄 알았는데, 하다 보니 생각보다 예쁘게 만들 때도 많았다. 혼자 보고 혼자 먹다 보니 아깝기도 하고 씁쓸할 때도 있었다. 외로움을 달래고자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곤 했다.



독립 초창기엔 친구들이 집들이라는 명목으로 한 번씩 방문하곤 했다.

그 기회를 틈타 해물 누룽지탕, 떡볶이, 월남쌈, 스파게티 등등 음식을 만들어주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 22.12.14. 이 글처럼 나는 하루하루 최대한 웃고자, 즐기고자 노력했다.

https://brunch.co.kr/@chick0702/1




조금 시간이 지나자 친구들의 방문도 뜸해졌다. 남의 집에 여러 번 방문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친구들도 있고, 밖에서 편히 먹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친동생에게 눈을 돌렸다. 동생은 우리 집에서 편하게 TV를 같이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동생이 놀러 오면 내가 해주고 싶은 저녁과 먹고 싶은 야식을 해주곤 했다. 닭꼬치, 타코야키, 소시지, 과자.. 혼자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하이볼과 맥주, 와인처럼 다양한 술이 있으니 동생의 뱃살에 일조하는 것 같아 걱정되기도 했다.


한동안 냉장고에 술을 채워놓곤 했다. 마치 고양이 캣잎처럼 누구든 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집이 안되면 도시락을 싸서 밖에서 만나기도 했다. 소풍 가듯이 멋진 공원을 찾아 돗자리를 깔고 냠냠 유부초밥과 김밥함께 먹었다. 나이가 들수록 곁에 있어주는 친구들은 줄어들었기에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남편이 없는 빈자리와 시간은 친구로 채우곤 했다. 친구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좋고, 나도 만들고 싶은 작품을 해보니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의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나는 한없이 게을러졌다.  

나 혼자만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밥과 김치가 없어도 괜찮았다. 어쩐지 독일에서 6개월 내내 호밀빵만 먹어도 안 질리더니만, 나는 을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뱃꼬리도 작아서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괜찮았다. 회사에서 밥 한 끼를 먹으니, 자연스레 나머지 한 끼만 챙기면 되었다.


그래서 아침에는 간단하게 먹었다. 요구르트, 시리얼과 우유, 만두나 호빵, 죽, 옥수수와 야채 등등 가볍게 한 끼를 먹으면 깔끔하게 배가 찬다는 걸 깨달았다. 삼시세끼 밥돌이 아빠를 위해 매일 아침 국을 끓이던 엄마처럼 안 살아도 되는 것이었다. 더이상 음식을 만들어야할 필요성이 없어져 버렸다.

내 아침 리스트들이다. 1+1일 때를 기다려 잘 사곤 했다.



그간 걸신들린 사람처럼 '정서적 허기'를 채우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신혼부부처럼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 함께 먹고 싶다는 욕망을 건강하게 해소한 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고 싶었던 마음의 공허함은 남아있으리라. 쉽게 해소될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채워지길 바랐다. 저녁을 함께 먹으며 도란도란 웃는 따뜻한 시간, 야심한 밤에 TV를 보며 생각을 나누는 아늑하고 편안한 감정, 그리움과 같은 정서적인 부분은 물질적으로 채워지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는 않는 것 같다.


흐르지 못한 내 욕망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튀어 오르는 공처럼 쏟아냈던 지난 세월을 반추해 본다.

우선, 내 요리 손은 똥손은 아닌 걸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요리 작품을 만들었던 시간들도 안녕~!


나는 욕망을 버리지 못한 욕심쟁이였나 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욕망 가득한 내 과거의 요리 라이프였다. 꽤 맛있게 보였는지 조회수 일 만회에 이르렀! ㅋㅋㅋ

https://brunch.co.kr/@chick0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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