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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니엘 May 16. 2024

첫 차 '아이언맨' 을 팔았다

쉬는 날에 여행을 가지 않게 되다


32살의 나는 차가 있었다. 여자가 타기엔 무겁고 둔탁한 아저씨차 느낌이지만 실용적인 SUV인 렌토!! 바로 내 첫 차였다. 


아빠가 오랜만에 차를 바꾸시면서 이전에 쓰던 쏘렌토 (11년 산, 20만 Km 주행거리) 주셨다. 운이 좋았다. 오래되고 낡아 주행 연습 겸 편히 쓰라고 하셨고, 그렇게 인연 맺은 나의 첫 차에 멋지게 시원시원하게~ 잘 달려 나가라고 영화 속 캐릭터 '아이언맨'의 이름을 붙여 타고 다녔다.


아빠가 물려준 소중한 자산이자 조금씩 쌓일 추억이 담아질 내 첫 차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졌다. 감사한 일이었다. 오래오래 함께 해야지!


소렌토와 초보운전 딱지는 안 어울리다만, 든든했다.


트렁크가 커서 당시에 자주 다니던 캠핑 장비를 넣기에 딱이었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에 기동력이 생겼다. 기차 도보 못 가던 여행지들을 손쉽게 갈 수 있었다. 고야! 뒷좌석이 넓어 내게 가족이 생기면 여유롭게 좋을 듯싶었다. 아빠도 그런 목적으로 오랜 기간 쏘렌토를 타셨으리라. 나중에 아이가 생겨도 가족 차로 딱 좋겠다.






이것은 여행을 좋아하고 낭만적이던 나의 30대 초반의 이야기. 난 혼자가 되었다. 이를 어쩌지.. 나 혼자서도 행복을 찾아보자!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는 멋진 여의사 채송화  답답하거나 심심할 때 차 트렁크에 캠핑 장비를 넣고 혼자 여행을 떠다. 그녀 혼자 힐링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던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20대의 나라면 도전하고 즐겼을 현실이 30대의 내겐 초라해 보이고 궁상맞아 보였다. , 애초에 캠핑은  내가 좋아하던 취미도 아니었다. 안 하련다, 패스.



내 취미였던 여행을 홀로 다녀보자! 호기롭게 떠난 여행에서 그간 쌓아놓은 오랜 추억이 생각나 울상으로 돌아왔다. 찢어지는 아픔에 속이 너덜거렸다. 웃으며 돌아와야 할 여행에서 속상함, 답답함, 슬픔, 미련과 후회 등등 복잡한 심경으로 돌아왔다.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떠난 여행인데 웃을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좋은 시간인가. 간과 돈이 있었지만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여행이 고통스러워졌다.


10년의 시간을 쌓아온 취미가 그렇게까지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전국 방방곡곡 다닐 만큼 다녀서 그럴까, 여행 다니던 자유로운 역마살로 결혼을 못했을까 느끼이상한 피해의식 때문일까, 더 이상 같이 다닐 사람이 없기 때문일까.. 나는 더 이상 혼자서 여행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함께 여가시간을 즐길 친구들은 다들 결혼과 육아를 하느라 고, 모르는 사람들과 여행을 떠날 만큼 나는 당돌하고 개방적인 사람도 못 되었다. 부모님과 동생과 여행을 다니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간다고 해도 과거의 환하게 웃던 기쁨과 웃음의 시간에 비할 수 없었다.  


이래 저래 여행의 끝이 보였다.


여행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던 일상의 햇빛, 풀 내음, 향긋한 바람, 파란 하늘 모두 잿빛으로 변해버렸다. 그렇게 재미없는 시간들은 처음이었다.





내겐 남은 시간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나는 여행이 아닌 다른 취미를 찾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차가 필요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조금 불편하지만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다닐 수 있는 회사, 차도 안쓰면서 꾸준히 나갈 보험료와 채워야 하는 기름비, 혹시 모를 차 사고에 스트레스받을 상황 등등.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아무리 봐도 차를 유지하는 것은 손해다.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면서 끝나는 건 아이언맨 내 차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미안해, 아이언맨.


그렇게 나는 다시 뚜벅이 생활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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