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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니엘 May 21. 2024

그저 시간을 채우기 위한 취미라도

남아도는 시간과 에너지를 어찌하리오


어느 순간부터 "심심해, 할 게 없어, 오늘은  하지?" 라는 말이 입버릇처럼 붙어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하고 싶은 목표가 없어져 버렸어.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분명 20대 중반까지 나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기보다 혼자인 시간이 많았다.

10대 때는 공부하느라, 20대에는 다양한 경험을 쌓느라 굳이 누군가가 옆에 있지 않아도 괜찮았다.

매 순간을 바쁘게 채우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다니던 나였다.


내 20대 중반과 30대 초반. 연애를 하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6년 동안 한 사람과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했다. 카톡으로 매시간 재잘재잘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고, 퇴근길에 맛있는 걸 먹으며 고된 하루를 응원하고 힘을 나눴다. 하고 싶은 데이트가 많았으니 주말 중 하루 이상은 항상 함께였다. '잘 잤어?' 서로의 카톡 아침 인사로 하루를 시작했고, '좋은 꿈 꿔' 마감 인사로 하루를 마감했다. 과장하자면 하루라도 서로를 안 보면 입에 가시가 돋았다.


무려 6년의 시간이다. 그렇게 쌓인 시간을 생각해 보면 부모님과 나눈 시간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상실감이 컸나 보다. 상실감은 차갑고 지독했다.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기 여러 날, 그 속에서 외로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과 다르게, 내 삶의 근간을 흔들어 놓았기에 헤어짐의 충격은 더 컸다.


다시 홀로 서는 법을 찾아야 했다. 내게 남은 날들은 너무 많았고, 시간의 공백을 메꿔야만 했다.



회사 일로는 바쁠 수가 없었다. 나는 회사에서 삶의 여유와 안락함을 선택했다.

이직이나 본사를 고민해 봤지만, 연봉과 명예를 좀 더 얻는 대신에 잃을 시간의 가치와 불확실함에 대한 불안 등 정신적인 가치를 저울질해 보았을 때 마음 가는 이 명확했다. 과유불급, 지금 누리고 있는 가치들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했던 하루의 모든 카톡 시간, 퇴근길 저녁, 주말을 나 스스로 잘 다듬어보자.

건전하게, 견고하게, 후회되지 않게 채워보자.

'무얼 해야 할까.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미래의 내가 봤을 때 후회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선 건강. 30대부터는 노화가 시작된댔다. 건강은 무조건 지켜야 할 우선순위다.


한때 아빠의 취미는 등산이었고, 전국 200대 산을 정복하고 나니 모양만 봐도 알 정도로 베테랑 전문가가 되셨다. 나이가 드신 지금은 가벼운 산들을 다니시며 제철 나물들을 따서 오신다. 그런 아빠심심할 때면 주말에 가벼운 산들을 함께 다녔다. 아빠는 딸과 함께 다닐 계획을 착착 세우셨고, 그런 활기찬 아빠의 모습을 보는 나도 기뻤다. 내 존재의 이유가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등산은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과 건강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좋은 취미였다.



코로나 시절이라 집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아보자. 오롯이 혼자는 있지 말자. "보드게임"


외부 활동이 제한되고 있었다. 사람을 만나지 말란다. 집에서 소수의 친구들과 놀 수 있는 '보드게임'이라는 취미를 알게 되었다. 부르마불, 해적룰렛 같은 아이 게임이 아니다. 전략과 속임수로 팽팽 돌아가는 머리가 필요한 취미였다. 몰입하니 집중할 수 있어서 온갖 상념들을 안 떠올릴 수 있었다. 삶의 목표를 잃은 내게 엔딩을 보려는 목적을 세울 수 있어서도 좋았다. 혼자 외로이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고, 가족 친구 아이와 할 수 있는 좋은 취미인 것 같았다. 게임 종류만 50여 개는 넘게 했으니 매주마다 새로운 게임을 해도 1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내게 맞는 투자를 찾아보자.


코로나 시기로 무섭게 뛰는 집값의 힘을 보았다. 코인으로 벼락부자가 되는 사람들이 생겼단다. 부업으로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았다. 점점 더 체감되는 돈의 힘을 보며 겁이 났다. 투자 관련 책 스터디, 좋은 입지 조건을 찾아다니는 임장 활동, 투자에 성공한 사람들 따라다니기, 블로그를 상업적으로 운영해 보기, 일일 아르바이트... 시류를 따라가고자 애를 썼다.



그 외 독서모임, 사주 공부, 문화 센터 강의,  쓰기, 발성 연습을 위한 연극 대본 읽기, 일상적인 운동...


휘몰아치는 취미 활동 속에 나를 매몰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야 내가 살 것 같았다.

무언가에 빠져있는 시간만큼은 과거를 잊어버리고 숨을 쉴 수 있었다. 끝나면 다시 깊은 한숨과 함께 공허함이 찾아왔다. '오늘 하루 뭐 하지?'에서 시작하는 생각은 '왜 내 인생은 이렇게 되었을까?'로 가곤 했다.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기 위한 발악이때론 소모적 행동처럼 보이는 취미 생활이었다. 공허함을 채우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 끝이 허무해질 것도 알고 있었지만, 달리 할 수 있는게 없었다.



폭풍같이 정신없이 2년을 보냈다.



<다음 편은 다음 주에 올라옵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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