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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언니 Nov 30. 2023

내 몸이 내 것이 아닐 때가 있다.

실패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던 시간

대규모 독서모임 행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 굴러가는 낙엽도 조심해야 되는 이때, 늘 신경 쓰는 것은 건강이다. 작은 모임은 그렇다 치더라도 큰 모임을 준비할 땐 절대 몸이 아파서는 안된다. 내가 메인으로 리드해야 되거나, 누구보다 말을 많이 해야 될 때는 특히 외출을 조심한다.


나 감기 몸살 들었어


언제나 내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행사 전 한 번쯤 꼭 그렇게 앓는다. 몸이 앓기도, 때론 마음이 앓기도 한다. 독서파인다이닝 1회 때는 함께 움직인 중요 스태프들이 번갈아가며 아팠다. 물론 나도 임파선이 부어 하루를 앓았다. 2회를 준비할 때는 조금 나을까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다. 누구 하나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즐겁게 끝내면 좋겠는데, 즐거움보다 정신력으로 버텨야 되는 시점이 오고는 한다.


아프지만 우리의 행사는 코앞에 있으니까. 행사 준비를 위해 우리는 아픈 몸을 끌고 상봉 어느 카페에 도착했다. 마스크를 쓰고 온 그를 보며 나도 감기가 옮길까 마스크를 썼다. 다소 냉정하게 들릴지라도 호스트로서 건강한 몸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니까 서로를 위한 배려였다.(호스트의 컨디션에 따라 모임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우린 큰 행사 전에
꼭 한 번은 아프더라.
컨디션 조절 좀 하자.


행사에 사용할 이름표를 만들고 있을 때 문득 독서파인다이닝 1회를 준비했을 때가 생각났다. 나는 퇴사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전 포스팅에도 언급했듯 에세이스트가 되고 싶던 나에게 출간의 기회가 왔다. '처음'이라는 단어는 늘 나를 설레게 했기에 '책을 처음 낼 수 있는 기회'는 날 더 설레게 했다.


독서모임과 출간. 글에 대한 모든 것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믿고 나아가던 어느 날, 출판사와 이슈가 생겼다. 독서모임을 진행하기 위해서 작가라는 네이밍이 중요하다 생각했던 나는 덜컥 겁이 났었다. 30살이 되기 전에 출간하고 싶다던 간절한 꿈을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출간 계약에 대한 이슈가 하필 대규모 모임을 결심하고 준비하던 시기였다. 고난이 무심한 듯 내게 왔다.

우리 둘 다 중요해.
둘 다 무너지면 따라오는 스태프들도 같이 무너져.

당시 두 명이서 대규모 모임을 기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하던 말이다. 출판사와 이슈가 있고 난 후로 일주일은 마음고생을 했다. 서로의 이해관계 속에, 서로를 이해하며 조율해 나가야 하는 일은 감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함께 행사를 준비하던 그는 나를 염려하며 무너지지 말자고 얘기했지만 누구보다 염려하고 걱정했다. 힘을 낼 수 없는 상황이라 힘을 내라고 말하지 못했음을 지금도 이해한다. 나는 무너지면 안 된다는 말의 의중을 누구보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을 굳혔다. 내 마음이 아파도 되는 시기는 독서파인다이닝 다음날로 정하자고. 그 이후에는 충분히 아파도 나 자신을 이해해 주겠다고 슬픈 나를 다독였다.


그래, 출판사는 어떻게 됐어?
조심스러워서 안 물어봤어.


행사가 끝나고 그에게 출간을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힘들어하던 내가 일주일 만에 살아 돌아와서는 아무렇지 않게 독서모임을 진행했으니 출판 소식이 궁금했을 터다. 나는 미련 없이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행사 후 힘들어도 되는 날을 마주할 때. 출판사와의 계약을 끝내기로 결정이 될 그날이 두렵기만 했는데 막상 마주하니 아무 일도 아니었다. 대규모 독서모임 준비가 내겐 참 중요했는데, 준비 과정 중에 힘든 감정이 무뎌졌다. 그때는 올라오는 슬픈 감정에 빠져 날 믿고 따라오는 사람들의 방향 잡이를 멈출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그 당시를 정리해 보자면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내 흔들리지 않는 마음 중심이 독서파인다이닝의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나는 한 달 반이란 시간 동안 대규모 독서모임을 성공시키고, 출간하는 일을 실패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살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한다. 역사 속에 길이 남은 천재의 놀라운 업적 뒤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실패가 있었다.  

슈퍼노멀에서 주언규 작가님이 실패에 관해 다룬 말이다. 비록 30살 전에 출간하고자 했던 간절한 꿈은 무너졌지만 조직을 끌어가는 리더로서 마음이 어느 정도까지 단단해져야 하는지를 배웠으니 실패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던 시간이다.


서울에 나온 김에 이전에 알고 지냈던 지인을 만나고 왔다. 그 길이 딱 이전 직장을 다니기 위한 길이었다. '새 삶을 위해
저 이제 퇴사합니다!'라고 외치고 싶지만 갑작스러운 권고사직으로 '퇴사를 당하고' 오랜만에 그 길을 다시 마주했다. 퇴사 후 짧았던 6개월. 참 많은 일들이 내게 벌어졌다.

전철 문이 닫혔고, 곧 출발했다.
 저는 이제 프리랜서행 열차를 타고 지금과는 반대의 삶으로 나아갑니다. 직장인의 삶은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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