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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Jan 18. 2021

뜨개질의 계절

손끝에 전해지는 따스함

실과 바늘을 이용해 코를 만든다. 한 코에서 시작해 한 코씩 늘려 가다 보면 어느새 한 줄이 완성되고 한 줄 위에 한 줄을 더 쌓아 올리고, 또 쌓아 올리다 보면 어느새 모양이 잡히고 무늬가 나타난다. 손끝에서 시작해 손끝으로 끝나는 뜨개질은 내가 들인 시간과 정성만큼, 딱 그만큼의 결과를 보여준다. 더하지도 그렇다고 빼지도 않고 내가 쌓아 올린 것들로 엮이고 만들어진다. 한 코를 빼먹으면 빼먹은 자리에 작게 또는 크게 구멍이 나고 한 코를 더하게 되면 모양이 조금 비틀어지거나 질서가 어지럽혀지기도 한다. 그래서 딱 맞는 자리에 한 코를 넣어야 보기 좋은 모양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종종 제멋대로 손을 놀린다. 한 코씩 늘리다 보면 어떤 모양이든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저 부지런히 코를 쌓아 올린다. 의외의 모양이 나타나기도 하고, 익숙했던 모양이 나타나기도 한다. 대칭이 맞지 않거나 미완성 같아 보이는 경우를 흔하게 마주한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이는 결과물로 완성이 되면 그 자유분방함이 꼭 나를 닮은 것 같아 조금 더 아껴주고 싶어 진다. 예쁘지도 완벽하지도 않지만 소중하니까.



요즘은 그렇게 하루의 얼마쯤을 뜨개질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최근에는 모자를 떴는데 하나는 엄마, 하나는 아빠께 드리고 내 것도 두 개나 더 떠서 완성했다. 내가 뜨개질을 하는 걸 보고 엄마도 뜨개질을 시작하셨고 뚝딱뚝딱 모자 두 개를 만들어내셨다. 창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고, 차가운 바람이 불더라도, 내가 있는 방 안은 따뜻하고 고요하다. 털 뭉치에서 전해지는 까슬하고 따스함 촉감과 어우러지니 그야말로 뜨개질의 계절이다.


내가 뜨개질을 하게 된 건 뜨개질을 좋아하는 친구 때문이다. 좋아하는 게 비슷하고 취향이 비슷하지만 성격은 완전히 다른 나와 내 친구는 많은 취미들을 공유하고 함께한다. 취미를 위해 매주 회비를 내고 있는데 정성스럽게 모인 회비로 원데이 클래스를 듣거나 여행을 간다. 친구가 추천해 준 것을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내가 추천해준 것을 친구가 좋아하기도 하는데, 그런 친구의 최애 취미생활이 바로 뜨개질.


똑같이 뜨개질을 하더라도 취향은 또 달라서 친구는 대바늘을 이용한 뜨개질에 즐기는 반면, 나는 코바늘을 이용한 뜨개질을 좋아한다. 친구는 나름대로 대작인 옷을 뜨고, 나는 소품 위주의 뜨개질을 한다. 물론, 실력은 친구가 월등하게 좋고, 나는 그냥 자유분방하다. 실력과 결과물을 떠나 가장 좋은 건, 뜨개질 하나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함께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친구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부지런히 뜨개질을 한다. 오늘도 마침 눈이 내리고 있고 아무도 없는 집안에는 나와 낮잠 자는 고양이 쪼꼬뿐이다. 그러니까 지금이 바로 뜨개질의 계절이다.


벙거지 모자
두 손 가벼운 여행 대신, 두 손 가벼운 뜨개질
선물을 담아 보낸 조리개 파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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