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은 2,3년용?

by thinking cloud

8년간 희망동에서 두 번의 이사를 했다. 2~3년을 살면 꼭 집에 문제가 생겨 이사를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원룸은 꼭 2,3년 살고 나가게끔만 손을 봐 두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희망동 첫 원룸 발렌타인. 첫 독립 터전이기도 해서 나름대로 정이 있었다. 업그레이드해서 이사할 거 아니면 쭉 눌러있자는 마음이었는데, 삼 년째 일이 터졌다. 발렌타인은 다른 건 다 좋았는데 겨울의 가장 추운 며칠간은 수도가 꼭 얼었다. 졸졸졸 나오게끔 틀어놓아도 소용없었다. 그래서 그 시기에는 샤워를 하러 매일 동네의 목욕탕에 다녔다. 며칠 지나 물이 나오고 겨울 고비 잘 넘겼다 했는데 부엌 천정에서 불길한 물 자국을 발견했다. 내 위층 방 수도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 물자국은 시꺼먼 곰팡이가 되었고, 곰팡이의 면적은 점점 넓어졌다. 바로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말했는데 관리인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 맞아요. 3층에 수도 잘못되어 금방 고쳤어요. 물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지요?

- 네. 근데 곰팡이가 펴서요. 조치 부탁드립니다.

- 그건 도배를 새로 해야 되는데, 짐이 있는 상태에서는 도배가 좀 힘든데...

- 네? 그래도 이런 건 주인분께서 해주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 해주는 건 맞는데 도배할 면적이 작아서 사람들이 짐 옮겨가면서 까지 안 해주려고 해요.


결국 내가 나가고 난 뒤 방이 비면 도배를 하겠다는 뜻이었다. 무슨 이런 무책임한 반응인가. 그러면 나는 계약기간 끝날 때까지 곰팡이 핀 천장을 마주보면서 누워야하는 거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결국 이런저런 실랑이 끝에 계약기간이 좀 남아있었지만 주인이 세를 놓는 것으로 하고 이사를 했다. 원룸에 문제가 생기면 웬만한 사항이 아니면 건물주가 손을 써주지 않는다. 물론 웬만한 사항의 기준은 건물주와 세입자 간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이 일로 절감했다.




동네에 같이 운동하는 분 중에 5년 후 정년퇴임을 앞둔 분이 있다. 집에 가는 방향이 같길래 같이 가다가 얘기를 들어보니 희망동 옆 소망동에 태어나서 그 집에 그대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했다. 그간 개발이다 뭐다해서 온 나라 땅을 다 파 뒤집는 와중에도 오십 년 넘게 살아남은 동네가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태어난 집에서 정년 퇴임할 때까지 사는 그분도 놀라웠다. 질리지 않으시던가요?


아니. 좋은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번듯한 내 집이 있으면 오래 살아도 마냥 좋을 수 있는 건가. 원룸촌 메뚜기를 하고 있어 나는 모르겠다.


내 주변에 수십 년째 같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 자가주택이다. 자녀가 초등학교 때 이사와서 그 손자가 드나들게 된 집도 있고, 아파트 신축 입주 때 들어가서 재개발 허가받을 때까지 사는 경우도 봤다. 그런 집은 안정감이 단단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 손을 탄 흔적이 집에 대한 애정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긴 세월을 거치면 집도 내공이 쌓이는가 보다.

원룸에서 원룸으로 이사를 다니다 보면 집에 대한 안정감은 갖기 어려웠다. 아파트는 내 집이라는 기분이 드는데 원룸은 ‘집’이 아니라 ‘방’이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원룸을 평생 내 집이라 여길 사람은 없지 않을까. 원룸은 임시방편, 내 집 마련 전에 거치는 정류장 같은 곳. 대충 살다 옮기는 곳이라 말한다. 내가 이 원룸촌에서 8년 넘게 대충 살고 있다는 반증인가.

원룸을 집으로 생각해야 할지 임시 거처로 생각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 집은 아니지만 임시거처라고 하기에는 오래 살았다. 8년간 살면서도 아직 긴가 민가 한걸 보면 아직 원룸이 집으로서의 안정감을 갖기는 요원해 보인다.

변화가 없다는 건 어느정도의 따분함일까. 나는 매번 지겨워하면서도 왜 같은 원룸촌의 비슷한 원룸으로만 이사하고 있는가. 열심히 뛰어야 제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보았다. 나는 열심히 뛰어서 원룸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 더 열심히 뛰어서 원룸을 벗어날 수 있을까. 시도해 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시도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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