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촌의 이사

by thinking cloud

첫 원룸 발렌타인에서 두 번째 즐거운 하루로의 이사는 찌질하고 궁상맞고 처절했다. 방은 쉽게 결정되었지만 이사 방법에 대한 계획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뀌었다. 정상적으로는 두 명 정도의 인부가 출동하는 이사 차를 불렀어야 했다. 하지만 공연한 헛바람이 문제였다.




발렌타인과 즐거운 하루 사이의 거리는 약 100미터. 웬만한 건 옵션이고 장롱 같은 큰 짐도 없다. 차에 안 실릴 테이블 하나만 빼면 눈대중으로 서너 번만 실어 나르면 될 것 같았다. 이사 이거 나 혼자 할 수 있지 않을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가능성에서 출발한 의문은 삽시간에 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코 밑으로 가는 이사 까짓 거 뭐 별거 있나. 근거 없이 자신감이 솟았다. 이럴 때가 위험하다. 만약 내가 하려던 게 이사가 아니라 사업이었다면 남의 돈까지 끌어다 말아먹을 신호였다. 나는 위험한 상태를 깨닫지 못했고, 이사는 시작되었다.


차에 실리지 않는 테이블을 먼저 정리했다. 당근 마켓에 올리려고 했는데 혹시나 싶어 사진을 찍어 부동산에 갔다. 필요한 사람 있으면 그냥 드릴게요. 대신 직접 갖고 가셔야 합니다. 테이블은 당근 마켓에 올릴 것도 없이 들려 나갔다. 나머지는 비슷한 종류끼리 뭉쳐 차에 마구 구겨 넣었다. 한 차에 최대한 많은 짐을 싣기 위해 용을 썼다. 내 15년 된 준중형 승용차에 생각보다 많은 짐이 들어갔다.


문제는 차에 실은 짐을 새로운 방에 들여놓을 때였다. 2층이었던 발렌타인은 오가기가 가뿐했으나 즐거운 하루의 내 방이 4층이라는 걸 간과했다. 한 다섯 번쯤 계단을 오르내리자 후회가 몰아쳤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가. 이게 무슨 극기훈련인가. 내가 두 번 다시 혼자 이사하나 봐라. 바로 옆집으로 이사한다 해도 이삿짐센터 부르고 만다!

후회해봐야 이사는 저질러졌다. 예약도 안 하고 이사업체에 전화해 본들 당장 와줄리 없다. 나의 잘못된 판단과 무모함에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세상을 만만히 보다 결국 피를 보는 것은 나지 세상이 아니었다. 젊어 고생 사서도 한다고 하지만 이 고생은 골병만 남을 고생이었다.

꾸역꾸역 준중형 승용차에 꽉꽉 채워 세 번을 실었고, 한 차당 열 번 정도를 오르락내리락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현기증이 일었다. 결국 그날은 두 차만 짐을 옮겨 놓고, 한 차는 짐을 실은 그대로 뒀다가 다음날 옮겼다. 이사는 아직 절반밖에 못했는데 이사비 굳은 돈을 병원비로 써야 될 판국이었다.



이사는 첫 번째가 짐을 다 옮기는 일, 두 번째가 짐을 정리하는 일이다. 원룸이기 때문에 잠잘 곳 위치만 정하면 다른 짐의 위치는 자동으로 셋팅된다. 고작 원룸에 있는데 짐이 이리 많았던가 하게 된다. 옮기다가 이미 기력이 쇠한 상황이어서 정리는 천천히 하기로 한다. 책상 책장을 했으면 다음날은 옷 정리 그다음 날은 주방 이렇게 섹터를 나누어 정리한다. 평일에는 손대지 않고 주말에만 손을 댔더니 짐 정리만 한 달이 걸렸다. 예전에 어떤 지인한테 이사를 했는데 일 년째 짐 정리 중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웃자고 한 말이었지만 넓은 집이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가 그만큼 보통일이 아니라는 증언이었다.


누군가가 나처럼 이사할 생각을 한다면 ‘미치지 않고서야’라는 거친 표현을 써가며 극구 만류할 테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째서 아무한테도 상의할 생각을 안 했는지, 그 사실마저도 찌질하고 궁상맞다.

나처럼 헛고생을 할 것이 아니라면 원룸의 이사는 사실 별것 없다. 다른 방의 이삿짐을 봐도 1톤 화물차를 다 못 채워 허전할 정도의 양이 대부분이다. 원룸에 살다 보면 가구를 사더라도 디자인보다는 실용성과 처분 용이성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원목보다는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은 재활용으로 내어 놓기가 비교적 좋기 때문이다.


원룸촌 이사도 이사는 이사다. 병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이사는 이삿짐센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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