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이 없어도 확정일자는 필수

by thinking cloud

여태껏 원룸촌을 전전하면서 보증금이나 월세 분쟁은 한 번도 없었다. 원룸촌에 자가 주택 가진 사람이 빌라 주 말고는 드물기 때문에 방방마다 전세, 반전세, 월세로 점철되어있다. 내 경우는 발렌타인-온전세, 즐거운하루-반전세, 르네상스-월세로 입주조건이 매번 바뀌었다. 그렇게 여러 집을 이사 다니면서 분쟁이 없었던 것은 감사할 일이다. 깡통 전세라는 둥 건물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둥 안타까운 얘기도 많이 들려오지만, 원룸이다 보니 전세금이나 보증금이 소액이라서 최우선 변제권을 가진 것이 큰 울타리다. 그렇다. 법이 정해져 있어서 분쟁 생길일이 크게 없는 것이다.

하지만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지. 법의 보호를 받고 안 받고 간에 확정일자는 받아야 한다. 이사 당일 전입신고. 당연한 건데 바쁘고 피곤해서 놓치는 경우가 있으니 (유경험) 신경을 쓴다. 사소하다고 일을 놓치는 경우에 낭패가 발생한다. 사소한 일은 대개 시간이 지나면 성가신 일로 증폭되는 성질을 갖고 있으니까.




내가 이사를 여러 번 다니면서 느낀 임대차 조건별 장단점을 풀어본다.


온전세 - 한 번 계약하면 계약 끝날 때 까지는 자잘한 돈 걱정 안 하고 도시가스, 전기세만 내면 된다. 관리비가 있어도 까짓것 부담스럽지 않다. 집에 큰돈 들어갈 일 없으니 돈 모으기 좋고 목돈이 건물주 주머니에 묻혀있으니 쓸데없이 쓰지 않는 건 좋다.

단, 묻어둔 돈을 못 받게 될 경우가 생길 우려가 있고, 다른데 투자할 기회비용을 잃는다는 점이 단점이다.

입주시점에 전세금이 있어야 하고, 그나마도 원룸 온전세는 매물이 천연기념물 급으로 드물다. 전세권 설정? 풋. 주인이 거절하기 전에 부동산 담당자가 한심해 할 것이다.



월세 - 목돈 들어갈 일이 적다. 다만 매달 고정 지출의 압박이 크다. 돈 모으는 데는 비추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월세도 올라간다. 내가 처음 희망동에 집을 알아볼 때는 30만 원 중반대로도 웬만한 월세 원룸을 구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최하 40만 원에 관리비까지 추가로 있다. 보증금에 따라 월세 조율이 가능한데, 보증금 1천만 원 오늘 때마다 월세 삼만 원 정도의 변동 수준이다. 건물주는 원룸을 갖고 보증금을 많이 받기를 선호하지 않는다. 보증금 덜 받아도 정상 월세를 받기를 원하니 조율이 어려울 수 있다.



반전세 - 전세 계약서와 월세계약서는 있지만 반전세 계약서는 못 봤다. 반전세라고 들어갔지만 계약서는 월세로 썼다. 단, 보증금 비율이 일반 월세보다 높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월세 고정 지출이 줄어 덜 부담스럽지만, 비율을 잘 배분하지 못할 경우 온전세와 월세의 단점 모두를 안고 가야 할 수도 있다.

나는 원룸 얻을 때 일단 온전세가 있는지를 물어보고 여의치 않으면 반전세를 물어본다. 반전세에서 대부분 조율이 가능하다. 희망동 원룸촌 안에서만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발렌타인을 소개해줬던 요나 선생님과 친해졌다. 부동산 직원을 잘 알아놓으면 반전세 시 내 조건을 맞추기가 유리하다.

피치 못하게 월세에 들어가게 될 때도 있었다. 건강 컨디션이 안 좋은 바람에 계약 종료 날짜에 쫓겨 급하게 이사해야 했을 때가 그랬다. 사정 이야기와 함께 금방 반전세로 옮길 생각이라고 고집을 부려 계약기간을 1년으로 썼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수입과 잦은 이사로 인한 부동산 수수료를 피하기 위해 월세도 기본 2년 계약하려는 경우가 많다. 전세든 반전세든 월세든 필요에 따라서 조율하고 활용하기 나름이지만, 어떤 방식의 임대차 계약을 맺더라도 확정일자는 필수다. 이제는 몸과 머릿속에 베었다.



이런 요구도 있었다. 밸런타인을 계약할 때였다. 분명히 내가 이사하는 날짜는 3월 10일이었는데 건물주가 계약일자를 2월 말일자로 해달라고 했다. 실제 들어가는 날짜와 다른데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다. 뭣하면 2월 말일자로 전입신고를 해도 좋다는 건물주의 말에 왜 그렇게 까지 하려는 건지 이유를 물었다. 희망동은 대학생 원룸러가 많아 새 학기 시작되기 전날짜여야 나중에 학생한테 세놓기가 유리하는 말이었다. 어차피 월세도 아니니 며칠 당겨도 상관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건물주들이 날짜 며칠 가지고도 자기들의 잇속을 챙기는 디테일함에 놀랐다. 이 정도는 되니까 건물주 하는구나. 혀를 내두르는 마음으로 순순히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

아직도 부동산에 있어서만큼은 세입자가 건물주보다 똑똑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방패를 손에 꼭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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