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촌의 눈(目)

by thinking cloud

원룸촌 원룸에서 독거중이라고 하니 천상 여자 캐릭터의 아는 동생이 이렇게 물었다.


- 안 무서워요?


질문의 요지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안 무섭냐니... 원룸촌이? 원룸이? 혼자여서 무섭냐는 말인가? 막연히 반사적으로 나온 부정의 감탄사인 건가? 무섭다고 생각하는 건가?이 동생한테 공감하려면 내가 뭘 무서워해야 되지? 머리를 굴려보았으나 답이 나오지 않아 난감했다.


- 뭐가?


내 질문에 동생이 생각하는 눈치를 보였다. 무서운 대상을 구체적으로 찾는 것 같기도 하고, 무서운 곳에 사는 나에게 말실수가 될까 적당히 둘러댈 말을 찾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동생이 원룸촌을 슬럼가 취급한다면, 나는 동생이 아직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구나 하고 단정할 작정이었다.


- 원룸에서 혼자 사는 게요.


그 동생 눈에는 내가 사는 상태 그대로가 공포의 조건이고 대상이라는 말이었다. 원룸촌 원룸에서 둘이 살거나 아파트 단지 쓰리룸에서 혼자 살면 안 무서운 건가. 자꾸 질문을 거듭하면 서로 감정이 상할 수 있겠다 싶었다.

- 갑자기 붕괴되는 정도의 트러블이 아니면 원룸이 나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아. 그리고 나는 혼자 있으면 편안하지 무섭지는 않아. 아직 젊어서 그런가. 사람이 옆에 있을 때 시달려하는 성격이어서 그런가. 아직 괜찮더라고.

동생은 딱히 경비원이 있지도 않은 동네에서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냐고 했다. 풋. 웃음이 났다.


나는 당시에 동생이 말하는 종류의 무서움에 관해 둔했다. 첫 원룸인 발렌타인 현관문이 비밀번호가 아닌 열쇠로 여는 방식이었다. 이사 들어올 때 건물주가 권유했다. 앞에 있었던 남학생이 틀림없는 애 이기는 했지만 혹시 모르니까 불안하면 열쇠를 바꾸던가 키락을 달던가 하라고 했다. 나는 둘 다 하지 않았다. 이전 세입자가 쓰던 열쇠를 그대로 썼다. 현재 사는 르네상스는 버튼식 키락이다. 이사 올 때부터 달려 있었다. 이삿날 비밀번호를 최소 자릿수인 네 자리로 설정하고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나도 내가 무슨 똥배짱인지 모르겠다.

무서웠다면 애초에 독립을 생각하지 않았겠지. 독립하더라도 혼자서는 절대 안 하고 친구 멱살이라도 끌고 같이 나왔을 것이다. 내가 챙겨줄게 같은 거짓말 하면서.

도둑이라. 내 방에 도둑이 갖고 갈만한 물건이 있는지를 떠올려봤다. 후드 돌아가는 소리가 크게 나는 데스크톱 컴퓨터 한 대...... 그거 말고는 딱히 없었다. 백만 원 넘는 노트북이라면 몰라도 이런 덩치 큰 물건이야 빈집털이의 대상이 못될 터다.

어떤 집이든 애초에 도둑이 이 집을 털겠다 마음을 먹지 않아 줬기 때문에 감사하게도 도둑이 안 든 것이지, 도둑이 이판사판이라 마음먹었다면 어떤 집을 못 털겠는가. 그리고 도둑이면 남의 재산을 노리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원룸촌을 왜 노려? 고급 주택가라면 몰라도. 가성비가 너무 최악이잖아. 나라도 코딱지만 한 방 이어 봐야 뭘 털어서 부귀영화를 누릴지 아득해서 건드릴 생각이 안들 것 같은데. 강도나 강간범이면 모를까.

- 네! 그래. 그거요!

그제야 동생은 속이 시원한 듯했다. 사실 드나드는 사람이 비교적 한정적인 아파트 단지와 비교해서 오만 사람이 다 다니는 원룸촌, 주택가가 치안이 좋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희망동 원룸촌에 팔년간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 했던 말을 또 써먹는다. 강도강간범이 마음먹었다면 어떤 사람인들 안 위험하겠어. 애초에 그들이 그런 마음을 먹지 않아 줬기 때문에 그런 일을 겪지 않았을 뿐이지. 내 옆을 스쳐가는 사람들에게 무사히 지나가 줘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지. 동생이 아, 네에. 하며 (비)웃었다. 친구였다면 나한테 욕 한마디 날렸겠구나.

원룸이 무섭다 여기는 건 원룸 자체보다 근처에 나쁜 사람들이 살거나 오간다는 편견 때문이라 추측한다. 결국 사람 문제. 위험한 사람이 있는 세상이 무섭지 원룸이 무서운 건 아니다. 혼자라서 무서운 건 개인의 마음 문제. 두려움을 스스로 만들고 그 두려움을 이불처럼 덮은 채 무서움에 떨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동생의 반응 때문은 아니지만 원룸촌을 오가면서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일부러 경계할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지나가고 있는 길과 붙은 건물에 CCTV가 달려있는지, 어디에 달려있는지 위치를 찾는다. 콘크리트 바닥에 ‘안심 귀갓길’ 표시가 있는 골목으로 다니기도 한다. 안심귀갓길이 다른 길과 특별히 다른 점은 모르겠지만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라는 마음으로. 그도 저도 아니면 주차된 차 옆에 가능한 붙어서 걷는다. CCTV보다 블랙박스가 더 많이 달려 있으니까. 블랙박스 덕분에 원룸 촌의 눈(目)이 아파트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비밀번호는 잘 안 바꾸지만 그래도 문단속은 열심히 한다. 꼭꼭 한다. 귀신도 못 들어올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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