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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Jan 21. 2024

읽기가 쓰기라고요?

쓰기 설명서 그 두 번째 이야기

 쓰기의 시작은 읽기에서부터

쓰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읽기다. 쓰기를 하려면 쓰기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의문이 드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읽기가 가진 탄탄한 힘을 접하기 전까지는.


복싱을 배운다는 이에게 들은 적 있다. 거의 한 달 넘게 줄넘기만 한다 했다. 왜 줄넘기만 시키느냐고 볼멘소리 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복싱을 하기 위해서는 장딴지근, 종아리근, 허벅지근처럼 하체 근육이 필요하단다. 특히 줄넘기가 그런 근육 키우는데 딱이라고 했다. 다 이유가 있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무턱대고 글만 쓴다고 해서 글은 늘지 않는다. 의지만으로도 왠지 부족하다. 막연한 글쓰기는 푸념만 늘여놓을 뿐이다. 글에도 필요한 근육이 있다. 어휘력과 문장력 말이다.


쓰기는 생각 늘여 놓기다. 생각은 칼라지만 어휘력이 흑백이면 결국 글도 흑백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당연하 논리다. 당근을 갈아서 따라 낸다고 초록색이나 파란색으로 변하지 않으니까. 아는 만큼 보이듯 아는 만큼 말할 수 있는 원리다.


어휘력을 어떻게 늘릴 수 있을까? 국어사전을 정독 하면 어휘력이 늘어날까? 아니면 빈도가 높은 단어만 모아 달달 외울까? 모두 좋은 방법은 아니다. 언어는 단어만 늘여 놓는다고 글이 되지 않으니까. 적합한 어순이 있고 느낌이 있고 호흡이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전태일이 아니라면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 청춘의 자락에 살고 있던 그 언니는 대학의 문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은유작가의 쓰기의 말들에 나오는 일부분이다. 짧은 문장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마침표를 보고도 한참을 머물렀다.


나는 이런 미문을 보면 통째로 외운다. 필사를 할 때도 있고, 사진으로 찍어 남길 때도 있다. 그리고 혼자 낱낱이 뜯어본다. 문장을 통째로 외워 그대로 쓰라는 말이 아니다. ‘수면 위로 떠오른다’, ‘청춘의 자락’, ‘대학의 문’, 이런 식으로 붙어 나오는 어휘의 힘을 알아 챈다는 거다.


다음에 나는 이런 단어의 조합을 기억했다가 응용한다. 지면 아래로 가라앉는다든지, 삼십 대의 자락 이런 식이다. A대신 B란 단어만 바꿔서 써야겠다가 아니라. 저런 문장을 삼키다 보면 자연스레 나온다는 거다. 처음에는 나도 몰랐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작가의 문체가 나에게도 나타난다는 사실을.


은유 작가의 책을 읽으면 그 특유의 단문이 주는 감성을 흉내 내려고 애썼고, 유시민 작가의 책을 읽으면 깔끔하면서도 논리에 전도된 글을 쓰려는 흔적이 보였다는 거다. 이는 읽는 만큼 쓸 수 있음에 대한 방증이다. 지루하고 따분한 내 글에도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음에 대한 희망이다.


나는 이런 이점을 최대한 이용하려 했다. 문장을 외운다기보다는 문형을 익혔고 그 쓰임을 감각의 한 영역으로 다듬었다. 물건이 날아들면 몸을 움츠리듯 생각이 오면 어떻게 쓸지가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어쩌면 좋은 글 근육이란 수의근 보다 불수의근의 단련일지도 모르겠다.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마음에 드는 책 하나만 고르자. 가급적이면 지식이 많거나 너무 현란한 수식어로 범벅이 된 글은 피해야 한다. 단어가 쉬우면서도 문장은 쉽지 않은 글이 좋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글은 필자에게도 좋고 독자에게도 좋은 글이니까. 씹으면 씹을수록 맴도는 단맛은 읽기의 재미도 더해주기도 하니까.


책을 골랐으면 계속 읽기만 하면 된다. 좋은 문장 밑줄 긋고, 필사도 하자. 계속 읽어라. 나는 종이책이 너덜너덜 닳을 때까지 읽고 ebook을 통해 또 듣기까지 했다. 머리말과 맺음말을 10번 정도 오가다 보면 서서히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그럼 쓰면 된다. 마치 베스트셀러 작가처럼 당당하게 쓰자. 부단히 쓰고 흉내 내다보면 어느새 비슷하지는 않아도, 나쁘지 않을 정도의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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