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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Jan 28. 2024

글에도 꼰대가 있다

쓰기 설명서 그 세 번째 이야기

 설명하기와 보여주기.

둘 사이 차이가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쓰면서 참 많이 느낀다. 차이를 몰랐다면, 좀 더 와닿는 글의 본질을 깨우치지 못했겠지. 이유를 모르면 그런 이유에서 비롯한 결과 또한 만들 수 없다. 물론 더 좋은 글도 쓸 수 없겠지.


설명하기와 보여주기,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보여주는 글이 좋다. 더 생동감 넘치고 와닿는 글을 쓸 수 있다. 생동감 넘친다고 해서 수식어를 남발하라는 말은 아니다. 글로 시신경을 자극하고 그 감각의 목 넘김을 일으키는 글을 쓰라는 거다.


우리는 시각으로 글을 이해하지만, 시각만으로 글을 이해하지 않는다. 자음과 모음, 어미와 조사를 조합해 단어를 읽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생각한다. 단어 그 의미 자체에만 중점을 두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단어를 보는 것은 시각이지만, 뇌가 느끼는 것은 오감의 형태로 치환된 덩어리를 느끼는 것이니까.


있는 그대로를 읽는 것보다 이쯤에서 떠올라야 할 사유의 파편을 맞춰가며 읽는 게 좋다. 글은 그래야 한다. 시각적인 정보는 망각의 굴레 앞에 한낱 먼지에 불과할 뿐이다.


먼저 설명하는 글은 왜 별로일까?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이나 주례사 같은 말을 떠올려보자. 따분하고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기승전결 지루하다. 훈화 말씀과 주례사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들어본 사람은 안다. 틀린 말 하나 없지만 귀 기울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왜 그런 것일까? 설명에만 치우친 글이기 때문이다.


설명하는 글은 자신이 아는 바를 주입하려고 하고 공감을 강요한다. 이유 없는 강요는 반항심만 낳을 뿐이다. 꼰대, 맞는 말을 고리타분하게 설명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따분하다를 넘어 부정적인 의미까지 내포한다. 설명하는 글이 딱 그렇다.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단호함을 전재로 하는 도면이나 설명서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쓰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예도 있다. 이케아는 DIY가구의 대명사다. 이들은 완조립된 가구보다 원재료만 가공해 판다. 여기서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이 있다. 소비자들, 그러니까 가구를 구매한 사람들은 완조립된 가구보다 DIY로 만든 가구에 만족감이 더 높다고 한다.


그들은 왜 만들다 만 가구에 더 열광하는 것일까? 완성품을 사면 힘도 들이지 않고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살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에 모든 단점이 커버된다. 완성된 가구보다 더 애착이 가고 정겨울 수밖에 없으니까. 좀 삐뚤빼뚤 하거나, 조립이 어려워도 개의치 않는다. 완성 후 사진 속 가구가 뚝딱 만들어진 그 순간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글을 쓰지 않았지만 글을 쓴 사람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보여주는 글의 본질이자 비법이자, 효과다.


그럼 보여주는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 방법은 간단하다. 설명하고 싶고 알려주고 싶은 내용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의미는 읽는 이가 알아서 길어 올린다. 자신의 경험과 감정, 단어를 오가며 글쓴이의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포개본다. 아무것도 없는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도 글이 가진 본질 앞에서는 동공이 확대되고 시야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와 나는 오늘부터 연인이 되었다 보다는, 그와 나는 오늘부터 걸을 때마다 깍지를 끼고 다녔다 이런 식이다. 요즘 일이 힘들어서 눈물이 난다 보다는 퇴근 후 집에 왔는데 다가올 내일이 두렵다 든지. 운전을 하다 잠이 왔다 보다는 내려앉는 눈꺼풀 때문에 운전대 잡기도 힘들었다가 좋다. 그 장면마다 의도를 숨기기만 하면 된다.


보여주는 글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설명하면 한 줄이지만, 보여주면 얼마든지 생각의 결을 타고 다닐 수 있는 거다. 써야 할 내용이 없어 못쓴다는 말은 핑계다. 보여주는 글 앞에는 다 게으름뱅이가 될 테니까.


자신의 소중한 감정을 그냥 내어 놓지 말자. 읽는 이로 하게끔 발견하게 하자. 보물 찾기의 묘미는 자신의 손으로 찾기에 있다. 숨긴 사람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짜릿한 게 아니라는 거다. 말로 설명하지 말고, 독자로 하게끔 보여주자.


독자는 생각보다 똑똑하다. 모두를 설명하지 않아도 행간에 머무는 장면에서 뜻을 알아차린다. 의미를 붙잡고 이게 맞는지 글을 쫓아다니게 만들자. 아이가 방역차를 따라다니는 이유가 별다른 이유가 없듯 사람을 이끄는 글에도 별다른 기법이 있지 않다.


보여주면 안다. 글을 붙들고 필자를 따라다니는 행위, 방역차 따라다니듯 활자의 연기를 따라다님에서 비로소 재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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