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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Jan 14. 2024

단문 쓰기

쓰기 설명서 그 첫 번째 이야기

 글쓰기 설명서 그 첫 번째 이야기, 단문 쓰기.

단문 쓰기는 글쓰기 서적이나 글에서 다루는 최애 소재다. ‘문장을 길게 쓰지 마라. 마침표를 자주 찍어라. 하나의 문장에는 하나에 뜻만 남겨라.’ 쓰겠다는 모든 이에게 주문한다. 어떤 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만큼 단문 쓰기가 중요하다는 말이겠지.


처음 글 쓰는 사람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글이 너무 길다. 수십 년간 글 안 쓰는 신분으로 살아왔던 그들. 할 말도 사연도 많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를 혼란 속에서 글을 쓴다. 이런 글은 십중팔구 문장이 길어질 확률이 높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쓰기에도 통한다. 이 말을 쓰면 저 말도 쓰고 싶다.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의 발화 과정이 그저 신기하다. 다양한 말을 활자에 모두 쏟아내려니 문장이 길어질 수밖에. 쓰는 사람 대부분이 겪는 과정이다. 처음 쓰는 이들은 머릿속이 복잡하다. 알 수 없는 말들이 한데 섞여 아우성이다. 글을 쓰겠다는 동기도, 무거운 몸을 책상으로 이끈 것도 이런 소란스러움 때문일 테니.


문장이 길면 왜 좋지 못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와 독자 모두에게 해롭다. 글은 면치기와는 다르다. 후루룩 끊임없이 들어와야 면발 고유의 맛이 살지 않는다는 거다. 긴 문장이 왜 글맛을 망치는지 이유를 따져보자.


첫째. 문장이 길면 생각 담기가 어렵다. 우리말은 끝까지 들어야 제맛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말은 동사가 가장 뒤에 온다. 주어와 목적어의 나열만으로 뜻이 될 수 없다. 마지막에 동사가 오지 않으면 다 뜬구름 잡기다. 우리 뇌는 동사로 문장이 닫혀야 비로소 생각 이해하기를 시작한다.


문장이 길면 잃는 것도 많다. 습득과 동시에 동작하는 망각회로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단기 기억의 유통기간은 길지 않다. 기껏 해야 3초 정도. 그 짧은 시간 안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우리 뇌는 복잡한 정보를 한 번에 처리하지만 그만큼 잃어버리기도 한다.


둘째. 문장이 길면 생각도 꼬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게 아니었다. 끝나지 않는 문장 때문에 글쓴이의 의도가 행간에서 흩어진다. 뒤늦게 읽고 다른 의도임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다. 길게 쓴 문장이 아깝다 한다. 다시 쓰지도 지우지도 못하는 상황이 난감하다.


내 생각과 다른 글이다. 비록 내가 생각한 의도와 다르지만 나쁘지 않다고 타협하는 것만큼 나쁜 글은 없다. 잘못된 욕망과 손잡는 순간 글은 나락에 빠진다. 당장의 해결이 앞으로의 순탄함을 약속하지 않는다. 나도 자주 겪었다. 내 의지와 다른 글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배경에는 끝나지 않는 문장이 있었다.


셋째. 퇴고가 어렵다. 문장이 길면 그 안에 생각도 많다. 하나의 욕망만 꺼내 고치기 어렵다. 서로 얽히고설키어 화학반응이라도 일어난 걸까? 단어 몇 개만 고쳤을 뿐인데, 문장 전체가 망가진다. 결국 다시 쓴다. 퇴고를 해보면 안다. 짧게 끊어쳐야 고치기도 쉽고 다시 쓰기도 쉽다는 사실을. 마침표가 주는 완전함이 안전감을 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럼 어떻게 쓰면 될까?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짧게 쓰면 된다. 당연한 말이라 당혹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단문 쓰기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한 개의 문장에 한 개의 생각만 담으면 된다. 이게 단문 쓰기의 비법이자 노하우고 전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우리말의 기본 문형은 주어 목적어 서술어다. 한글을 배우는 이들이 처음 접하는 문형이다. 너무 쉽고 단순하지 않은가? 이 단순함이 쓰기에서는 핵심이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다.’에서 끝나는 문장은 쓰기도 쉽고 읽기도 쉽다. 우리 뇌는 이런 친숙한 문형에 익숙하다. 읽어보면 바로 안다.


아래 문장을 보자.

“진심으로 그 사람을 위로하려면 그 상황만을 가려서 못 보게 할 것이 아니라 그 힘든 상황을 뛰어넘었을 때의 희열을 맛보게 한다든가 그 힘든 상황이 힘든 상황이 아닐 정도로 성장이 되게끔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직 간접적인 본인의 경험과 그 경험을 이론으로 정리할 수 있는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 문장은 내가 처음 쓰기에 심취했을 때 쓴 글이다. 무지가 이렇게나 부끄럽고 위험하다. 우선 문장이 길다. 한 번의 들숨으로 다 읽기에는 숨이 차고 버겁다. 여기서 단어 몇 개만 더 들어왔어도 읽기를 포기했을 거다. 내 글이 아니었다면 이 한 문장 만으로 다음글을 읽지 않았을 것 같다. 쓴다는 것과 읽을 수 있게 쓴다는 말은 완전 다른 말이다.


이렇게 고쳐보면 어떨까?

“진심으로 그 사람을 위로하고 싶은가? 당장에 상황만 가린다고 그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힘든 상황을 극복했을 때 희열을 맛보게 해 주자. 아니면 지금 상황이 힘들게 보이지 않도록 성장을 유도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의 직 간접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이론으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문장을 짧게 잘랐다. 문장 하나에 생각 하나만 남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한결 낫다. 사실 단문 쓰기 말고도 고치고 싶은 게 많았지만 여기서는 참는다.


아무렇게나 쓰고 단문으로 고치기는 어렵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자체가 단문용이 아니라서 그렇다. 단문 쓰기의 핵심은 단문용 생각하기다. 생각이 복잡하면 문장도 복잡한 복문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쓰기 전 미리 생각을 다듬어야 한다. 글쓰기는 요리와 같다. 요리를 위해서는 재료 손질이 필수다. 양파를 까고, 마늘을 다지고, 당근은 채로 썬다. 이런 과정이 쓰기에도 필요하다.


흙과 껍질이 범벅된 재료를 어떻게 알맹이만 남길지 고민해야 한다. 원재료만 지지고 볶는다고 해서 다 요리가 되지 않는다. 용도에 맞게, 독자에 맞게 생각 정리가 먼저다. 빨리 쓰고 싶은 것은 알겠지만, 정리 후 쓰는 게 먼저다.


생각은 많은데 단문으로 쓰고 나면 어쩐지 허전하다. 말하다 마는 기분 같다. 무수히 많은 부사와 형용사를 가져와 말하고 싶었다. 이는 글쓰기와 내외가 심했던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부작용이라기보다 몸에 군더더기가 빠지는 과정이다.


계속 써보라. 그동안 꾸덕하게 끼여있던 수식어가 걷히게 될 것이다. 그 결과물을 보라. 앙상한 듯 보이지만 담백한 그 맛을. 한 번만 읽어도 안다. 한입거리가 쓰기에도 좋고 읽기에도 좋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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