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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Jan 07. 2024

프롤로그

 글쓰기, 애증의 존재

그저 가슴 깊숙한 어딘가에 있을 열기를 누르고 살았다. 살다 보면 그 통점의 빈도가 줄어들 줄 알았다. 아픔만 매만지며 살았다. 한숨으로 보내는 날들만 늘어갔다. 결국 화병이 도졌다. 치유를 위해서는 상처를 봐야 하는데, 마음에 박힌 상처는 좀처럼 그 모습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러다 글쓰기를 만났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겠고, 그냥 아프다는 말만 골라 쓰기 시작했다. 유치원 아이들의 그림일기에 그림만 뺀듯한 글이 튀어나왔다. 부끄러웠다. 그래도 살만은 했다. 내 말을 쓰고 내가 읽을 수 있음에 묘한 쾌감을 느꼈으니까. 


계속 썼다. 동기도 모르고 이유도 몰랐다. 그냥 써야 할 것 같은 막연한 욕망에 눌린 채 쓰기만 반복했다. 한바탕 쓰고 나면 100미터 달리기를 한 사람처럼 후련했다. 날숨의 연속이 아닌, 들숨과 날숨의 규칙성이 이렇게나 행복한 일인가 싶었다.


얼마쯤 썼을까. 쓰고 싶은 말이 없다. 할 말은 많지만 쓰질 못했다. 내 몸에 갇힌 채 수십 년간 방치된 탓일까? 한숨과 걱정에 닳아 풍화작용이라도 생긴 듯했다.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어떻게 붙인 쓰기의 욕망인데, 잠시간의 머뭇거림에 꺼질 것 같았다. 초조함에 발만 동동 굴렀다.


쓰다 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내 말을 들었기에 살만했던 게 아니었다. 단지 쓰기 위해 내 마음에 들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느낌 자체에 집중했다. 포근하면서도 편안했다. 이렇게 쓰면 혼자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쓰겠다 보다는 계속 쓰겠다는 생각에 더 몰입했다.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어떻게 하면 계속 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아무 의미 없는 말만 늘어놓을 수 없지 않은가. 이왕이면 자신과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쓰기였으면 했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말이다.


DIY 가구에 각각의 재료만 붙인다고 가구가 될 수 없다. 각 재료의 이름과 수량, 순서가 명시된 설명서가 없다면 그냥 재료에 불과할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쓰겠다는 의욕과 재료만 있다고 해서 다 글이 될 수 없으니까.


나는 무턱대고 시작했다. 어쩌다 글이 되는 기적도, 전부를 지워야 하는 불운도 겪을 만큼 겪었다. 그 여정을 여기에 남기고자 한다. 결과로써의 글이 아니라 과정에서의 글을 낱낱이 뜯어보고 해체하며 쓰기를 계속하기 위한 설명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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