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 비 그리고 바람 Feb 04. 2024

쓰기는 힘 빼기부터

쓰기 설명서 그 네 번째 이야기

 좋은 글 쓰기는 몸에 힘 빼기부터다.

글 좀 쓰는 사람과, 잘 쓰는 사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존재한다. 무어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없다. 무언가가 있는데 말할 수 없다니. 답답했다.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정확한 이유를 알았다면 나도 이렇게 지루한 글을 쓰고 있지는 않겠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내 글 수준도 좀 높여주라.


결론부터 말하겠다. 글 좀 쓰는 사람은 예쁘게 쓰려는 사람이고, 글 잘 쓰는 사람은 생각이 그냥 글이 되는 사람이다. 무슨 말인가 싶겠지. 먼저 쓰겠다는 욕망부터 분석해야 한다.


처음 글 쓰는 사람 대부분은 비슷한 생각을 한다. 글을 ‘쓴다’라는 동사를 가지고 싶었거나, 뽐내고 싶어서다. 대학 다닐 때 이런 적 있다. 기타나 악기를 매고 다니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웠다. 허름한 옷을 입어도 예술인 같아 보였다. 자유와 창작의 고통을 저울질하려면 저렇게 입어야 하는구나 했다. 뭘 해도 있어 보였던 것 같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쓴다’를 매고 다니며 부러움의 시선을 느끼고 싶을지도. 내가 딱 그랬다. 글을 쓴다 라는 동사가 너무 갖고 싶었다. 저 세상 외계인 같이 느껴지는 작가라는 명칭이 나에게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으면 했다. 저자 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단지 ‘쓴다’, ‘작가’라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가지고 싶었다.


써보면 안다. 잘 쓰기가, 계속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말이다. 응당 작가라면과 같은 말이 매 문장마다 마침표처럼 따라왔다. 괴로웠다. 쓰기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인데, 꼭 화려하고 유려한 말들로 고쳐 써야 하는 것일까? 온통 이런 생각뿐이었다.


글 한마디 쓰기도 힘들었다. 겨우 한편 쓰고 나면 산 정상이라도 정복 한 사람처럼 늘어졌다. 몇 날며칠을 앓았다. ‘고작 몇 문장 쓰고는 왜 이러는 걸까? 뭐 대단한 거라고, 잘 쓰지도 못하네’ 이런 생각만 했다.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았다. 펜을 꺾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작가나 쓰기에 대한 경외심만 잔뜩 품은 채 말이다.


잘 쓰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한 사람에게 좋은 글이 나올 수 있을까? 힘만 들어갈 뿐이다. 어디서 본듯한 문장만 게워내었다. 각각의 표현은 훌륭하지만 서로 어울리지 못했다. 상황에 맞지 않는 경직된 문장 같았다. 힘이 들어간 글은 쓰기도 힘들거니와 읽기도 힘들다. 몇 번씩 꼬여버린 문장 때문에 본디 쓰고자 했던 의도를 놓쳐버리기 일쑤다.


잘 쓰고 싶음은 부사와 추상적인 단어 사용 빈도에 비례한다. 글은 주어와 동사의 호응만으로 뜻이 될 수 있다. 힘은 평범함을 거부한다. 추상적이고 화려한 단어가 엉겨 붙는다. 생동감을 위해, 자신이 생각한 바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라 한다. 구차한 변명이다. 추상적인 말 뒤에 숨으려는 것일뿐. 읽으면 바로 안다. 지나치게 늘어진 글, 무언가 덕지덕지 붙어 본래의 뜻을 알 수 없는 글이라는 것을. 힘이 들어가면 본질은 흐려지고 만다.


예전에 내가 썼던 글 일부를 가져왔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아무나가 되고 싶다는 것을 바랄 뿐이다. 단지 나만을 위한 아무나 가 말이다. 어른들이 심어준 돌멩이를 나 자신이라는 땅속에 키우며 싹을 틔우길 기다렸던 세월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이것조차도 나를 위한 인고의 시간이라고, 더 나은 나를 위한 것이라고 바꿔 생각할, 착해빠진 "나"라는 존재를 위해서다.”


그냥 흘겨보면 거창한 담론을 다루는 것 같다. 바로 3초 잘 쓴 글이다. 내용을 따져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쓴 글이기에 어렴풋이 그 속내음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당장의 불안함은 어른들 때문이라는 것과,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겠다 정도의 마음으로 썼던 거 같다. 단지 내가 쓴 활자라서 내 기억의 파편이라 가능했던 거다. 타인이 읽었다면 이게 무슨 말인가 했을 거다.


못난 글이다. 자신도 모르는 막연함을 추상적인 표현 뒤에 숨겼다. 해석하기 나름인 거다. 일부 독자는 이런 혼돈 속에서 전혀 다른 뜻을 길어 올리기도 한다. 표현의 막연함에서 오는 뜻의 명확함은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는 공식이다. 이렇게 쓸 거면 쓰지 않는 편이 낫다. 애매한 말로 남을 현혹시키려는 것처럼 보일뿐이다.


물론 글 쓰는 이유가 자신의 지식만을 뽐내기 위함이라면.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써서 자신만의 세상을 뽐내고 싶은 요량이라면 가던 길 가면 된다. 타인은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은 만족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니까. 말리지 않겠다. 대신 자신의 글이 인기가 없다거나 읽히지 않음을 탓하지 말라. 독자의 우매함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편협함 때문이다. 좋은 글은 차고 넘친다. 어려운 말로 점철된 당신의 글을 읽을 이유가 없다는 거다.


글에게는 진실로 대해야 한다. 담백함이 최고의 풍미이듯 글도 마찬가지다. 겉꾸미고 화려한 글로 자신의 생각을 포장하면 안 된다. 잘 쓰는 사람의 글은 그래서 티가 난다. 자신의 생각을 가장 쉽고 편한 방법으로 써내려 간다. 마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글을 쓴다기보다, 나는 작가다라는 공모전에 나갈 요량으로 쓰지 않는다는 거다.


글은 인격체다. 자신에게도 감정이 있고, 마음이 있으며, 생각이 있다. 우리와 같이 숨 쉬고 상호작용하는 존재다. 누군가가 자신을 돈줄로 본다던가, 출세의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어떻겠는가. 어두운 속내를 모를 리 없다. 결국 떠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생각하고 존중하는 사람 곁으로. 글은 딱 그런 존재더라.


이전 04화 글에도 꼰대가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