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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Feb 18. 2024

매일 쓰기

쓰기 설명서 그 여섯 번째 이야기

 매일 쓰기.

글을 조금이라도 더 쉽게 쓰고 싶은가? 그럼 메일 쓰면 된다. 인간의 신체와 감정은 24시간을 주기로 리듬을 탄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방법으로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쓰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패턴이 있다. 누구는 새벽의 적막함에 기대 쓰는 걸 선호하고, 누구는 모두가 잠든 고요함에 편승해 쓰는 걸 좋아한다. 조용한 곳을 선호하는 사람. 복닥 복닥 한 분다움 속에서 쓰는 걸 즐기는 사람 가지각색이다. 장소도 조명도 음악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길로 가기 위한 저마다의 고유한 지름길이 있다.


몰입해서 써보면 안다. 지금이 바로 쓰기를 위해 몸과 감각이 정렬되는 순간이 왔음을 말이다. 나는 이 순간을 즐긴다. 단어 하나하나에 감정이 깃든다.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갈 때의 시선의 이동이 포근하다. 꼭 시간의 흐름 같다가도, 과거로의 여행 같기도 하다. 기나긴 여정에서의 중요 명소를 들리는 기분 같다랄까? 나는 활자가 늘어나 말이 되는 것보다, 늘여놓는 순간에 느낌이 좋다.


이런 몰입이 오지 않은 글쓰기는 고통의 연장선일 뿐이다. 차라리 쓰지 말고 휴식을 취하는 편이 낫다. 의무감에 사로잡힌 글쓰기는 두통만 유발할 뿐이니까. 쓰기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몰입에 기댄 글쓰기의 효능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알았다. 지금은 나다운 방법과 기운을 이용해 몰입으로 가닿는 방법을 실천 중이다.


나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쓴다. 퇴근 후 저녁 먹고 노곤함을 물리치고 난 뒤 그 시간, 바로 저녁 9시다. 이 시간만 되면 문을 닫고 들어가 글을 썼다. 처음에는 거부감도 컸다. 바탕화면에 소복이 쌓여있는 수많은 욕망들이 딴짓하라고 손짓한다. 어떤 때는 다른 짓 하느라 글 쓰는 시간을 날린 적도 많았다.


계속 쓰려했다. 하얀 백지위에 활자를 늘여 놓았다. 고민하다 내려놓은 단어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고 소름이 돋기도 한다. 때로는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 다 지워버린 날도 많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 썼다. 나이를 먹던 날도, 일이 힘들어 좌절하던 날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쓰다 보니 의무감보다 습관으로 쓴다는 생각이 커지더라.


중력은 시간을 구부리는 능력이 있다. 이렇듯 글도 습관이 되면 신체와 감각을 구부려 글쓰기 위한 상태로 만든다. 특정 시간에 비슷한 방법으로 글을 쓰자. 우리 감각과 감정은 글쓰기 위한 방향으로 끌리게 되어있다.


이게 하루 이틀 만에 되지 않는다. 최소 3개월 이상은 해야 한다. 알고 있는가? 어떤 저항에도 의지가 꺾이지 않는다면, 우리 뇌는 의지를 돕는 데 사용한다는 사실 말이다. 외려 재촉하기까지 한다.


일전에 글 쓰는 시간에 술을 먹고 놀았던 적이 있다. 술을 찰지게 먹고 있는데 불현듯 글감이 떠오르고 특이한 생각이 샘솟았다. 나를 스치는 모든 것에 대해 쓰고 싶게 만들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 국물마저도 어떤 감정에 둘러 쌓인 채 나를 기만하듯 올려다봤다. 시간을 봤다. 저녁 9시 20분. 그때 알았다. 아 내가 글을 쓰는 시간이구나. 모든 감각이 저녁 9시에 반응해 세상을 받아들이고 담아낼 수 있는 준비가 끝난 바로 그 시간 말이다.


습관에 떠밀리고 의무에 짓눌러도 써질까 말까 한 게 글이다. 쉽지 않다. 주변에서도 앓는 소리 많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타자음 보다 앓는 소리가 더 크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쓰기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자신을 구부리고 희생해 가며 써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쓰고 있다면 잘못된 글을 쓰고 있는 거다.


의무에 범벅이 된 삶의 연장선에서 길어 올린 글은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딱딱하거나 비슷하거나 재미없다는 이유로 몇 번 떠돌다 말겠지. 이런 글을 쓰겠다고 나를 갈아 넣은 것은 아니니까. 매일 쓰기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굳어있던 근육이 풀리고, 삶의 관성에 역행하려면 매일 3개월간은 써야 한다. 곰이 100일 동안 동굴에 들어가 마늘과 쑥만 먹으면 사람이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옛말에 틀린 말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3개월간 매일 꾸준하게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매일 쓴다. 저녁 9시가 되면 방으로 들어간다. 조명은 최대한 어둡고 감성적으로 꾸며놓았다. 익숙하면서도 잔잔한 노래를 튼다. 아무도 없는 카페에 홀로 앉아 창 밖의 풍경을 응시하는 느낌으로 모니터를 본다. 잠시 후 익숙한 노랫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는 상황이 온다. 쓰기를 위해 몸과 마음이 자신을 구부린 채 세상과 접점을 넓히고 있는 순간이다.


이 상황에서는 무엇을 써도 된다. 흐름에만 방해받지 않는다면, 생각한 바를 글로 옮기기에 무리가 없다는 거다. 생각을 모니터 위 어디쯤 고정해 놓고 그림을 그리듯 글로 옮긴다. 바로 매일 쓰기가 주는 몰입에 기댄 글쓰기 기법이다.


매일 써보라, 그래도 어렵다면 특정 루틴을 끼워 넣으며 짧게라도 써보자. 몰입에 단계만 들어가면 글은 어렵지 않다. 온몸에 가득 들어간 힘을 빼고,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듯 생각을 글로 옮기기만 하면 된다. 3개월만 하면 당신의 몸이 그 길을 알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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