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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Feb 25. 2024

글 마침표 찍기 그 짜릿함

쓰기 설명서 그 일곱 번째 이야기

 의외였다.

첫 문장을 쓰는 것보다 글 마무리가 더 어렵다는 사실 말이다. 백지 앞에 아득하게 시작하는 첫 문장이 창작의 고통을 저울질한다면, 끝문장은 모래알 속에 진주를 찾아 헤매는 고통 같다. 내 글에는 없을지도 모를 내용의 본질과 마주하는 느낌이랄까?


나뿐만이 아니었다. 마무리를 어려워하는 사람 말이다. 끝문장을 보면 그 사람이 가진 생각의 틀이 보인다. 자신만의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다.


온통 보고서에 둘러싸인 채 사는 사람이 있다. 그의 모든 글은 보고서스럽다. 의사 전달만을 위한 글 범벅이다. 단순함을 기본으로 하며 마무리는 요약으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 자신의 생각은 최대한 누르고 전달에만 초점을 맞춘다. 정확한 의사전달만을 위한 글이 목적이라면 성공이지만 읽고 나면 어째 회반죽 벽이 떠오른다. 백과사전을 보는듯한 느낌마저 든다.


어떤 이는 어렸을 적 동화책이나 드라마를 많이 봤을 수도 있다. 그가 내어놓는 이야기 대부분은 극적으로 치닫다가 마무리는 반드시 교훈으로 끝난다. 상황에 대한 묘사는 생동감 넘치지만 끝은 어떻게 끝날지 알 것 같다. 꼭 영화 결말을 알고 보는 느슨한 긴장감만 있을 뿐이다. 표현의 생생함에만 눈길이 가는 경우다. 읽고 나면 왠지 모를 아쉬움이 맴돈다.


이런 글은 사유의 꽃을 피워볼 공간이 없다. 그냥 활자 읽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분단위로 시간을 맞춰 움직여야 하는 패키지여행 같은 글이다. 한 번은 읽겠지만 찾아서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교훈적인 결말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더 이상 해볼 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독자를 참여시키지 못하는 글은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다.


아직도 꿈을 꾸는 이도 있다. 앞서 언급한 뻔한 이야기와는 정 반대다. 꿈같은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다. 글이 너무 비약적으로 치닫는다. 끝이 어떻게 될지 종잡을 수 조차 없다. 외려 독자가 글쓴이를 붙잡고 뜯어말리고 싶을 정도다. 이런 글은 불안하다. 너무 현실과 접점이 없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생각의 폭이 넓다는 것은 알겠는데, 판타지 소설을 능가하는 결말은 별로다. 조금만 더 땅에 발 붙이고 썼으면 싶다.


위 사례는 과거 내가 읽으며 메모해 두었던 내용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쓴 글이다. 쓰는이 모두에게는 각자의 취향이 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내가 맞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취향의 문제를 지적하겠다는 것 또한 아니다. 모두에게 좋은 글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거니까.


단지 자신의 욕망에 각인된 일편단율적인 방법으로 끝맺으려는 사람에게 알림을 주고 싶을 뿐이다. 자신은 어떻게 결말을 내리는지 모르거나 그런 결말 때문에 시작조차 못해보고 펜을 꺾어버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그럼 끝맺음은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일까? 나도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해봤다. 너무 정보 전달만 하자니 끝이 밋밋하고, 그렇다고 교훈적인 말로 끝내자니 유치하고, 말을 하다 말고 끊고는 독자에게 맡겨버리자니 죄책감이 들었다. 그럼 어떻게 쓰란 말이냐 하며 한숨지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야기의 시작도 담담하게 시작하듯 끝맺음도 그렇게 쓰면 된다. 꼭 어떤 여운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쓰면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럼 끝맺음도 딱딱할 수밖에 없다. 글을 쓸 때 어떻게 써야겠다고 생각은 하되 끝맺음은 열어두자.


사실 처음부터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당신은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하는가? 결론을 앞에서 미리 전달하는 두괄식 문장으로 쓰는가? 그럼 시작 문장처럼 결론을 한번 더 말해주고 끝내면 된다. 아니면 대화의 한 장면으로 시작하는가? 그럼 대화하며 생각하고 다시 대답하는 장면으로 끝내면 되는 거다.


이것도 내가 고민하지 말라는 차원에서 알려주는 예시에 불과하다. 그냥 끝을 의식하지 말라. 닫히면 어떻고, 열리면 어떻랴? 쓰고 싶은 것을 쓰되 항상 같은 방법으로만 끝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은 거다. 난잡하게 끝을 내라는 말이 아니다. 고유의 리듬을 타고 문체를 가지면서 끝을 닫으면 되는 거다.


글에도 리듬이 있고 장단이 있다. 이런 장단을 처음과 비슷하게 유지하면 문체가 생긴다. 이런 문체가 글 어디에도 풍긴다면, 그리고 그 여운을 독자가 감각할 수 있다면 그는 고유한 작가 중 한 명이 되는 것이다. 이런 리듬은 작가가 책상 앞에 포스트잇에다가 붙여놓고 쓰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자유로움에서 나오고, 자유로움을 붙들어 매고 있는 단단한 생각의 결에서 나오는 거니까.


자신의 활자 늘여놓기에 빠져 놀다 보면 피곤하기도 하고, 잠이 오기도 한다. 책을 읽다 조용히 책을 놓치며 툭하고 잠이 들 듯, 스르르 끝맺으면 되는 거다. 어디까지나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고 지치지 않게끔 느슨한 연결고리를 가지는 게 핵심이다.


끝맺음은 정답을 갈구하는 물음이 아니다. 단지 개인적인 취향을 묻는 설문조사일 뿐이다. 이런 것 가지고 창작의 고통이니 힘드니 어쩌니 하지 말자. 그럴 시간에 차라리 잠이나 더자고 편안한 마음을 갖는 게 낫다. 글은 싫은 게 아니다. 단지 처음 써보는 말이다 보니 조금 어려울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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