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 비 그리고 바람 Mar 10. 2024

쓰기를 포기하려는 사람에게

쓰기 설명서 그 마지막 이야기

 내가 가진걸 모두 보여 주고 싶다. 당신이 글을 쓸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오라 할 수도 없고.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우리 모두는 글을 쓰지 않는다. 쓰는이 모두도 계속해서 글을 쓰지 않는다. 계속해서 글 쓰는이 또한 그 글쓰기의 효능과 고통을 저울질하며 살아갈 뿐이다. 우리를 백지 앞으로 이끄는 힘은 무엇일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며 의지에서 나오는 소리 없는 외침인 걸까?


이제는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안 쓰던 삶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하루라도 내 생각을 글이라는 망으로 걸러내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 눈을 감아도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환청 때문에 오던 잠도 달아날 지경이다. 나는 뭐가 그렇게 억울했던 걸까? 뭐가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어쩌다 보니 글 쓰는 법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안 쓰던 사람이 쓰는 사람으로 바뀌며 몸에 나타나는 뒤틀림을 받아 적었다. 그렇게 적다 보니 쓰는 법을 적을 수밖에 없었다. 내 몸에 알게 모르게 엉겨 붙은 글과 생각의 화학반응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기 생각 쓰기란, 글과 생각의 무질서 속에 피어나는 조합 같아 보여도 큰 질서 속에 반복되는 무질서였음을 말하고 싶었던 거다.


나열하고 싶었다. 글이 말하는 나의 욕망을 끄적였다. 처음부터 있었지만 모르고 살았던 그 이야기를. 저 멀리서 모스부호 같은 구조신호가 점점 더 또렷하게 들려온다. 쓰지 않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일상의 자장 속에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지금껏 살아온 삶에 대한 후회는 아니지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음에 대한 바람이었던 것 같다.


단지 재미 삼아 써보던 사람이 꼭 써야 하는 사람으로 가는 여정은 녹록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욕망과 반대편으로 나아가야 했다. 글을 써야 하는 핑계는 처음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쓰지 말아야 하는 핑계는 백개든 천 개든 늘여 놓을 수 있었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질질 끌어서라도 써야 했다. 무어라도 떠올려 손가락의 관절을 놀려야 했다.


매번 쓰면서도 낯설어지는 게 글이고, 매일 쓰면서도 새로운 사실이 피어나는 게 또 글이다. 같은 반 친구들 이름은 몇 주 정도면 다 외울 수 있었는데, 매일 3년 가까이 봐온 단어도 쓰고자 하면 엉뚱한 모습으로 생각났다. 이것은 쓰기를 하는 자에게 주어진 업보 같다. 창작을 저울질하는 이에게 주는 형벌 말이다.


내가 사는 세상이 익숙하고 편해질수록 당신의 삶은 쳇바퀴 굴레에 끌려갈 뿐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기도 하다. 세상이 내어주는 ‘매번 같음, 매번 편함’만 취한다면 당신의 내일은 의미 없던 오늘의 또 다른 연장 선일일 뿐이다.


세상에 이유 없는 고통 또한 없다. 글을 취한다는 것은 이유 없는 고통을 당연함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다. 매번 다른 세상을 접하고 다른 말을 들으며 자신의 머릿속에 섬세한 감수성을 머금고 산다. 압력밥솥에 열이 차오르고 압력이 차면 추가 돌며 김이 나오는 게 쓰기와 비슷한 것 같다. 하얀 백지에 쓰는 행위가 딱딱한 쌀알이 물과 열과 압력을 머금어 탱글탱글 물렁하게 익어가는 것과 같다는 거다. 먹을 수 없음에서 먹을 수 있음에로의 이행인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고봉밥을 보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글도 마찬가지다. 하얀 백지위에 고봉밥처럼 채워 넣은 글을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으니까.


지난 과거를 되짚어 본다. 나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칠칠맞다거나 헐겁다는 표현 사이로 글이 빼곡하게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이대로 계속하면 네모나거나 동그란 모양 안에 꽉 채워진 자신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도 쓰기를 원한다면 그냥 써보라. 자신을 지겹게 따라다니던 ‘나’스러움과 일상이라는 단어의 반복에 질리는 중이라면 써보라는 거다. 억지로라도 고통을 주입하다 보면 억지로라도 촉발하는 새로움에 놀라게 될 테니까.



이전 09화 쓰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꿀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