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 비 그리고 바람 Feb 11. 2024

쓰기는 쓰기가 다했다

쓰기 설명서 그 다섯 번째 이야기

 쓰기는 쓰기가 하는 거다.

쓰기 설명서 연재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것을 다 내어놓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글쓰기를 하며 얻었던 효능과 욕망을 모두 보여주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더 나눴으면 했다. 나만 알고 있음으로써 좋은 것도 있지만, 타인과 나누면 곱절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눈치다. 글 쓰며 번민하다 시근이라도 든 것일까?


글 잘 쓰는 방법이라.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글쓰기 서적이란 서적은 다 뒤져도 딱 이거다 하는 해법을 찾지 못했다. 잘못된 글 쓰지 않는 방법만 가득하다. 단문으로 써라, 간결하게 표현해라, 부사를 골라내라, 접속사를 쓰지 마라, 안된다 안된다 안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안 된다는 말 말고 정말 잘 쓰고 싶은 방법이 궁금했다.


3년을 썼다. 일하고 잠자고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최대한 글을 곁에 두었다.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잘 쓰는 방법이란 게 없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 말이다. 쓰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절망적인 말처럼 들릴 수 있다. 잘 쓰고 싶어 왔는데 방법이 없다니. 제발 이 말만 듣고 포기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정도로 포기할 것 같았으면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당신은 그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


쓰기는 재능을 타지 않는다. 방법도 지름길도 없다. 완벽함이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단지 쓰기는 쓰기를 통해 나아질 뿐이다. 글쓰기는 엉덩이 근육으로 써야 한다더라, 글쓰기에는 왕도가 없다, 베스트셀러 작가도 백지 앞에 아득하다는 말만 가득하다. 어떻게 써야 한다라는 말 보다 미련하게 써야 한다는 둔팅이 같은 말만 삼켰다. 타인의 불행이 나에게 행복이 아니라, 모두가 힘들다는 말을 믿고 싶었던 것 같다. 묘한 동류의식을 느꼈다.


잘 쓰는 방법이 없다는 말이 절망적으로 들리는가? 나에게는 희망이고 고무적으로 들린다. 재능 따위에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니까. 글쓰기 세상에서 만큼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저 듣기 좋아라 하는 말이 아니다. 결과를 알고 보는 동화처럼, 지금 겪는 난관이 악역의 마지막 발악으로 느껴질 뿐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면 모든 힘듦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되기 마련이니까.


어떤 날은 책상 앞에서 3시간 동안 글을 썼다. 결과물은 달랑 줄. 그 줄도 마음에 들지 않아 지워버렸다. 3시간을 썼음에도 쓰기 전 상황으로 돌아온 것이다.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글도 못쓰고, 시간도 버렸고, 애만 써서 머리만 아팠다. 결국 나는 안되는구나 했다.


이런 날도 있었다. 어떤 생각이 집요하게 들어 글로 옮겼다. 1주일 가까이 글과 씨름했다. 겨우 다 쓰고 다시 글을 읽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너무 잘 쓰고 싶다는 생각에 어깨에 힘이 들어간 듯 보였다. 내가 말하고자 하던 생각도 이게 아니었다. 의지가 생각을 꼬아버린 거다. 머리채잡은 채 두 팔 속에 머리를 박았다. 글도 서랍 속에 처박았다. 결국 세상 밖으로 글은 나오지 못했다.


내 머릿속에는 이런 일화가 무수히 박혀있다. 넘어지고 깨지고 다치고, 다시 아물기를 기다렸다를 반복한다. 그때마다 쓰기의 끈을 놓았지만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다시 썼다. 언젠가 있을 해피앤딩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부단히 썼다. 나는 노력이 부족한 인간이 아니었다. 노력의 결말이 다를까 무서워 시작도 못했을 뿐.


아무리 영험한 쓰기의 비법이라 하더라도 쓰기를 불러올 수 없다면 소용없는 거다. 요령이 있으면 뭐 하나, 쓰지를 않는데. 쓰기는 쓰기를 통해 좌절하기도 하지만 쓰기를 통해서 나아지기도 한다. 전업작가도 쓰기가 쉽지 않다 하는데 나라고 쉬울 수 있겠는가? 그들도 처음에는 나처럼 시작했다. 어떻게든 쓰면 쓰는 사람으로서 남는 것이고 안 쓰면 다시 삶에 끌려다니는 무능한 사람이 될 것이다. 쓰기 이전에 허망한 삶으로 돌아가야 하겠지.


내가 쓰기를 위한 설명서에 이런 글을 넣은 이유이기도 하다. 당신이 아무리 글쓰기를 하고 싶다 한들 안 쓰면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그냥 허공에다 활자나 늘여놓는 사람이 될 뿐이다. 결국에는 다 망각의 회로에 무뎌지고 말 테지. 의지가 약한 당신에게는 어쩌면 일타강사의 가르침보다 자신을 도발하고 전복하는 글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어떻게든 써라. 쓰기 싫어도 써라. 쓰다 보면 늘고, 늘면 쓰기가 쓰기를 모의하는 날이 올 것이다. 당신보다 더 나약하고, 언어영역 등급도 낮았던 나도 글을 쓴다. 당신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전 05화 쓰기는 힘 빼기부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