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써 행복해지고 싶다.
글을 잘 써서 나 스스로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이런 내 글을 보고 타인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활자에 진심을 담으면 상대에게 오롯이 넘어간다든데. 나는 어쩐지 쓰다 보면 진심이 가식이 되는 것 같고, 초심은 멀어지고 그런다.
진심이란 도대체 어떻게 담는 것일까? 목욕을 하고, 명상을 해서 세상의 잡념을 차단한다. 공복으로 몸에 독소를 배출하고, 충분히 잠을 자고 일어나 글을 쓴다. 맑은 기운으로 글을 쓰면 진심을 담을 수 있는 것일까? 방법이 어렵고 번거롭더라도 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먹고살기도 벅찬 현실만 탓할 뿐이다.
진심이 있네 없네 하기에 앞서 나의 진심은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말문이 막혔다. 진심을 담지 못해 슬프다는 사람이 진심이 무엇인지 모른다니. 부끄러웠다.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되고자 하는 희망도 없으면서 지금의 인생이 팍팍하니 어쩌니 하는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봤다. 자기 자리에서 성공한 이들을 본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실패를 맛봤던 이들. 그들에게 성공담을 들었다. 꾸준히 해라, 실패를 두려워 마라와 같은 말 투성이다. 나와 다른 점이 있다. 그들은 목표가 분명했다. 되고자 하는 모습이 뚜렷했고 구체적이었다. 말하는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들은 달랐다. 성공의 여정에 겪는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목표에 조금 덜 미치는 과정이었다고. 이런 말을 들으면 힘이 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힘이 풀리기도 한다. 그와 나는 다르지 않다. 같은 의지와 몸, 환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니.
차이는 진심에 있다. 꾸준한 과정에서 빼어난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라, 결과에 닿을 수 있는 진심이 있어야 부단한 과정이 나오는 거라고. 나는 쓴다는 행위로 무엇을 하고 싶었을지 정의해 본다. 이 질문에 답 하지 못한다면 쓰는 행위는 그저 창작의 고통만 느끼는 그저 그런 노동일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되고 싶은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