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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Jun 29. 2024

전동 킥보드가 만든 숲

 오늘은 평소 담아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불편함과 보기 싫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혼자만 답답하다. 어디 터놓고 속시원히 이야기하고 싶다. 같이 맞장구치는 사람 딱 한 명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밤 산책을 한다. 날은 더워도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좋다. 저녁 8시가 넘었음에도 완전한 어둠이 깔리지 않는다. 아직도 낮이라는 생각에 괜히 기분 좋아진다. 하루에 숨어있는 보너스를 찾은 기분이 든다. 시간이 멈춘듯한 어스름을 뒤로한 채 길을 나선다.


오늘도 동네를 크게 두 바퀴 돌 생각이다. 아파트 정문을 나섰다. 담벼락을 따라 모퉁이를 돌았다. 어설프게 드리워진 어둠 속에 무언가 빼곡하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전동 킥보드 예닐곱대가 아파트 쪽문 근처 무성하게 서있다. 세웠다기보다는 버렸다는 말이 맞을 정도.


사실 그전부터 불편하다 생각은 했었다. 정확하게 짚어내질 못했을 뿐. 아파트 정문이나 쪽문 근처에 다다르면 전동킥보드 대여섯 대는 매번 서있다. 때문에 차도로 내려가야 한다거나 요리조리 피해 가는 경우가 다반사. 이 또한 저녁 산책에 겪어야 할 번잡한 모습 중 하나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어렵다. 누가 킥보드를 타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못 타게 하는 것도 아닌데,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


차라리 누군가가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도 증명하고 싶어서 그랬다면 좋겠다. 관찰 카메라를 들이대고 “지금까지 실험 카메라였습니다”라고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저 답답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부터 나온다. 언제부턴가 뉴스를 보지 않는다. 어쩌다 채널 돌리거나 엘리베이터 타운보드를 통해 접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막만 봐도 열불이 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 지라는 말은 딱 지금을 가리켜하는 말 같다.


킥보드 주차 실태 하나 가지고 세상을 싸잡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골목을 돌다 평상시에도 보면 별에 별일 다 있구나 한다. 자신의 애완견 배설인데도 보고만 간다거나, 누가 봐도 학생인데 대놓고 담배를 피운다거나, 술에 취해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심한 욕을 주고받으며 가는 사람들이 그렇다. 길을 걸었을 뿐인데 불편한 상황은 무수히 나온다. 그저 각자의 다름으로 생각하고 말 뿐.


누군가를 탓하거나 나무라고 싶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럴 힘도 없다. 누군가를 지목해 설명하고 타이르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세상이 하도 흉흉하니 말이라도 잘못 걸었다 꼰대니 참견 말라느니 하며 영상에 박제당할까 두렵다. 묻지 마 흉기 사건도 자주 발생하지 않는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르는 이에게 말 건네는 행위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 되었다. 그냥 모른 척 지나가는 게 이기는 거라며 혼자 중얼인다.


얼마를 더 걸었을까, 검은색 책가방을 맨 학생이 교복을 입은 채 전동 킥보드를 타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누가 봐도 학교 갔다 학원 3군데 돌고 온 모습 같다. 땀에 쩌든 모습에 초췌해 보이기까지 하다. 밥은 먹고 다닐지 궁금했다. 학생은 아파트 정문에 다다르자 멈춰 섰다. 인기척을 느꼈던지 나를 힐끔 본다. 세워두었던 킥보드를 인도 옆으로 치워 주차했다. 나는 순간 흠칫 놀랐다. 속으로 잡았다 요놈을 외치려다 되려 미안한 마음까지 드는 게 아닌가.


그래 뭐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또 길 앞을 가로막던 킥보드가 괜찮은 듯싶다.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맥주가 간절히 생각나는 꿉꿉한 금요일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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