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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Aug 06. 2024

들어가기 - 감정 VLOG

 잊히는 감정이 아쉽다.

매일 또는 자주 감각하지만 그만큼 쉽게 잊히기도 하는 감정, 그리고 소중한 기억들. 울컥하는 순간만큼 무엇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내 삶의 관성에 놀라 달아나고 만다. 그 느낌 그대로 복기하려 했다. 하면 할수록 역부족이다. 최초 촉발한 상태 그대로 감정을 간직할 수 없을까? 인사이드아웃처럼 머릿속 저장소에 접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장과 망각을 선택할 수 있다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일 테지.


피서로 계곡에 놀러 왔다.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한다. 자연의 고즈넉함에 넋을 잃기에 딱 좋은 순간이다. 홀린 듯 산책을 나갔다. 붉게 물든 하늘이 모든 광경을 압도한다. 넉넉하게 떠다니는 구름과 오렌지 빛 하늘의 향연이라니. 기분이 묘했다. 저 먼발치 길이 끝나는 곳 즈음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습하지만 덥지 않은 바람이다. 한 여름에도 땀이 나지 않는 지금이 무척 포근하다. 바로 옆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샤워 후 개운함과 바람의 향긋함 물소리의 청량함 덕분에 체감온도는 더 낮아지는 중이다.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본다.


여기 자연은 원래 모습 그대로다. 나답게 스스로 감탄하는 것일 뿐. 감귤 주스에 담긴듯한 색감의 거리, 풀내음 가득한 바람을 감각하는 것만으로도 격하게 행복하다. 흙길에는 듬성하게 박힌 자갈과 수줍게 피어난 민들레로 수수함을 더했다. 그 위로 내 그림자가 늘어진다. 그만큼 여운도 짙다.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불행을 벗어나겠다는 악착같음으로 선택한 여행 아니던가. 삐딱한 마음이 누그러든다. 어떤 불행도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평온함이다. 


남겨야 했다. 나를 감싸는 감정에 윤곽을 긋고 두꺼운 책 속에 넣고 싶다. 언제든 꺼내 펼쳐보고 싶다. 힘들 때마다 가족사진 꺼내보듯, 감정도 꺼내 감상할 수 있을 테니까. 어떤 불행한 상황에서도 이내 행복에 젖어들 수 있을 테니. 그중 글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사물에 연필을 대고 비율을 재며 그림을 그리듯, 세상에 글을 대보는 것이다. 그리고 감정에 정도를 남겨보는 거다.


더 이상 사진이나 영상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 글로 쓰고 싶다. 나를 관통하며 스미는 감정의 여운을 남기고 싶다. 당시의 감정과 꼭 같을 수 없지만 감정이 머물다간 흔적은 비슷하게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글로 그려내지 못할 것은 없다. 단 전제 조건이 있다. 충분히 보고 듣고 느끼며 있는 그대로 감각하기가 먼저다. 몸에서 무르익고 나면 글은 알아서 쓸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지만 그 누구도 느꼈을 법한 감정을 남기고자 한다. 노아에 방주처럼, 기계군단에 맞서는 저항군처럼 감정의 숨결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써내려 갈 거다. 인간다움에 여정을 낱낱이 공개하며, 간직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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