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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Aug 25. 2024

와이프가 입원했다

 와이프가 입원했다

목에 위치한 갑상선에 암덩어리 때문이다. 추적 관찰할까 아니면 수술해서 제거할까 갈팡질팡 하던 찰나. 결국 잘라내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크기가 1cm도 되지 않는 세포 덩어리지만 의도가 불순하기에 떼어내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데리고 살면 당장에 수술은 안 해도 되지만 그동안 잠재적 불안과 함께 사는 거니까. 지금 힘들더라도 발 뻗고 자는 게 낫지 않은가?


갑상선암이라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가 기억난다. 서로 눈만 꿈벅일 뿐 아무 말 못 했다. 어떻게든 적막을 깨야했다. 시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의무감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갑상선암 그거 뭐라고”

“주변에 수술한 사람 많아”


나는 주변 수술한 지인들 이름을 열거했다. 서너 명 말하고 마지막 한 명은 수술도 안 했는데 그냥 덧붙여 말했다. 와이프는 한술 더 떴다. 소액암이라 보험금도 많이 못 받는다며 감기보다 못한 천덕꾸러기 취급했다. 이거는 수술도 아니고 시술로 부르자며 시시덕거렸다. 최대한 태연하게 행동했다. 그게 이 상황에 가장 적합한 미덕인 거 마냥. 사실 그때 와이프가 몰래 눈물 훔치는 걸 봤다. 호기심 가득한 소녀의 눈은 아니었다. 어떤 감정을 매만지고 억누름에 내비치는 복받침이 분명했다.


암 환자라 하기에 과하고 평범하다 하기에 부담스럽다. 결국 우리는 이전보다도 더 안이한 삶을 택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다. 세월은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음에 화가 났던 걸까. 예고도 없이 오늘을 수술전날로 바꿔놓았다. 눈치 없이 다가온 ‘전날’에 화가 날 지경. 대단한 거 아니라며 잘해주지 못했음이 후회로 남았다. 좋아하는 거 맘껏 사주고  좋은 곳에 더 많이 놀러 갈 수 있었는데. 호들갑 떨지 않으며 안심시켜 주려는 일이 되려 아쉬움만 키운 거 같았다.


오늘은 수술 전날 입원하는 날이다. 연차를 내고 따라갔다. 대학병원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를 올라가면 왠지 여성 브랜드가 즐비한 백화점 코너가 나올 것 같았다. 차라리 백화점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병원 오기 전 옷이라도 사줄걸 하며 혼자 중얼였다. 암수술이 별일 아닌 일 취급 하던 내가 얄미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안하다는 생각만 꾸역꾸역 밀려왔다.


역시 상상과 현실은 달랐다. 고급 브랜드가 아닌 새하얀 벽과 복도만 끝없이 펼쳐졌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본다. 각기 다른 병으로 이곳에 와있다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좌우를 둘러보는 보는 척하며 와이프 얼굴을 살폈다. 씩씩하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바닥을 보며 걷는 모양새가 오만가지 생각으로 뒤엉켜 있음이 분명했다.


우리는 새하얀 복도를 따라 걸었다. 3분이면 도달하는 거리지만 많은 대기실과 검사실을 거쳐야 했다. 발걸음은 당당했지만 느렸다. 생각이 많거나 지금 도착할 곳이 맘에 들지 않아서겠지. 그동안 암덩어리 험담만 줄곧 해오던 우리 아니던가. 그 호탕함은 온데간데없다. 환자복 입고 수액을 달고 있는 이들을 지날 때마다 고개가 떨구어졌다. 그냥 앞만 보고 싶었다. 왠지 모를 숙연함에 매번 반응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어느 노부부가 서로 의지하며 걷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손을 잡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당겼다.


이윽고 모든 검사와 수속을 마쳤다. 환자복을 입은 와이프가 앞장서고 내가 뒤따랐다. 커다란 명찰을 매고 짐을 끄는 내 모습이 흡사 연예인 매니저 같았다. 그런 엉뚱한 상상도 잠시, 우리는 입원실에 도착했다. 분명 1인실을 원했는데 병실 안에 침대가 5개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왕이면 암 수술인데 1인실이면 좋았을 것을. 안 그래도 밀려오는 죄책감 덕에 을에 입장 같았는데 이제는 병실마저 구박 중이다. 쥐구멍이 아니라 콘센트 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야 할 판이다.


병실에는 알코올과 반찬을 묘하게 섞은 냄새가 났다. 다닥다닥 붙은 침실에 눈살을 찌푸렸다. 자리를 확인하고 짐을 풀었다. 역시 좁다. 중형 아파트 거실만한 공간에 커튼이 5개 쳐져 있다. 커튼을 젖히면 작은 침대 두 개가 겨우 들어갈 공간이 나온다. 그 안에 환자용 침대, 냉장고, 선반이 있고 보호자가 있어야 할 간이침대도 있다. 이곳에서 둘이 생활해야 했다. 다행히 5인실임에도 우리 말고 중년 여성 한 분이 전부였다. 2인실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로 겨우 위안 삼을 뿐이다.


짐 정리 후 서로 자기 자리에 찾아 누웠다. 누가 봐도 갑과 을의 관계가 확실해 보였다. 옆에 구겨져 누워 있는데 와이프가 흘긋 흘긋 내려다봤다. 내가 안쓰러웠던지 오늘은 집에 가란다. 처음에는 같이 있어야지 무슨 소리냐 했다. 와이프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했다.


“내일은 수술날이니 여보가 하루 종일 내 곁에 있어줘야지”

“오늘은 나도 혼자 좀 있게 내버려 둬요”

“그럼 그럴까?”


나는 와이프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설득당하고 말았다. 눈치껏 한번 더 거절했어야 했는데. 여자 말은 꼭 들어야 한다고 빠른 포기를 자처했다. 같이 한참을 더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일 있을 수술이야기 보다 보험금 받으면 무엇을 할 것이냐로 서로 투닥거렸다.


저녁이 다가오자 나는 짐을 싸서 못 이긴 척 병원을 나섰다. 같이 들어왔는데 혼자 나오는 상황이 어쩐지 허전했다. 다시 돌아갈까 몇 번을 더 망설였지만 혼자 있고 싶다던 와이프 말이 떠올랐다. '그래 와이프도 남편과 아이 없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라' 내일 아침 일찍 오면 된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주차장 가는 길, 바지 주머니에 뭐가 들었는지 계속 허벅지를 찔렀다. 꺼내보니 와이프 차키에 붙어 있던 키링이 문제였다. 뭐가 이렇게도 많이 달려있지 하며 꺼내 들었다. 귀여운 회색 펭귄 3마리가 달려있었다. 예전 가족여행으로 아쿠아리움 갔을 때 기념품으로 샀던 펭귄이었다. 꼭 우리 가족 같다며 까르르 웃으며 샀던 기억이 났다.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이 뻑뻑했다. 아무리 감았다 떠도 눈가로 몰려드는 온기 때문에 시야가 흐렸다. 바지 속 들어있는 펭귄을 만지작 거리며 꺼내 들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 펭귄이 짤랑이며 서로 포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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