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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Aug 18. 2024

위라클(Weracle)

 “위라클(Weracle)”

나는 독서는 좋아하지만 서평은 즐겨 쓰지 않는다. 한두 번 읽음으로 책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읽을 때마다 조금씩 바뀌는 갈대 감성 때문에 서평은 엄두도 못 내는 경우가 많다. 이번은 조금 달랐다. 첫 느낌이 끝느낌 같다. 거대한 해일을 만나 휩쓸려간 곳이 낯설기는커녕 새롭기 그지없다. 지인의 추천으로 무심코 읽은 책에서 뜻밖의 감격을 선물 받았다.


한 호흡 문장에 뜻 하나가 야무지다. 빳빳하고 컬러풀한 종이라 책 넘김이 시원하다. 잘 읽히는 문체 역시 오른손을 더욱 분주하게 한다. 호로록 읽기 편한 책이다. 해석을 전담하는 전두엽까지 생각이 미치기도 전에 의미가 스민다. 그만큼 매끄럽다. 무엇보다 생각 표현이 다채롭다. 생각을 말한다기보다 마음에 모양을 맛깔나게 묘사했다. 중간중간 저자 개인의 종교적인 신념과 시선을 이해하느라 조금 애를 먹긴 했지만 개의치 않는다.


책 내용은 이렇다. 저자는 불의에 사고로 목뼈가 부러진다. 경추가 심하게 손상되어 회복되더라도 손하나 까닥할 수 없을 거라고. 의사는 냉정하고 단호했다. 저자는 잠시간 절망에 머물지만 계속 빠져 살지 않는다. 이내 원래 의지를 찾아간다. 아니 더 살겠다는 욕망으로 삶을 채워간다. 이전의 삶을 부정하지 않지만, 안이하게 살아왔음을 후회한다. 그는 부정적인 기운을 밟고 살겠다는 의지로 올라서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결국 일어선다.


‘일어난다.’ 휠체어를 벗어나 육체의 자유로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몸은 여전히 온전치 못하지만 의사가 말했던 전신마비를 가진 환자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운전도 하고 운동도 하고, 지금은 타인을 돕기까지 한다. 오히려 사지가 멀쩡한 나 보다 나은 것 같다. 휠체어가 사람을 가둘 수 없음에 대한 방증이다. 그는 방송매체나 SNS를 통해 할 수 있음에 대한 희망의 씨앗을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는 중이다. 읽는 내내 몽글한 감정이 피어났다. 정확하게 어떤 감각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지금껏 느꼈던 것과는 다른 질감의 무엇이다.


읽다가 몇 번이고 독서 중단 사태를 겪었다. 감정의 흐름이 심하게 요동쳤다. 어떨 때는 더 이상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안압이 높아지고 시큼하다가, 어떨 때는 웃음이 나서 한참을 껄껄대며 웃기만 했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찬다. 한숨인지 심호흡인지 모를 날숨과 들숨을 몇 번이고 교차하고 나서야 겨우 평점심을 찾는다. 심란한 마음에 근원을 찾아야 했다.


질투가 났다. 못된 심보 같지만 사지가 멀쩡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 아닐까 했다. 인생 최댓값으로 그를 시기했다.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눈치다. 그만큼 한결같은 그의 의지가 부러웠다. 계속 좌절하고 실패한다면 한 번쯤은 의지가 꺾일 법도 할 텐데. 나를 돌아본다. 온전한 몸을 가졌음에도 온전치 못한 의지를 가졌다. 하다 힘들면 쉼표를 마침표로 찍어버리던 나. 이런 의지를 가진 내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 같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극복 스토리의 대단함 보다 내 삶에 초라함이 느껴진다. 온전치 못한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결론을 내리기 이른다.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마음을 고쳐먹는다. 뭐든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그는 내 의지에 마중물을 부어주었다. 그동안 마른 냄비에 타는 냄새만 진동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이 책은 온전히 살고 있던 나에게 ‘온전히’가 무엇인지 알려주려는 것 같다. 아직까지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음을 꾸짖는다.


어느새 마지막 챕터. 한 번 더 읽어야지 하면서도 당장에 일어난 감정의 발화를 놓치고 싶지 않다. 불현듯 고개를 든다. 현실임을 자각하고 안도한다. 책을 덮고 손바닥을 편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해 본다. 허공에다 가위바위보 하는 사람 같다. 오늘따라 생각이 그대로 투영되는 손가락이 신기하고 그저 신기했다. 의지가 행동에 관여하지 못하면 어떤 느낌인지 상상해 본다.


옅은 두통이 뒷덜미를 잡는다. 당장에 걱정은 두통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의미 있는 걱정은 안이한 삶의 종말을 예고하기도 하니까. 오늘은 마음껏 걱정하기로 작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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