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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비 그리고 바람
Oct 13. 2024
진주유등축제에 다녀왔다.
과거 축제에 대한 좋지 못한 기억이 있다. 출발 전 망설였다. 괜히 가서 사람들 사이에 까치발만 들다 오는 것은 아닌지, 구경도 못하고 주차장만 찾다 번뇌하고 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예전 기억에 몸부림친다. 몸에서 거부할 만큼 힘들었던 기억이다. 와이프가 유등축제 가자고 했을 때 흥미롭다고 하면서도 미간에 ‘川’ 자를 내비친 이유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은 따로 반응했다. 인파 속에 묻힌 내 모습을 상상한다. 매스껍다가도 ‘아직도 그럴까?’와 같은 궁금증이 번갈아 작용한다. 가족의 욕망과 내적 호기심, 과거에 매몰된 기억사이를 미친 듯이 오갔다. 묘한 감각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며 시간을 끌었다.
가는 곳까지에 여정은 녹록지 않았다. 아니 내가 험난하게 만들었다. 이미 가겠다고 아이와 약속까지 했다. 안 갈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계속 뒤로 빠지는 엉덩이 때문에 핑계만 둘러댄다. 가야 할 이유는 한 개고, 못 갈 이유는 백개가 넘었다. 가면 분명 후회만 할 거라며 앞으로 벌어질 미래를 열거했다. 차가 막히고, 사람에 막히고,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추위에 떨기만 할 거라고. 말하고 보니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 같았다. 너무 구체적으로 말하는 통에 아이는 울상이 된다. 그 옆에 가자미눈으로 쏘아붙이는 와이프가 아니었다면 나의 저주는 계속되었을 거다.
“가야지, 누가 안 간데”
“근데 과거에 안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그래”
대학생 동아리 활동으로 유등축제에 간 적 있다. 동기 한 명이 시키지도 않은 운전을 자처했다. 20살 패기와 미성년이라는 기나긴 터널을 뚫고 온 이들에게 두려울 건 없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누르며 렌터카에 몸을 실었다. 쿵쾅거리는 마음이 성인이라는 들뜸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부모님 없는 채로 간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었다. 우리도 성인인데 못할게 머가 있어. 그때만 해도 20살만 넘어가면 자동으로 성인이 되는 줄 알았다.
순탄한 여행은 정확하게 장보기까지였다. 진주에 도착하고 바로 사달이 났다. 운전 별거 아니라며 자신감이 붙은 탓일까? 자만심을 남용한 이들의 결과는 생각보다 빨리 판가름 났다.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다. 경미한 사고였지만, 조짐이 좋지 못했다. 사고처리 하느라 해가 저물고 있는지도 몰랐다. 축제 시작 시간은 저녁 6시, 지금 시간을 보니 저녁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미 차들과 사람으로 도로가 가득하다. 언제 이만큼 몰려왔나 싶을 정도로 아찔하다. 결국 그날 완전한 어른 축제 체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주차장만 찾다가 끝나버린 기억으로 가득하다. 저녁 늦게 삼겹살과 함께 먹은 라면이 아니었다면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 되었을 거다.
진주로 가는 차 안, 운전하는 내내 두통에 시달렸다. 흔한 능선만 봐도 그때 봤던 장면 같다. 덩달아 예전 기억이 함께 올라오는 통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번에도 사람이 많으면 어쩌지 하며 걱정이 떠나질 않는다. 뒷자리 딸아이가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 모습을 룸미러로 보려고 인중을 늘렸다. 딸아이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콧노래에 맞춰 하늘거리는 두 다리가 보인다.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어 있음이 분명했다. 불꽃놀이, 유등, 드론쇼까지 모두 볼 수 있다는 엄마말에 다시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미간에 걱정 가득한 내 모습을 볼까 싶어 정면을 응시한다.
‘모르겠다 그냥 가보자’
나에게는 걱정에 대한 체념지만, 가족에게는 희망의 소리였다.
우리는 서둘러 출발한 탓에 저녁 5시 전에 도착했다. 사고도 나지 않았고 수많은 사람과 차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적당한 체증과 북적임은 있었지만 그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금씩 욕심이 생겼다. 축제 장소와 가까운 도로에 주차하고 싶었다. 근처로 갔더니 이미 도로 통제가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돌아가야 하는 차와 들어오겠다고 들이미는 차들 사이로 수많은 경적이 오갔다. 이따금씩 고성도 들리는 듯했다. 순간 예전 기억이 정면으로 살아났다. 경적소리와 들뜬 사람들의 대화소리, 축제를 알리는 안내 방송까지. 와이프에게 버럭 화를 냈다.
“거봐 내가 그렀잖아”
“여기 오면 고생만 하고 간다니까”
큰소리쳐놓고 시무룩한 와이프에게 미안했다. 가까운 곳에 대겠다는 욕심보다 사람 많은 곳에 가서 내 걱정에 정당성을 찾고자 했을 수도. 이상했다. 내가 결정한 일인데 꼭 타인이 시킨 것 같은 기분이다. 상황이 불리하면 자신도 모르게 방어기제가 발동한다던데, 지금이 딱 그랬다. 가족을 상대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보다 스스로 다치는 게 낫겠다며 혼자 다짐했다. 경직된 아이와 와이프 얼굴을 번갈아 본다. 미안함과 멋쩍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아무 말이나 던졌다.
“초입에는 없더니 사람들이 다 여기 와있었구나”
“축제는 다 좋은데 사람이 너무 많아”
결국 차로 5분 거리에 주차했다. 걸어서 15분 거리였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축제거리에 도착. 차도 주차했고 시간도 남았다. 해가 아직 고가교에 걸려있다. 입을 구름으로 가린 채 부끄럼 피우는 것 같았다. 마음은 그저 푸근하다. 분명 20여 년 전 기억과 상반된 상황이다. 사람은 많지만 쫓기지는 않았다. 딸아이는 유등과 북적이는 인파 모두가 신기해하면서도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잘 헤집고 다녔다. 오히려 한산했다면 팥 없는 찐빵 같았을 거라며 혼자 미소 지었다.
이윽고 드론쇼가 시작되었다. 수백 개의 드론이 하늘을 수놓고 사라졌다. 벌써 끝났음을 실감하지 못했던지 멍하게 하늘만 바라봤다. 불현듯 폭발음이 들렸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봤다. 강변 따라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직 드론이 그어놓은 하늘 속 궤적에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도 잠시. 연이은 폭발음에 흠짓흠짓 놀랐다. 매번 최대치를 갱신하는 충격 탓에 터질 때마다 계속 놀란다. 애써 침착한척했다. 내 팔을 안전벨트 삼아 포옥 감겨있던 아이도 같이 놀라지 않았다면 놀림당했을지도.
가슴이 먹먹했다. 그간 걱정으로 고통받던 머리를 사뿐히 비우는 중이다. 우연 같으면서도 어떤 화음을 가지고 터지는 폭죽은 마음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터질 때마다 마음은 넓어지고 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흡사 롤러코스터 탈 때의 짜릿함 같기도.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지는 상상을 한다. 잔잔한 물결사이로 다른 잔잔함이 몰려왔다. 서로 부딪히면서도 알맞게 비켜갔다.
‘아 이러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지금까지 쌓아두기만 하고 감춰두었던 마음의 벽이 무너진다. 부정적이고 안된다던 말에 논리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마침 불꽃놀도 피날레 중이다. 폭죽 터질 때 그어지는 화염의 궤적과 귀를 찢는 소리가 함께 작용한다. 고정관념과 오해가 무너지면 이런 소리가 난다며 착각할 정도.
그날 꿈을 꿨다. 자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에게 조언이랍시고 던졌던 말들의 장대비를 직접 맞아보는 꿈이다. 어쩌면 추억은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만들어 가는 존재가 아닐까. 겪어 봐야 안다는 말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