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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 Nov 17. 2020

나무는 옷을 갈아입는다.

그의 시선을 쫓아,

나무는 옷을 입는다 그리고 또 벗는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그들도 옷을 바꿔 입는 것이다. 더운 여름날은 얇은 옷을, 추운 겨울엔 더 두꺼운 옷을. 관리받는 도시의 나무들은 사람들이 옷을 한 겹 더 입혀주기도 한다.


나무가 옷을 입고 벗는, 그 사이의 관계는 내 눈에 마치 닭과 달걀 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와 관련된 논쟁처럼 보였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 모를. 아끼는 사람에게 바람맞고 월곶에서 혼자 칼국수를 떠먹던 날이 있었다. 바다를 보려는 약속을 하고 찾았지만, 직전에 약속이 취소되었고 지도에 그려진 파란 물만 보고 길을 찾아간 내 눈 앞에는 회색빛의 뻘만 놓여있었다.


비난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지만 그 순간, 나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도 2시간 넘게 달려간 곳에서 혼자 먹는 칼국수 맛은 끝내줬다. 시원한 바지락 우려낸 국물에 톡 쏘는 갓김치, 그토록 원하던 바다의 맛이었다. 파랗게 출렁이는 물은 보지도 못하고 걷다 지쳐서 들어간 칼국수 집에서 광명을 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를 비난할 생각은 탱탱한 면발과 함께 내 뱃속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바다를 보겠다는 일념을 포기하지 못해 다시 역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가을을 맞아, 도시보다 좀 더 찬 바닷바람 앞에 일찍이 잎을 모두 떨군 나무가 아직 옷을 반쯤 입은 친구 옆에 서 있었다. 누가 누구를 더 부러워하고 있을까. 꼭 그와 나의 모습 같았다. 혼자 바다에 남겨진 내 처지와 나와의 약속을 취소할 수밖에 없던 그의 상황이 비교할 바 없이 모두 애처로웠기에.


그래서 평소라면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나갔을 나무 두 그루였겠지만, 그 둘을 지나쳐가며 내 머릿속에 들어찬 비유는 그 상황의 나에게 적절했다.


자연에게 던진 의미 없는 물음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은 결국 나에 결론을 지을 것을 떠맡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다른 인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는 밖에 나서질 못하니, 나무들의 시선은 다를까 궁금했다.


그래도 나는 당신의 시선을 쫓고, 당신이 나의 시선을 쫓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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