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가 되네

관계에 연연하지 않게 되다

by Reen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정이 많아서 그런가? 한번 좋은 인연이 생기면 그 관계는 쭉 이어지는 걸로만 생각했다.



사실은 아닌 줄 알면서도 그랬다. 시절인연이란 말이 이상하다고도 여겼다. 인연이라면서 왜 그 관계가 한 시절에 그쳐야 하는가 의문스러웠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였더라. 본의 아니게 멀어지는 관계가 비일비재했더라. 시절마다 맺어지는 인연이 있고 좋든 싫든 관계가 멀어질 이유는 다분했다.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혹은 복합적으로 말이다.






돌아보면 인간관계가 정리됐던 순간들마다 삶의 변곡점이었다. 학창 시절 이사 갈 때,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대학교 졸업하고 사회 나갔을 때, 결혼할 때 그리고 가장 큰 순간은 임신해서 한 아이의 부모가 됐을 때다.



학창 시절, 대학교 입학, 취업, 결혼 등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를 넘어가며 인연이 유지되는 관계와 여기까지인 관계로 갈렸다. 그러면서 많은 관계를 정리해 왔고 아이를 키우는 새로운 삶을 앞둔 시점에서 또 한 번 정리가 되는구나를 체감했다.



한 생명을 품으며 내가 한 아이의 우주가 되니 마치 루비콘강을 건너듯 모든 관계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이제 뱃속에 있는 아기보다 내게 더 소중한 존재는 없었다.



그러니 관계에 미련이 없어졌다. 잘 만나지 않고 연락도 먼저 오지 않는, 굳이 애써 붙잡을 필요가 없는 관계들이 눈에 보이고 정리를 하게 됐다.






가지치기하듯 번호를 지울 때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전에는 분명 연락할 사람이 많았던 거 같은데 점점 줄어드는 게 눈에 보여서다.



하지만 과연 인연이 줄어들기만 했을까? 어느새 주위를 둘러보니 새로운 인연꽤 많이 겼다. 그리고 여전히 내 곁에 변함없이 소중한 사람들도 있었다.



일은 잘 벌리지만 정리를 잘 못하는 사람인데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사람은 잘 사귀어서 아는 사람은 많지만 인간관계가 복잡했는데 임신하고서야 교통정리가 됐다. 정리가 돼서야 깨달았다. 관계에 너무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아기에게는 엄마가 우주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곧 태어날 아기는 우주인 엄마를 보고 모든 걸 느끼고 경험하며 자랄 거다. 나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할 아기가 생기니 두려울 건 없었다. 아기와 함께 새로운 행복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인간관계를 또 한 번 정리하며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이 순간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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