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는 습진 그리고 질염
임신하면 특정음식이 많이 당긴다든가 붓기로 잠을 못 잔다든가 튼살 크림을 발라야 한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다. 별로 못 들었던 건 가려움증인데 겪어보니 이건 정말이지 임신 중기에 가장 날 힘들게 한 증상이다.
어느 날 생각지도 않은 부위에 습진이 생겼다. 골반 왼쪽에 500원 동전 크기로 건조한 듯 각질 같은 게 일어났는데 좀 긁었더니 부위가 주변으로 넓어졌다. 허벅지 윗부분하고 아랫배 인접한 부분까지 가렵고 빨개졌다.
도대체 이 가려움증의 정체는 무엇인가! 참을 수 없는 가려움에 수시로 박박 긁었다. 이러다간 더 심해지겠다 싶어 참다가도 또 손을 댔다. 검색해 보니 동그라미 형태로 나타나는 화폐상 습진 같은데 이건 피부염 중에서도 가장 가려운 증상이 특징이란다.
빠른 치료가 관건이라는데 한 일주일은 지나버렸다. 벌써부터 출산 후에도 증상이 이어지면 어떡하지 걱정이 됐다. 아기를 낳고도 가려워서 한의원 다녀야 되는 거 아닌지.. 심하면 아토피 전문 한의원을 다녀야 할 거 같은데 동네에는 마땅한 병원도 없는 게 염려가 됐다.
그렇게 걱정하고 가려움에 괴로워한 것 치고는 병원을 안 가고 있다가 일주일을 넘기고서야 피부과에 갔다. 시간이 약이 되길 바랐는데 증상이 여전해서다. 피부과 약이 독하다고는 들어서 갈지 말지 주저하다 지체됐다.
의사 선생님은 예상대로 강한 약은 쓸 수 없다고 했다. 스테로이드 성분이 소량 들어있지만 아기도 쓸 수 있다는 피부약을 처방받았다. 그리고 보습크림도 열심히 바르기로 했다.
한 4-5일은 발라도 차도가 없는 거 같더니 보습크림을 왕창 바르고 안 바르던 보디오일까지 바르니 가려움증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려움증으로 벌겋게 된 자국들이 신기하게 사라졌다. 그 후부터 보습크림을 꾸준히 듬뿍 발랐더니 출산까지 튼살도 없었다.
습진이 나아져서 안도하던 차에 이따금 찾아오는 손님이 다시 찾아왔다. 여성에게 감기처럼 흔하게 찾아온다는 질염. 임신 전과 차이가 있다면 좀 더 많은 분비물을 동반한다는 것. 어떨 때는 팬티를 갈아입어야겠다고 느낄 정도로 젖었다. 하루에 2-3번 갈아입을 때도 있었다.
정말이지 이놈의 질염은 임신 기간 중 삶의 질을 가장 크게 떨어뜨린 원흉(?)이었다. 화장실 가는 게 두려울 정도로 많은 찝찝함을 안기고. 이 질염 하나만으로 임신이 참 괴롭다 싶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임신을 앞둔 예비 임신부님이 혹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지레 겁먹거나 걱정하지는 마시길. 사실 질염 관련 약을 처방받고 잘 조치하면 되는 거였는데 소홀한 부분도 있었다. 괴롭지만 임신하면 다들 이 정도는 감수하겠지 여겼나 보다. 산부인과 선생님이 정기 검진할 때 불편한 곳이 없는지 물어볼 때 별 얘기를 하지 않아 처방을 잘 받지 않은 게 문제였더라..
임신하고 처음 질염 진단을 받았을 때 질정제를 처방받았는데 꽤 통통한 알약 형태인 질정제는 자기 전에 직접 손가락으로 질 안 속까지 밀어 넣어야 했다. 의사 선생님도 넣는 게 좀 불편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 때문인지 더 어렵게 느껴졌다. 처음에 시도했을 때 잘 안 들어가는 느낌이고 불편해서 처방받은 약 반도 안 넣고 중단했다. 의사 선생님에게도 못 넣겠다고 했다.
먹는 약은 처방도 안 되고.. 의사 선생님이 얘기 안 해준 방법들도 강구했다. 그중에 하나가 질염 치료기인데 가려움 개선에 조금은 도움 됐지만 분비물이 줄어든다든지 등 뭔가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면역력이 약해지는 만큼 관리를 잘하는 수밖에 없단 생각에 생활 습관 바꾸기에도 힘썼다. 염증 유발 음식은 피하고 건강한 음식 챙기고 속옷도 자주 갈아입고 임신부 전용 순한 세정제를 쓰니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되긴 했다.
돌이켜보면 그냥 의사 선생님한테 여전히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더 표현하고 처방대로 했으면 더 빨리 나았을 문제였다. 내 식대로 해놓고 진전이 있길 바라선지 괜찮다가 심해지길 반복했는데, 어느 날 못 참겠다는 마음에 의사 선생님에게 질염이 아직도 심하다고 고백하며 다시 질정제 처방을 받았다. 이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꼬박 4일을 넣었다.
그랬더니? 3일 정도 됐을 때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속옷을 하루에 몇 번 갈아입을 일도 없게 됐고 찝찝함이 사라졌다. 마치 코감기 걸렸다 나은 사람처럼 아랫도리가 상쾌해지니 다시금 지낼 만한 임신부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임신한 아내를 곁에 둔 남편들이여. 아내들이 가려움증으로 말 못 할 고민에 괴로워하고 있을 수 있다. 적극 치료받고 나아지도록 도와주시길.. (굳이 이런 거까지 얘기하진 말자 싶어서 혼자 이 모양 저 모양 괴로워하고 한껏 예민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