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주, 임신부 생활 끝
임신 초기인 12주를 막 넘어선 시점에 간호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이제는 시간이 날아갈 거라고.
정말 그랬다. 임신 중기를 지나 어느새 말기에 와 있었다. 산책하는 걸음걸이는 한 발 한 발 느렸지만 나쁘지 않았다. 하늘과 땅, 바람, 나무, 꽃. 자연을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 속도였다. 임신 전에는 벚꽃이 만개해도 올해는 바빠서 제대로 즐기긴 글렀다며 내년을 기약하듯 지나쳤는데 임신부가 되며 작은 들꽃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뱃속에 아기를 만날 날은 원래 벚꽃이 질 무렵이었는데 그날은 한 주 빨리 찾아왔다. 일요일 이른 아침, 진통을 예고하는 이슬이 비쳐 병원에 갔는데 이날이 아기를 만나는 날이 됐다. 병원에 갈 때만 해도 설마 오늘 출산하는 건 아니겠지 생각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그 많던 양수가 급격히 줄어 의사는 당장 오늘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했다.
덜컥 겁이 나서였을까. 믿기 어려운 말에 시간을 벌고자, 아니 본격 출산 과정에 돌입하기 전 마지막으로 바깥바람을 쐬며 밥이라도 맛있게 먹으려고 아침을 먹고 오겠다고 했는데 병원에서 밥을 준다고 했다. 결국 병원 밥을 먹기로 하면서 자연스레 입원했다. 이 밥을 다 먹으면 정해진 수순을 밟아야 한다. 가족 분만실에 가서 유도 분만 촉진제를 맞고 진통을 겪고 출산을 하게 되겠지...
배가 아프거나 양수가 새서 병원에 간 게 아니었기에 촉진제를 맞으면 진통이 어떻게 올지가 상상이 안 됐다. 그 자체도 겁이 나긴 했지만, 진통 시간이 장시간 이어질 게 두려웠다. 오전에 촉진제를 맞아도 진통이 잘 안 오거나 아기가 내려오지 않을 수 있어 의사가 저녁이나 새벽에서야 출산할 거라고 말해줘서다.
하지만 웬걸. 오전 10시 좀 넘어서인가 촉진제를 맞고 짐볼을 통통 타며 아기가 내려오도록 유도하는 동작을 지속하자 정오를 지나 오후 1시 정도부터 진통이라는 게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약했지만 점점 참기 어려운 고통이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사라지길 반복했다.
오후 2시 30분경 무통 주사를 놔준다고 했는데 마취과 의사가 오질 않았다. 일요일인 데다 차가 막힌다고 했다. 자궁문은 3센티미터가 열렸다는데 무통 주사를 안 맞으니 죽을 맛이었다. 오후 2시 45분경 도착한 의사가 그제야 주사를 놨다. 서서히 고통은 사라지고 감사하게도 무통에 힘입어 힘을 대여섯 번(그 이상일지도) 크게 주니 아기가 쑤욱 나왔다. 신기하고 감격적이며 어리둥절하고도 홀가분한 기분.
간호사가 그랬다. 아기가 정말 효녀라고. 산모님이 힘 열 번 줄 걸 한번 주게 알아서 내려왔다고. 정말 그랬다. 무통 주사 맞고 힘주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아기는 자궁문 앞까지 내려와 대기(?)를 했다. 개구리 인형같이 생겼지만 나름 앙증맞은 모습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어여쁘고 오동통한 모습인 나의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동시에 36주간 임신부 생활은 드디어 막을 내렸다.
아기가 자궁에서 나온 뒤로 질 입구를 꿰매는 작업이 시작됐다. 지혈이 잘 안 되는 편이어서 시간이 꽤 걸렸는데 몸이 추워서 덜덜 떨면서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 직전, 병원에 오기 전날을 꿈꾸듯 회상했다.
벚꽃이 한창 만개한 토요일 오후, 거리를 혼자 거닐다가 이따가 남편을 데리고 다시 나와야지 생각했다. 토요일엔 만사가 귀찮아 집에만 있으려는 남편에게 같이 좀 걷자고 했다.
해가 진 뒤였지만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 초저녁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벚꽃들은 한결 풀이 죽어있었는데 그 차분한 정경이 아름다웠던 날이었다. 영화 속 한 편의 장면처럼 각인된 그날, 왠지 남편과 걷고 싶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