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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Apr 02. 2024

너 엄마랑 전화하기 싫구나?

통화

엄마는 나랑 통화를 시작하면 40분 넘게 끊지를 않는다.

그런데 기나긴 전화 끝에, 내가 '이제 나도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엄마~'라고 말하면,

엄마는 '너 엄마랑 전화하기 싫구나?'라는 질문과 함께 '우리 딸 피 같은 시간을 엄마가 뺏었네!' 하면서 한숨을 쉬고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다.

나는 당연 '40분이나 넘게 통화했는데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거야?'라고 되물으며 전화를 끝낸다.


나는 분명히 통화를 오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 기준에서는 그게 아니라니,

왠지 엄마가 속상한 게 아닐까 하고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했지만 

나도 내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거니까.


엄마랑 통화를 하다 보면 친구들과 전화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오랜 시간 핸드폰을 들고 전화하다가, 어느새 팔이 아파 스피커폰을 틀어놓고 이야기하는 우리.

엄마와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너 엄마랑 전화하기 싫구나?''야 중요한 건 만나서 얘기하자!'라는 말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부모님 댁으로 들어온지 어느덧 2주가 다 되어 간다.

엄마는 집을 자주 비워 늘상 나 혼자 집에 있곤 했다.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 들어왔는데 매일 나 혼자 있으려니 왠지 외로웠다.

자취방은 원래 혼자이기도 하고 공간이 협소하니 홀로 집 안을 채워 아늑함을 느꼈었는데 

부모님 댁은 여럿이 사는 공간이니 비교적 크고 홀로 공간을 가득 매우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엄마가 집에 있을 때 나와 노는 것도 아니다.

집에서도 뭐가 그리 바쁜지, 하루종일 핸드폰을 부여잡고 전화 통화를 한다.

그걸 보고 깨달았다.

나와 전화했던 40분은 정말 짧은 시간이었구나.

엄마가 전화하는 게 싫냐고 물어보는 이유가 다 여기 있었구나.


그리고 나랑 40분 넘게 통화를 해놓고 또 누구와 저런 할 말들이 있을까 궁금했다.

사람마다 다 다른 얘기를 할 텐데, 크나큰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생각해 보니 '엄마는 집에서 하루종일 뭐 해?'라는 내 질문에 엄마는 '엄마도 집에서 바빠! 너만 바쁜 줄 아니?'라고 대답했는데, 그게 통화 때문이었구나...



내가 승무원으로 일하던 시절, 해외에 자주 나가있는 터라 부모님과 전화할 만한 상황은 잘 주어지지 않았다.

오래 해외에 체류하는 것도 아니니 로밍을 신청하지도 않아서 

전화하기 위해서는 호텔 와이파이를 이용해 보이스톡을 해야 했다.

그런데 한국이나 IT 강국이지, 해외 와이파이는 내 마음 같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 공항을 벗어나고 집에 가는 길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집에서는 나도 개인 시간을 또 보내야 하니까.

그리고 내가 일할 때 엄마도 일을 하셨던 상태였어서 둘 다 전화할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울 때도 많았다.


그래서 그때는 몰랐다.

엄마가 40분씩 통화하는 게 기본이라는 것을.

엄마에게 할 말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내가 길다고 느낀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 내가 아닌 엄마라는 것을 여러분은 처음부터 알았을 테다.

말하는 사람은 분명 본인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오래 말한지 절대 모를 테니.


오늘은 하루종일 통화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책 한 장을 넘기기 어려웠던 내 심정을 브런치에 토로해 본다.

우리 엄마가 이 글을 보면 집에서 전화도 마음대로 못 한다고 눈치 보인다며 나한테 뭐라고 하겠지?


그래도 나는 좋다.

엄마가 신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사람이 있고 

엄마가 즐겁게 사람을 만나러 나갈 시간이 있어서.

앞으로는 평생 엄마가 자기 자신을 위해 행복한 시간을 만들며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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