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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Apr 01. 2024

미련함


너 왜 이렇게 미련하니?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거나 직접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들어본 적이 참 많습니다.


미련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습니다.

1. 터무니없는 고집을 부릴 정도로 매우 어리석고 둔하다.

2. 일 따위에 익숙하지 못하여 서투르다.


여러분은 미련함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 내리시겠어요?

저는 정의를 내려본 적은 없습니다만, 제가 들어본 상황들을 보았을 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습니다.



혹시 식당 뷔페에 가서 배가 부른데도 목 끝에 차오를 때까지 꾹꾹 욱여넣은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어릴 적부터 뷔페에 가면 뽕을 뽑아야 한다라는 심경으로 식사를 시작합니다.

내가 몇 접시를 먹었는지, 각 접시당 얼마만큼의 음식을 채워와 먹었는지 등을 확인하기도 하죠.

이미 배가 부른데도 꽉 찰 때까지, 이어 ‘더 이상 못 먹겠다 ‘라며 포기를 외칠 때까지 음식을 먹죠.


그런 제게 엄마는 미련하다는 말을 합니다.

’배가 부른데 계속 먹는 것만큼 미련한 것은 없다‘고요.

그래도 저는 이렇게 먹어야 돈이 아깝지 않은 걸요.

이는 사전적 정의 1번에 해당되겠네요.



저는 회사를 다니든, 아르바이트를 하든, 과제를 하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하면 사장님께 이쁨 받겠지?’

‘이 정도면 진급할 수 있겠지?’

라는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니라, 제 성향이 그렇습니다.


완벽주의’라는 게 개인적인 과제나 업무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공동의 일을 진행할 때에도 적용되는 것이죠.

그렇다고 타인에게 함께 최선을 다해달라 말도 못 합니다.

조용한 퇴사, N잡러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열심히 일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왠지 사치품을 사는 것처럼 느껴진달까요?

내가 뭐라고 그런 요구를 하나 싶기도 하고요.

그들이 근무할 때 사용하는 체력과 열정은 주어진 액수만큼만 쓰고 싶은데, 품을 그만큼 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냥 제 욕심이라고 느껴지는 거죠.


그래서 저는 동료에게 바라지 않습니다.

대신 제가 그만큼 더 일합니다.

하지만 누가 알아주던가요?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당연하게 생각하죠.


그래서 또 듣습니다.

“알아주지도 않는데, 미련하게 열심히 하지 말고 주는 만큼만 해~“

이것도 어찌 보면 일할 때 저의 고집이니 1번 사전적 정의에 해당되는 말이겠네요.



단어 자체만 봤을 때는 덜떨어진 느낌이라 싫습니다.

하지만 내용과 상황 측면에서 보면 좋습니다.

밥 먹을 때도 값어치를 다 하려는 제 모습이 말이에요.

대충 하려 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말이에요.


물론 일의 경우 저런 꼴이 보기 싫어 그만두기도 합니다만, 우리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일꾼에 불과하다 보니 관둘 때마다 제가 손해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가 어떤 일을 하든 쉽게 그만두지 않고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저 때 잘 다져진 기본기 같은 게 아니었나 싶어요.



왜 그런 사람 있잖아요,

외적으로 봤을 때는 성격 되게 별로일 것 같은 첫인상을 지닌 사람.

그런데 알고 보면 엄청 착하고 바른 사람.


저는 미련함이 제게 그렇습니다.

단어 자체만 봤을 때는 바보 같고 멍청해 보이지만요.

알고 보면 저를 저답게 만들어준 그런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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