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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Mar 31. 2024

학창 시절로 돌아가다

추억

내가 최근 거주지를 옮긴 곳은 부모님 댁이다.

거처를 옮겼으니 종교가 있다면 다니던 곳도 옮기는 게 인지상정!


집 근처에 위치한 한 교회를 왔다.

보통 교회의 예배는 9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이곳도 당연히 9시에 시작할 줄 알고 시간 맞춰 들어왔다.

그런데 예배는 8시, 10시 이렇게 진행되어 나는 꼼짝없이 교회 안 의자에 앉아 다음 예배를 기다리게 되었다.

10시 예배를 기다리며 이곳으로 오는 내내 든 생각을 브런치에 적어보려 한다.



교회의 위치는 내가 이전에 다니던 중학교과 고등학교 바로 옆에 있다.

그래서 늘 내가 등하교하던 길을 그대로 걸어오게 되었다.

예배에 늦지 않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가는데,

학창 시절 학교에 늦지 않기 위해 걷던 걸음이 생각났다.

가을이면 은행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걷던 그 길.

학교에서도 짬밥을 먹으면 나름의 등교 요령이라는 게 생기는데,

나는 실내화와 실외화를 잘 갈아 신지 않았다.

그래서 실내화에 은행이 박혀 교실로 들어가면 친구들의 눈초리를 한껏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는 최선을 다해 피해 가거나 신발에 붙은 은행을 최대한 털어내고 들어갔다.

보도블록 경계석이나 낙엽을 주워 탁탁 소리를 내며 신발 밑창을 마구잡이로 후려친 후에는 ‘세이브!’를 외치며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도 은행나무를 마주치는 길은 조금 덜 서두르는 길이다.

이미 늦었음에도 괜한 여유를 부리다 나중에 막- 달려가게 되는 길을 마주하는데,

시계와 전방을 번갈아보며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가던 그런 길 말이다.

이 길에는 졸졸 흐르는 천이 있다.

내가 걸어가는 방향과는 역행으로 흘러가는 천.

늘 학교라는 목적지를 향해 앞만 보고 걸어가느라 한 번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천.

흘러가버린 나의 학창 시절처럼, 물도 흘러가버려 돌아올 수 없는데 흘러가는 네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게 오늘은 왠지 미안했다.


내 시선에 들어온 흘러가는 물 그리고 아름다운 노랫소리처럼 들려오는 졸졸 물소리.

‘그때는 왜 이러한 아름다움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하면서도 문득 ‘꺄르르 꺄르르’ 웃음소리가 떠오른다.

등굣길은 고난일지언정 하굣길은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내려오던 길이었다.

학교 시험을 본 날, 성적을 받고 돌아오는 날에는 웃음기 싹 빠진 창백한 얼굴로 내려오기도 했지만 말이다.


천을 따라 걷는 이 길은 흐르는 물만이 장점이 아니다.

꽃은 어찌나 예쁘게 피는지, 개나리와 목련으로 아름다움을 더욱 뿜어낸다.

이러한 자연을 마음껏 즐기지도 못하고 학생 신분으로 학교에 들어가며 얼마나 마음이 싱숭생숭했을까 생각해 보면, 그 나이 때에는 그저 친구와 맛있는 과자가 최고지 자연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네 아름다움을 이제와 알아봐 줘서 미안해 자연아!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등교 전 혹은 하교 후 지금 내가 들어와 있는 교회에 들어와 눈을 꼭 감고 기도도 많이 했었다.


이곳의 기도실은 항시 열려있으면서도 불이 다 꺼져 왠지 나 혼자 있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했는데,

겁이 많은 나는 깜깜한 곳에 혼자 있는 것을 무서워해서 절대 혼자 가지 않음에도

이곳에서는 그런 두려움 없이 용기로 무장된 기분을 얻곤 했다.

들어갈 때는 축- 처진 몸과 마음을 한껏 안고 들어가 놓고 나올 때는 갑옷과 천군만마를 얻은 듯 당찬 걸음으로 나오는 것이다.


예배당은 처음 와보는데 이전에 다녔던 교회와 빼어나게 닮아 있어서 왠지 정감이 간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몰라서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오히려 신 자체에 집중할 수 있을 거 같아 좋기도 하다.

기왕 좋은 마음을 먹고 온만큼 내게 부르심이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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