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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Mar 30. 2024

모두가 내게 친절한 날

친절

(이 글은 어제인 금요일 작성한 글입니다)


띠리링-

프리랜서를 가장한 나는 아침 알람 소리도 울리지 않는 고요한 아침을 맞이한다.


자취할 때는 알람도 안 울리겠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이유도 없겠다 느지막이 10-11시쯤 일어났다.

그런데 부모님 댁에서는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분주한 움직임에 나도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그래도 백색소음 같은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는 것이니 만큼 찌뿌둥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었다.


“야야 일어나 봐. 언니가 알바시켜줄게. 만원이야.”

내 방에 불을 켜고 들어와서는 이불을 삭- 젖힌 채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뭔데. 어떻게 하는 건데. “

졸린 눈을 비비고 시계를 보니 아침 7시.

내가 고작 만원 때문에 이걸 하겠다는 게 아니라, 언니 부탁이라서 들어주려고 했던 거였는데 나한테 온갖 신경질을 내며 일을 부여하는 것이다.


”나 거지 아니야. 안 할 거니까 도로 가져가. “

나 역시 질세라 큰 소리를 떵떵 쳐댔다.


이내 아침부터 동생한테 짜증 낸 게 미안했는지 옆으로 와서는 “언니 출근하잖아. 눈뽀뽀 해야지.” 이런다.

조만간 맛있는 디저트 카페를 가자며 유치원 선생님인 언니는 나한테도 늘 자기 아이들을 대하듯 대한다.


곧 언니는 갔고 나는 일어난 김에 책상 앞에 앉아 할 일을 했다.

몇 가지 키보드를 두들기고 났는데도 9시가 되지 않은 시각.

째깍째깍 흘러가야 할 시계가 멈춘 것이었을까?

하루가 늘어난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눈을 뜨기도 전에 언니의 짜증을 응대한 덕이었을까

왠지 오늘은 사람들이 내게 친절하다.


시작은 엄마였다.

점심을 함께 먹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며 내게 지역 화폐 카드를 쥐어주었다.

밖에서 맛있는 걸 사 먹으란다.

‘오예 신난다!’라는 속마음은 쏙 감춘 채, 나 혼자 집에 있어야 하냐며 괜한 애정 섞인 투정을 해본다.


그다음은 공공기관의 전화였다.

나 또한 친절한 목소리를 연기하였지만, 돌아오는 대답들 역시 상냥하고 배려 넘쳤다.

‘웬만한 서비스직들보다 낫네’라는 모난 비교를 속으로 삼키고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다음은 내가 주로 활동하는 모임 플랫폼 문토였다.

문토 담당자는 내게 간간히 연락해 활동하는데 어려움이 없는지, 도와줄 건 없는지 등을 물어보곤 했었는데 오늘 온 연락은 다름 아닌 스타벅스 기프티콘이었다.

좋은 모임을 열어주셔서 고맙다는 글귀와 함께였기에 기쁨은 배가 되었었다.


그다음은 버스 기사님이었다.

내가 ‘00으로 가는 거 맞나요?’라고 물었을 때, 보통 기사님들은 귀찮다는 듯 대답하시거나 퉁명스럽다는 느낌이 드는데 오늘 기사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아가씨, 여기서 내리시면 돼요! 이건 시청 가는 버스라 절로 갈 거야~“

“어?! 저 시청 갈 거예요! 시청에서 내릴게요!”

“아 그래요?! 그럼 이 앞으로 나와있어요. 제가 제일 가까운 쪽에 내려줄게요! “

“우와! 정말 감사합니다!!”

내린 곳은 정류장이 아니었다.

횡단보도였다. 정말 바로 앞에서 내려주셨던 것.


그다음은 당연히 시청이었다.

안내창구에 계신 분께서 또 굉장히 친절하게 응대를 해주시는 것이다.

거의 내가 가야 하는 부서까지 데려다 주실 기세였다.

감사가 계속되는 오늘 ‘감사합니다’를 연신 반복한 후, 재빨리 발걸음을 떼었다.


그다음은 내가 찾아간 부서였다.

점심시간이 나와있지 않아서 12시 이전에 가는 게 좋겠다 싶었고 나는 11시 반 조금 넘어 도착했다.

오잉?’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부서를 돌아다니는데,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신 한 직원분이 계셨다.


내가 하려 했던 일을 말씀드리니 “지금 식사하러 가셨어요. 13시쯤 오실 텐데. 전화번호 주시면 제가 연락드리라고 할까요? 먼 걸음 오셨는데 죄송해요.

아니에요! 제가 13시에 다시 오면 되죠 뭐! 점심시간을 몰랐는데 딱 걸려버렸네요!”

허허 웃으며 터덜터덜 나왔지만, 직접 문도 열어주시고 말씀도 예쁘게 하시니 앞으로 기다려야 하는 1시간가량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어 엄마가 준 지역 화폐로 맛있는 돈가스도 먹고

문토에서 준 스타벅스 기프티콘으로 봄 시즌 한정 메뉴 슈크림 라떼도 먹으며

지금 나는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책 운수 좋은 날이 생각난다.

모든 것이 잘 풀린 날, 마지막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결말을 맞이한 주인공.


오늘도 역시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

괜히 모두가 내게 친절한 오늘이 왠지 꺼림칙하다.

한편으로, 이런 기쁨을 마음껏 만끽하지 못하는 나의 찌질한 감정을 한탄하기도 한다.


아니다. 굳이 굳이 친절을 찾아내어 적은 글처럼 사실 따지고 보면 안 좋은 일도 많겠지.

뭐, 비가 온다 거나 가족 모두 집에 없다거나

밖에서 1시간 기다려야 해서 시간을 버렸다거나

아침 일찍 일어나 언니의 심부름이나 하는 꼴이라거나


결국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려있다는 걸 오늘도 나는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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