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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Mar 28. 2024

벚꽃도 사람도 피는 시기가 있다

벚꽃

화창한 하늘, 가벼운 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날씨, 하나둘 벚꽃이 피어난다.

코로나는 종결되었음에도 여전히 SNS로만 소통하며 거리두기를 유지하는 아파트들 사이로,

꽃피는 나무들 덕에 왠지 따뜻함이 마음에 깃든다.


어제 커피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란히 두 그루가 마주한 벚꽃 나무를 만났다.

‘각기 다른 색깔인 걸 알고 심은 걸까?’

‘어쩜 이렇게 명백하게 다른 색을 지닌 나무가 서로 한데 어우러져 이 동네의 생기를 돋을 수 있을까?’


”아이 예쁘다“

길을 걷다 산책하는 강아지를 마주치면 미소를 지으며 읊조리는 한마디를 어제는 저 두 나무를 보고 뱉었다.


사람도 비슷하게 생겼지만 각기 다른 모습과 나이테를 지녔지 않은가.

나무가 사람을 보면 ”아이 예쁘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어우러짐일까?


짧은 스침과 달리 쓸데없는 생각에 잠겨 이러저러한 질문을 던질 때쯤, 나는 다시 돌아가 저 두 나무를 사진으로 찍어 남겨두었다.


‘내가 오늘 얻은 것은 커피 한 잔이 아니야!

나무 두 그루 그리고 풍성한 감상평이지.‘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오늘,

문득 어제의 두 나무가 떠올랐다.

‘벌써부터 비 때문에 벚꽃이 흩날려 바닥에 뿌려졌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과 함께 흐릿한 하늘을 보았다.


일 년 중 한 번 피우는 연약한 꽃잎들이 힘없이 떨어질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사람이 쓰는 우산처럼 꽃잎들에게도 우산을 씌워주고 싶다며.

비를 맞아도 되는 꽃이 어디 있냐며.


그런데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비 내린 다음날 꽃은 왠지 더 진한 색을 머금은 듯하다고.

그 얘기를 들으니 그런가 싶다가도, 왠지 본인이 맡은 바 소명을 다하기 위해 죽기 전 가장 찬란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꽃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별 말 같지도 않은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봄에 벚꽃을 보기 위해 시간 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아니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시간이 없어 벚꽃이라도 보지 못하는 봄이면 나만 벚꽃 못 봤다며 슬퍼하기도 하니까.


그런데 이는 나보다 높은 곳에 달려있던 벚꽃에만 해당되는 말이다.

벚꽃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바로 그 가치를 잃어버린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쓰레기가 된냥, 쓰레받기에 몸을 실어 쓰레기봉투에 실리니까.

사람들의 발에 밟혀 마구잡이로 짓밟히니까.


그러고 보면 사람도 마찬가지다.

높은 위치에 있을 때는 치켜세워지고 박수를 받지만,

낮은 위치로 내려오면 무시당하고 비웃음 거리가 되기도 하니까.


벚꽃도 사람도 피는 시기가 있다.

높은 곳에 있으면 아래로 떨어지는 때가 있다.

그러니 낮은 곳에 있다고 좌절할 필요도,

높은 곳에 있다고 자만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오늘은 왠지 어제와 극명하게 다른 날씨,

꽃잎이 나무에서 오랫동안 살기 위해 버티느라 아등바등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든 생각을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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