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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Mar 15. 2024

묻지마 폭행을 당했습니다.

폭행혐의로 소송 원해요!

묻지마 폭행을 당한 사진입니다.

폭행을 당한 이 사건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제가 감기에 걸려 종일 집에 몸져누워있었습니다.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내어가며

이부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죠.


그래서 저는 아지 산책을 건너뛸 수밖에 없었어요.

이런 몸으로 나갔다가는 내일도 산책을 못 하게 될게 뻔했습니다.

따라서 오늘 푹- 쉬어주고 내일 조금 나아진 몸을 이끌고 밖에 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새벽 1시.

집에서 심심함을 참지 못해 몸을 비틀던 우리집 대장 아지는 제 얼굴을 밟고 지나갔습니다.

발톱으로 보기 좋게 제 얼굴을 핥퀴고 갔죠.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지르고서는 얼굴을 부여잡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놀란 마음과 고통이 진정이 되었을 때 거울을 확인했는데, 웬걸… 15cm는 돼 보이는 상처가 눈앞에 있는 게 아니겠어요?

제 눈을 사이에 두고 치타를 만들어 둔 것이었어요.

어쩌면 원피스에 나오는 조로 같기도 하고…


아지를 혼내야겠다는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몸에 기력이 없는 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슬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곧 아지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억지로 용서할 수밖에 없었죠.

말이 통하지 않는 강아지에 불과한 이 아이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한들 제 입만 아플 뿐이었습니다.

이내 체념하고 집에 있는 마데카솔을 쥐어짜 내어 바르고선 얼굴이니 나름 신경 쓴다며 메디폼을 붙이고 잠을 잤습니다.



기력이 없다면서 할 건 사실 다 했어요.

새벽 1시에 인스타그램에 아지가 한 일을 고발했죠.

친구들은 괜찮냐며 병원 가보라는 연락을 해줬습니다.


그런데 가족은 상처 난 제 얼굴을 사진 찍어 보냈는데

어느 누구도 사진을 보지 않아서

아침에 다시 새로운 사진을 찍어 보냈습니다.

하지만 오후 1시경이 다 되도록 아무도 보지 않는 게 아니겠어요?

원래 우리 가족은 카톡을 빨리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엄마 아빠에게 아지에 대한 험담을 잔뜩 늘어놓기 위해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빠는 회사에 있는지라 대충 병원에 가라고 하면서 나름대로 걱정을 해주고서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하지만 퇴근 후에 집에 돌아오기 위해 차를 타서는 재빨리 제게 전화를 걸어 아지 욕을 하기 시작했죠.

‘역시 딸 걱정해 주는 건 우리 아빠 밖에 없어!‘라며 상처 난 얼굴로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요,


우리 엄마는 역시나였습니다.

전화해서 사진 보라니까 놀라는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아지를 많이 혼냈냐면서 금세 아지를 걱정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브런치에 아지 이야기 쓸 거리 생겨서 좋은 거 아니야? 좋게 생각해~’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입을 삐쭉 내밀며 ‘엄마는 아지밖에 몰라!’하며 투덜거렸지만, 엄마는 ‘네가 애 발톱 관리 안 해줘서 그런거야~’라며 되려 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엄마에 그 딸이다 생각한 것은

저도 “야! 너 이거 글감이다! 내가 너의 잘못을 온 세상에 밝히겠어!”하며 아지한테 선전포고 했거든요.

이 말인즉 글감이라고 생각한 것은 엄마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요즘 글쓰기에 정신이 팔려가지고 희한한 꿈을 꾸면 ‘이걸 소설로 쓰면 어떨까?’라는 미친 소리를 꿈속에서 한답니다.


뿐만 아니라, 아지가 오늘 미용을 다녀왔거든요.

곧 미용을 하니까 발톱 관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데, 제가 관리를 안 한 탓에 제가 화를 당하게 된 것은 팩폭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불편하게 긴 발톱으로 다녔을 아지에게 미안해지고 말았죠.

이렇게 전세가 역전될 줄 몰랐으니 다행이지,

화를 잔뜩 냈으면 어쩔 뻔했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아지 발톱이 꺾였던 걸 떠올리며

그래도 차라리 제가 다쳐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다친 곳이 눈이 아니라 다행인 것도 있었구요.

또한 제가 감기라는 이유로 산책을 시키지 못해서 뿔이 난 걸 보니 미안했죠.


제 아픔에 한 숟갈 더 얹은 건 아지인데 왜 사과는 제가 하고 있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두 번 다시 아지에게 찢김을 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타인이 보면 고양이를 키운다고 생각하거나 누구랑 싸우다가 이렇게 됐을 거라고 여길 거예요.

아무래도 당분간 어디에 갈 때는 마스크를 끼고 가거나 누구를 만난다면 슬쩍 아지 욕을 하며 ‘저 어디서 맞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에요~’라는 걸 증명해야겠지.


아무튼 엄마는 병원에는 안 가더라고 약국에서 얼굴에 바르는 약을 사는 게 좋겠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조언에 따라, 약국에서 8000원짜리 제 손가락보다 얇은 약을 처방받아서는 매일 5번씩 바르고 있습니다.

부디 흉터가 남지 않아야 할 텐데요. 걱정이 됩니다.

이상 조로 아니 치타 아니 아찌 엄마 도무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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