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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Mar 20. 2024

네 생일에 나를 위한 생일파티

3월 12일

3월 12일은 나의 소중한 강아지, 아지의 생일이다.

올해 5살을 맞이하게 된 아지

사람 나이로 36살, 어엿한 성인이다.

하는 짓은 웬만한 아기보다 더 말썽이지만

웬만한 아기보다 더 귀엽기에 데리고 산다.


다른 사람들은 강아지 생일을 어떻게 정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지를 집으로 데려온 날로 정했다.

조그마한 아기였으니 당연히 1살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그렇게 아지가 실제로 태어난 날은 알지 못한다.


너도 나도 네가 태어난 날은 모르지만

네가 태어난 것을 기념하고 싶어 만든 날인 만큼

나는 늘 아지의 생일을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네 첫 생일을 맞이했을 때, 집에서 온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때는 강아지 케이크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몰라서,

네 엄마인 내가 좋아하는 모카 케이크로 준비했다.

너는 먹지도 못하지만 나 좋으라고 초에 불을 붙이고는 신나게 축하 노래를 불렀다.


테이블 위에는 네가 좋아하는 간식이랑

네가 눈이며 옷이며 다 뜯어먹은 최애 인형 뽀로로를 올려두고

동그란 스툴 위에 너를 올려두고는 축하했는데

네 표정은 한없이 어두웠다.

스툴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 어찌나 싫었던지

100장의 사진 중 건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너를 바닥에 내려주고 우리 가족은 신명 나게 케이크를 나눠먹었다.

온전히 나를 위한 네 생일파티였다.



두 번째 생일 때는 코로나가 워낙 심각하여 밖에 나가는 것도 쉬쉬하던 때라, 아마 집에서 조촐하게 조용히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신 세 번째 생일 때는 특별하게 보내주겠다고 손가락을 꼭꼭 걸어 약속했다.



나는 한강에 갈 때마다 강아지들이 산책을 너무 신나게 하기에 ‘언젠가 우리 아지도 꼭 데려와야지!’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번째 생일을 맞이했을 때 아지와 함께 한강으로 향했다.

나는 서울 따릉이를 빌려 가족이 먹을 음식과 아지의 생일 케이크를 챙겼고,

부모님은 아지를 데리고 한강으로 왔다.


고속터미널역 근처 한강 공원이었기 때문에

가족이 먹을 음식은 고속터미널역에 있는 푸드코트에서 사가려고 했으나 웬걸 너무 비싸서 그냥 치킨을 시켜 먹었다.

그리고 아지는 미리 주문한 당근 케이크에 초를 꽂고 노래를 부른 뒤 박수를 짝짝짝 친 다음 증정해 주었다. 

처음 먹는 케이크가 입맛에 맞았는지 흰자가 보이도록 눈이 헤까닥 돌아서는 허겁지겁 먹었다.

‘아지야 그렇게 맛있어? 엄마가 내년에도 꼭 케이크 사줄게!’



네 번째 생일 때는 내가 퇴사를 한다며 정신이 없던 터라, 그리고 그런 나와 맞춰 가족도 아지를 신경 쓸 틈이 없었던 때라 정말 미안하게도 생일을 잊었다.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가족 생일을 잊어!’라며 서러움을 토로했으련만, 우리 아지는 어떠한 투정 없이 한결같이 내 옆을 지켜주었다.


작년에 생일 케이크를 매년 챙겨준다고 해놓고 준비하지 못한 건 내가 부모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었다.

퇴사 때문에 정신없었다는 것은 사실상 핑계한 불과한 말이었다.

챙겨줘야 할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도 그런 내가 잊었다는 게 아지에게 굉장히 미안했다.

평소에 더 잘해줄 것도 아니면서 특별한 날조차 잊어버리는 내가 너무 미웠다.

내 생일은 온갖 SNS에 끊임없이 공표하면서, 지 자식 하나 챙기지 못하는 내가 너무 같잖았다.

나는 부모로서 자격이 없다며 스스로를 나무랐지만

그런 내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건 어김없이 이 녀석이었다.

엄마가 미안해.



그렇게 올해 생일을 맞이했다.

‘이제는 절대 잊지 말아야지!‘

작년에 수없이 다짐하고 올 2월부터 네 생일을 읊어가며 외웠다.

‘아지야! 2주만 있으면 아지 생일이야!’

‘아지야! 이제 며칠만 있으면 아지 생일이네! 축하해!’

‘아지야! 내일 네 생일이야! 와아-!’


그렇게 12시 땡 하자마자 나는 아지를 꼭 끌어안으며 외쳤다.

‘아지야!!! 생일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아지는 뭔 일이지 싶으면서도 꼭 껴안은 내게서 도망갈 생각 없이 가만히 나의 마음을 느껴주었다.

그리고 그날 아지에게 오만가지 간식을 주고

평소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산책을 했으며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100번 넘게 외쳤다.


돌아오는 주말까지도 아지의 생일은 이어졌다.

아지는 생일이 지나서 미용을 했기 때문에

생일날 예쁜 사진을 건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금박지를 붙이고 풍선을 달고 사진을 찍은 뒤에는 또 맛있는 음식으로 보상을 주었다.

분명 이번에는 아지 네가 행복한 생일이었으리라 확신해!


내년에는 어떤 생일을 보내게 될까?

나도 모르겠지만 내 생일만큼이나 네 생일이 기대돼!

난 늘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게 감사해.

그리고 그날은 그 감사함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아.

앞으로는 네 생일을 잊는 날도, 놓치는 날도 없도록 할게.

너는 내 소중한 가족이니까 :)

사랑해 아지야!

태어나줘서 고마워!


모두들 우리 아지의 탄생을 축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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