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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Mar 11. 2024

강아지 털 만지는 거 좋아하세요?

나는 비숑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나는 비숑인 아지의 털을 만지는 걸 좋아한다.


빗질이나 미용을 하고 난 후에 만지면 부드럽지만,

솜사탕 같은 그 얼굴을 내가 망쳐버릴까 봐 만지지 못하는 때가 훨씬 많다.

그래서 주인들은 멋대로 비숑의 얼굴을 만지지 못하고 뒤에서 앞으로 털을 세우듯이 만지는 걸로 알고 있다.

만약 당신이 털 관리가 굉장히 잘된 비숑을 만났다면, 그 주인은 본인의 머리를 빗질하듯 부지런히 자신의 강아지를 빗질시켰을 가능성이 369%다.


우리 아지는 빗질을 정말 싫어해서 5분도 참지 못하고 내 손을 무는 척을 한다.

하지만 아지는 차마 사랑하는 엄마의 손을 물지 못해서 빗을 혼내주듯 물어뜯고 화풀이를 한다.

간식으로 보상을 주지만 아지에게 빗질은 간식을 대체할 수 있는 보상 체계가 아니다.

더 크고 합리적인 게 있어야 하는 거 같은데 아직까지 찾지는 못 했다.

아무래도 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그 순간까지 못 찾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 아지는 빗질을 안 해서 베베 꼬여버린 털들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나는 꼬불꼬불 자라난 털을 만지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도 한 손으로는 더듬거리며 아지의 꼬불 털을 찾아 나선다.

촉감이 좋은 이유는 모르겠다.

한때 유행했던 슬라임을 좋아했던 친구들에게 이걸 가지고 노는 게 왜 좋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리고 서로 엉켜버린 털을 푸는 과정도 좋아한다.

한 뭉텅이가 떨어져 나오면 왠지 쾌감이 느껴진달까. 

여드름이 올라와 터지기 직전까지 기다렸다가 짜내는 시원한 기분과 흡사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더러운 것과 비유를 했나 싶지만 이보다 더 적절한 비유는 없다.


이렇게 아지의 털을 만지고 뭉친 부분을 잡아 뜯으면서도 아지는 내 무릎 위에서 떠나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아지는 내 무릎도 좋지만 내가 계속 본인을 만져주는 게 좋은 거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생 때였나? 머리에 이가 살고 있었다.

이가 왜 생기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가 생기면 엄마가 이를 잡아준다며

내 머리를 엄마의 무릎 위로 누이게 했다.


바닥은 딱딱하지만 포근한 엄마의 다리 위에 누워

엄마가 내 머리를 이리저리 만져줄 때,

나는 엄마의 사랑을 느꼈다.


이가 톡톡 터지는 소리, 분주하게 움직이던 엄마의 손, 이를 찾아 요리조리 움직이던 엄마의 눈.

누워서 엄마의 모습을 보자니

억지로라도 이를 만들어 엄마의 무르팍에 자꾸자꾸 눕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지는 강아지일 뿐이지만,

내 무릎에 누워 본인을 쓰다듬는 날 지긋이 쳐다볼 때

‘얘도 나처럼 자꾸자꾸 엄마의 다리 위에 있고 싶구나’, 

‘얘도 영락없는 내 자식이구나.’ 싶었다.



아지야, 우리 엄마도 이제 내 얼굴이 무겁다고 무릎 위에 못 얹게 해~

그런데 너도 마찬가지로 몸이 다 자라서 엄청 무겁거든?

네가 그렇게 오래 있을 만큼 가벼운 체중이 아니야!

그러니 이제는 적당히 누워있도록 해~

그래도 엄마는 엄마 다리가 저릴 때까지 네가 올라와 있는 걸 허용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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