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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Mar 06. 2024

자기가 제일 중요한 이기적인 아지

이렇게 끝내긴 아쉬워서

사람도, 동물도 의식주를 제1의 욕구로 태어났다.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만 보아도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 의식주를 꼽았으니까.

그래서 아지는 의식주 앞에 주인이란 없다.


내가 오늘 이 얘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아지 때문에 매일 밤잠을 설치기 때문이다.

아지는 잠을 잘 때 본인이 원하는 자리에서 잠을 자야 한다.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지만, 첫 시작은 침대 옆 혹은 밑이다.


잠을 자다가 어느 순간 올라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제야 내 몸을 향해 몸을 던진다.

이때 엉덩이를 내 옆구리에 붙이거나 내 가랑이 사이에 파고 들어와 둥그렇게 몸을 만다.

문제는 아지가 자리를 잡을 때 이불을 당기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자리를 고쳐 누워야 한다는 것이다.

'자리를 고치는 것쯤이야'라고 누워서 떡 먹기처럼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자리를 고쳐 눕는 순간, 아지는 침대의 정가운데로 온다.

그리고 나는 벽 측에 딱 붙어 자는 형태가 되거나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게 주의하며 잠을 자야 한다.


"야! 너는 하루종일 잠만 자놓고 왜 맨날 엄마 자리 다 뺏어! 저리 가!"

진짜다. 아지는 하루종일 잠만 잔다.

내가 퇴사하고 집에서 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아지는 하루종일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궁금하고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마음은 며칠 지나지 않아 해소되었다.


하루 중 80%를 수면, 5%를 식사, 15% 산책.

이렇게 보낸다고 하면 상상이 될까?

그러니 직장인들은 본인이 없는 내내 심심하고 있을 강아지를 걱정하지 않길 바란다.

강아지는 심심해하지 않는다. 그냥 잠을 잘 뿐이다.

하물며 직장인들이 집에 함께 있는다고 한들, 같이 뭐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집에 왔을 때 강아지가 미친 반김을 보인다고 거기에 홀라당 넘어가 마음 아파하지 않길!


물론 강아지가 반기는 척 연기를 한다는 이야기도,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난 그저 당신이 집에 있으나 없으나 강아지의 루틴은 똑같으니

나처럼 궁금해하거나 마음 아파할 어느 주인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을 뿐이다.


아무튼 그렇게 하루종일 잠만 잔 아지는 이제야 잠에 들려는 주인의 자리를 완벽하게 차지해 버린다.

내가 저리 가라며 아지의 몸을 측면으로 옮겨놓으면,

아지는 절대 여기서 잘 수 없다는 듯 묵묵히 다시 제자리를 찾아오거나

아지를 옮기기 위해 잠시 앉게 되었으니 빈 베개를 발견하고는 '이때다!'라고 외치며 재빠르게 베개를 차지한다.


나는 이런 아지 때문에 늘 베개를 2개 준비해 놓는다.

당연히 내가 누워야 할 베개에 아지가 누우니 문제가 되는 것이지만,

나는 다른 베개를 끌어와 아지보다 더 아래로 내려와 잠을 청하거나

가로로 놓아야 할 베개를 세로로 놓고 쪽잠 자듯 잠에 든다.


이렇게 간신히 다시 잠에 들고나면, 아지는 또다시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몸을 옮긴다.

부모님 댁에서 잠을 잘 때는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며 가족 구성원들이 안전하게 잘 자고 있는지 한 명씩 점검을 하고 온다.

안전한지 확인하고 오는 게 맞겠지?

보통은 갔다가 내게 다시 돌아와 잠을 잤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없이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다른 가족 구성원과 잠을 자고 안 온 적도 많다.

이 말인즉, 아지가 안전을 확인한 게 아니라 더 편안한 곳을 찾은 건 아닐까?


자취방에서 잠을 잘 때는 공간 전체가 아닌 내 침구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다닌다.

어떨 때는 땅 파듯 이불을 파헤치며 공간을 만드려고 하는데

내가 땅 파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네가 원하는 게 뭐야! 이불 치워줘? 아니면 이불을 더 갖다 줘?"라고 말하면 아지는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가만히 있어!'라는듯 화난 표정으로 째려본다.

나 또한 속으로 '네가 잠을 깨워놓고 왜 째려보냐... 째려볼 사람은 난데..' 하고는 다시 자리에 눕지만 말이다.


어떤 날은 아지의 귀가 굉장히 예민해진 날이 있다.

대체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건지 밤새 짖는 것이다.

잠에 들려하면 짖고 잠에 들려하면 짖고 그래서 나는 4시간도 채 제대로 못 잔 적도 있다.

아지가 짖으면 짖는구나 하고 놔두고 싶어도 다른 가정집도 함께 사는 주거공간인데, 어떻게 제지를 안 할 수가 있겠는가.

이런 사람들은 주택에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주택에서도 못 그럴 거 같다.

주택은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지만, 따닥따닥 붙어있는 주택가의 경우에는 일반 아파트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지가 평소에 잘 짖는 편은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문제가 심각했다면 이사를 고려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지는 위가 굉장히 약하다.

소화기관이 좋지 않은 건지, 음식에 예민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안 좋은 건 엄마인 나를 쏙- 빼 닳았다.

아지는 닭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피부 알레르기가 일어나거나 눈물이 줄줄 흐르거나 토를 한다.

그래서 나는 간식이나 사료를 살 때 닭이 함유되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한다.


그런데 문제는 닭만이 아지에게 문제가 아닌 것이다.

분명 닭이 들어가지 않은 간식임에도 아지가 소화를 시키지 못해서 새벽에 한껏 속을 뒤집는다.

잠에 깊게 들은 나는 아지의 구토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아지의 몸을 쓰다듬은 뒤, 구토를 치우지만

아지의 구토는 한 차례로 끝나는 법이 없다.

최소 3번은 해야 다 게워내는 느낌이 드는지 노란 거품이 나오는데도 계속 역류를 한다.


아지가 구토를 시작하면 마음도 물론 너무 아프지만, '오늘 잠은 다 잤다.'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든다.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아지의 구토는 잦고 음식에 예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간식은 잘 시도하지 않으려고 하고 아지가 먹고 토한 간식은 반드시 기억해 둔다.


구토만이 문제가 아닌 것은 닭이 아니었음에도 피부 알레르기가 올라왔는지,

밤새 똥구멍과 발을 핥는 소리에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이다.

잠에 들지 못해 고통스러운 나와 간지러워서 고통스러운 아지.

우리는 언제쯤 편안한 밤을 함께 잘 수 있는 걸까?


내 숙면을 방해하고 자리를 모조리 빼앗는 아지를 뒷담 하고자 킨 브런치에서

나는 오늘도 아지의 고통을 호소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너의 아픔과 주의는 몰라주고 나만 생각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무래도 제목을 변경해야 하는 걸까?

'자기가 제일 중요한 이기적인 엄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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