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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동급부 Jul 14. 2024

안경하는 날

도서관이 제2의 집이었던 탓인지 나는 시력이 매우 좋지 못하다. 

학교 신체검사를 통해 시나브로 나빠지는 눈의 상태 알고 있었지만, 번거로운 안경을 쓰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그것이 고액이기에 내색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입학 직후 칠판의 글씨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 이르러서는 부친께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후 아버지는 술이 잔뜩 취안경점에서 집으로 전화를 하셨고 얘기되어 있으니  안경점에서 안경을 맞추라고 하셨다.

시간에 걸친 고강도의 훈육이 수반되어야 세상을 밝게 볼 수 있을 것으로 미리 감수하고 있었던 내 추정과는 사뭇 다른 론이었다.


나의 첫 안경은 금테 잠자리 안경으로 학생 시절 사용했던 안경 중에는 가장 고가다. 다소 활동적인 나는 안경에게 몹쓸 짓을 참 많이 했다. 특히, 다리나 코가 부러져 용접을 자주 했다. 용접작업을 할 수 있는 안경점이 많지 않아 단골집이 있었다. 수리가 끝나면 언제나 기존테와 불에 달군 부분의 색상차이를 감수해야 했다. 정기적인 검사를 통한 교체는 기대하지 않았기에 렌즈의 상태만 양호하다면 몇 년씩도 쓰곤 했는데, 문제는 아지랑이의 출현이다. 렌즈의 코팅이 벗겨져 군데군데 불투명한 상태가 되면 바꾸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면 안경테 또한 더는 쓰지 못다.


재수하던 시절로 기억한다. 재수하는 마당에 아지랑이까지 피고 말았다. 도저히 안경을 새로 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걷고, 점심을 굶기도 하며 돈을 모았다. 물론 전액을 다 모을 생각은 없었다.

어느 정도 모였고 일요일이 되어 나는 저렴하기로 소문난 남대문 시장으로 안경을 하러 갈 계획을 세우고 아버지를 기다렸다. 백수가 공휴일은 더 더 칼 같이 더 챙기는 법인데, 그날 하필 일요일에 외출을 하신 것이다. 머리털 나고 이렇게 부친의 귀가를 학수고대한 적은 없었다. 기다리다 지쳐 동네 어귀에 나가보니 아버지가 이웃 아저씨와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곧장 아버지께 가서 ‘이래저래 안경의 교체가 필요한 바, 용돈을 모아 이제 남대문으로 향하려 하나 다소간의 부족액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어 일부 지원을 앙망한다’는 취지를 신속하게 아뢰었다. 곁에 계신 아저씨는 기특하다는데 아버지의 얼굴은 몹시 일그러지셨다. 집으로 가자는 말씀과 함께 스미는 불안을 느꼈지만 그래도 내가 돈을 모았는데? 기특한 건데? 생각하며 뒤 따랐다.


안방에 들어서자마자 동물농장이 시작되었다. 개, 소, 말 가끔 당다귀... 주로 성체보다는 새끼 위주의 출연이었다. 난 이해할 수 없었다. 불과 1~2만 원 정도만 쥐어 주면 될걸 이렇게까지 모멸감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역시 동물농장으로는 화가 다 풀리지 않는지 추가 프로그램이 편성됐다. 동네 어른과 얘기 중인데 사전에 보고도 없이 혼자 정하고 옷까지 다 차려입고 불쑥 찾아와 싸가지 없이 통보를 했다는 것이 나의 죄목이었고 당신을 분노케 한 이유였다. 동물농장 2부가 진행되던 중 인간인 큰 형이 스스로의 출연을 긴급 감행하여 가까스로 되었다.


자발적 특별 출연자 나에게 금전까지 지원해 주었다. 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많은 감정들을 끼면서 큰형 덕분에 남대문으로 향할 수 있었다. 경이 문제가 아니라 재수가 문제, 부끄러운 자식이 문제였다는 것 한참 후에 깨달았다. 이후로 단 한 번도 아버지에게 안경 값을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명절에 성룡 영화 같은 동물농장 재 방송이 싫은 것은 물론이고 그분께 벌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무엇보다도 전적으로 아버지가 만들어준 그 창을 통해 세상을 보고 싶지 았다.



간혹 불쑥 이때가 떠오르면 어김없이 연상되는 저때도 있다. 

유사한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  저때는 중학생 때였다. 나는 국민학교 6학년쯤 처음 세상에 나온 BB탄 총을 무척 좋아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자주 가지고 놀았는데 권총 보다 소총을 구매하여 방을 튼튼히 하겠다는 생각으로 틈틈이 군자금을 모았다. 드디어 집 근처 문방구에서 찜해 놓은 총을 사 와 포장을 뜯고 발사를 하려는 순간,

이런... 첫 발사에 둔탁한 파열음만 날 뿐 총알이 나가지 않는다. 몇 번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리보고 저리 보고 흔들어 보니 안에서 무언가 열심히 돌아다니는 소리만 들린다. 오랜 시간 문방구 선반 가장 위에서 차가워진 플라스틱 부품이 초의 작동에 부러진 것 같았다. 아! 울고 싶었다. 단 한 번이었지만 손이 닿은 후에 망가진 것이라 교환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열심히 짱구를 굴렸다.


캬~ 묘안이 떠올랐다. 어차피 테스트까지는 해보지 않을 테니 이 녀석을 반환하고 더 비싼 총을 사 아주머니의 거부감을 줄이는 안이었다. 그런데 난 모은 돈을 다 털었다. 돈만 있으면 되는데...

나는 어머니가 몇 만 원씩 비상금을 넣어 놓으시는 장소를 알고 있었다. 바로 코트 주머니... 그곳 손을 대고 말았다. 문방구 아주머니는 흔쾌히 교환해 주셨고 계획에도 없던 두 배 정도 가격의 새 소총을 장만하게 되었다. 기대이상의 군비확충에 기뻤으나 작전에 성공하고 나니 그제야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이 크게 다가왔다.


그날 저녁 한참이나 먼저 엄마가 퇴근하는 길목에 나가 엄마를 기다렸다. 저 멀리 추위에 종종걸음으로 오는 엄마를 발견하고 달려갔다. 내 강아지새끼가 웬일이냐며 반갑게 맞아 주신다. 난 더욱 죄송했지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엄마는 준비한 말을 시작하자마자


그래서 큰 총은 잘 나간당가?
어? 어... 잘이야 나가지...
근디 그 돈 썼다고 걱정돼서 추운데 나왔능가?
그게 뭣이라고 춘디 여까지 나와? 잘했어~ 잘했어~


엄마는 나를 꼭 안아 주셨다.

나는 엄마의 품에서 절대로 다시는 이러지 않겠다고 마음 깊이 다짐했다.



이렇듯 닮은 듯 다른 이때와 저때를 회상할 때마다 난 또 다른 다짐을 한다.


내 자식이 정말 큰 잘못을 저르고 이를 스스로가 먼저 내게 이야기한다면, 나의 모든 말과 행동 전에 한 번 안아줄 것이다.

살면서 꼭 한 번은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내 엄마가 나를 꼭 안아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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